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9시 43분, 멀리서 주지 소임을 사는 도반에게 "아직도 글 안읽고 있느냐?" 따지려고 전화를 거니 받지 않는다. 아침부터 무슨 기도를 하는 모양이다 하고, "중이 무슨 만날 기도나 한답시고 저 난리람" 도반의 게으름을 혀로 차버렸다.
지난 2월 2일, 스님이 죽을지 모른다는 소동 끝에 겨우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내가 32년 공부를 마쳤는데 원고 볼 정신은 있느냐?" 물으니 천연덕스럽게 "내 몸 내가 잘 아니 걱정말라. 대중이 호들갑떠는 거다. 원고나 빨리 보내라" 큰소리쳤다.
내가 아비즈냐(Abhijñā ; 神通)를 보이지 못하면 마친 게 아니니 대장경에서 구체적인 깨달음의 기전을 묘사한 경이 없느냐고 물으니 "증일아함경 광연품과 안반품을 보낼 테니 비교고찰하라"고 권한다.
이메일로 보내준 경전을 읽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고, 특히 붓다만이 말할 수 있다는 <교계(敎誡)>를 들여다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내 원고를 이메일로 보냈다. 무려 1700매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읽었단 말을 안한다. 밤새 기도하느라고 지쳐 지금은 못읽으니 이따 읽겠다, 오늘은 꼭 기도할 일이 있어 법당에 종일 있을 테니 내일 읽겠다, 이러구러 오늘 삼일절이 되었다. 원고 보낸 날은 2월 7일, 내 메일은 열리지 않은 채 지금도 '읽지않음'으로 돼 있다.
하도 답답하여 야단치려고 오늘 오전 9시 43분에 전화를 건 것이다.
받질 않아 혀를 차고 있는데, 오후 4시 4분에 아는 보살이 전화를 걸어온다. 기분이 서늘하더니 역시나다. 119가 왔는데 사망 진단이 내려졌단다. 경찰이 오고, 그의 사형 사제들이 모이고 있단다.
방문 하나 열면 거기가 저승이지 저승이 따로 있는 줄 안다. 여태 46년간 수행한 경력이 아까우니 건강 챙겨 더 열심히 공부하라, 지금 죽어 환생해봐야 빨라도 20년은 훌쩍 날아가버리니 공부할 테면 지금 하라고 채근한 내가 무색하다. 제발이지 늘 기도한다던 그 기도가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공부 인연을 맺어달라는 <원왕생 기도>였기를 바란다.
* 봉황태극(이재운태극장)은, 영혼의 고향을 찾아갈 수 있고, 나중에 다시 빛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이다. 이 문양을 갖다 덮어줄란다.
2008년 해남 대흥사에 함께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2009년 내 딸이 많이 아플 때, 스님이 일부러 경포대까지 동반여행했는데 그때 딸이 찍은 사진이다. 내 품에 안긴 말티즈 '반이'는 반신불수라 당시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소변을 짜줘야만 하는 장애견이라 내 품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우리 반이는 이로부터도 매우 오래 살아 2015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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