어제는 제 친구인 김호석 화백이 '건방지게도 작품 딱 한 점을 전시하는' 삼청동 갤러리에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잘 들었는데, 끄트머리쯤 가서 친구에 떠밀려 한 마디 했지요. 먼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느냐?"고 손님들에게 물으니 아, 대답이 없네요.
그래서 설명을 좀 했습니다. 제목이 <사유의 경련>인데, 손님들이 이 그림의 제목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같더라구요. 골똘히 생각하다가(사유) 갑자기 몸을 비틀고 손발을 떨다(경련)?
사진에서 그런 게 안보이잖습니까.
그래서 이 그림이 걸작입니다.
이 분은 안경을 쓰고 있는데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분이 사유를 하는 중이고, 경련을 일으키는 중이라면 그 현상이 눈에 나타나야 하는데, 김호석 화백이 그만 안경으로 눈을 가려버렸씁니다.
이 분이 누구인지 알면 '사유의 경련'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분의 후손이 제 대학 시절 선배인데, 엄청난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지 이 분에 대해 변명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다녀온 부사인데, 정사 황윤길은 왜군이 쳐들어온다고 보고하고, 이 분은 도요토미는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못된다고 보고하여 조선은 하루 아침에 왜군이 말발굽에 밟히고 조총에 숱한 구멍이 나지요.
조선시대 최대 혼군멍군인 선조 이균은, 황윤길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준비를 하지 않은 책임을 이 분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금부도사를 보내, 한창 경상우병사로 부임 중이던 그를 체포해오도록 했다. 국문 후 처형할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왜군은 부산을 휩쓸고 북진 중이어서, 어쩔 수없이 그를 경상도초유사로 임명, 모병하고 잔병 모아 죽기로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목이 날아갈 참에 겨우 살아 왜적과 싸우라니, 그나마 실낱같은 기회를 얻은 이 분은 이때부터 죽을힘을 다해 피를 흘리며 땀을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사했습니다.
이 분이,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금부도사에 붙잡혀 사형당하기 위해 압송되던 일이며, 끝내 진주성에서 전사하기까지 얼마나 번민이 심하고 두려웠을까. 더구나 동인의 거두로, 퇴계의 제자로 그가 걸어온 이전의 꽃길을 생각하면 한 순간의 실수로 역적간신배가 되었으니, 죽음으로 씻을 수 밖에 없던 이 분의 두려움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은 '사유의 경련'입니다.
전쟁이 난 1592년 5월 13일(음력 4월 13일)부터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전사하던 1593년 6월 24일까지 1년여간의 피 마르는 시간을 '경련하듯이' 살아낸 그의 삶이 곧 이 그림에 녹아 있습니다.
* 안경은, 그가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맞춰온 것이다.
이 분이 안경을 벗으면 1년여간 죽을 듯이 살아낸 그의 '사유의 경련'을 직접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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