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 장편소설 <금강경 비밀장>을 받았다.
아함경에 기록된 붓다의 고뇌를 다시 찾아보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붓다가 된 자이나의 마하비라는 반야를 본 즉시 스스로 굶어 생을 마쳤다. 붓다 역시 세상을 버리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전법교화에 나선다.
나는 32년 연구한 바이오코드를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있다. 그냥 싫다. 여러 사람에게 가르쳐봤지만 그들의 욕망을 넘어서지 못하는 걸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10권에 이르는 비밀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겪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평생 승복 입고 다닌 늙은 승려조차 탐진치 감옥에서 버둥거리고, 그 욕망 때문에 구업을 짓고 마구니 짓을 서슴치 않는 마당에, 그 누가 이 소설 한 권 읽고 무슨 천지개벽할 일이 있겠는가.
나는 사람이 싫다. 중도 싫고 목사도 싫다. 무당은 더 싫다. 중 겸 무당인 자에게는 냅다 욕을 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 <금강경 비밀장>에 관심이 없다. 그냥 썼을 뿐이다. 어디 바위굴에 몽땅 쳐넣고 봉인하면 좋으련만 그러지는 않는다. 내게 자유가 있듯이 각자에게도 그 자유는 똑같이 필요하다.
* 붓다는 그랬다지.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겸손한 말인 듯하지만 더할 수 없이 교만한 말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금강경은 2000년 전부터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경전이자, 불교를 대표하는 제1경전이다.
무려 2000년간 금단의 성역으로 봉인되고, 한문의 숲에 가둬놓고 해석조차 거부하던 금강경의 비밀한 부고를 뚫고 들어가 송곳으로 파헤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망원경으로 잡아당긴 이 소설 <금강경 비밀장>은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않은, 금강경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진실하고 생생한 탐구 기록이다.
이 소설은, 금강경을 누가 썼으며, 왜 나왔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뜻은 무엇인지 에두르지 않고 정면으로 파헤친 역작이다.
오류와 무지와 욕망의 안개를 걷어내고, 미신과 무당과 가짜가 판치는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반야를 가득 담은 소설이다.
- 금강경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쓴 게 아니다
테라와다 즉 남방불교에서는 금강경이 있는 줄도 모른다. 이들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도 모른다. 고타마 싯다르타 시대에는 없던 분들이니 어쩔 수 없으며, 그처럼 금강경 또한 없던 경전이다. 그런데도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금강경이 가장 유명한 경전이 되었다.
금강경은 너무나 그럴듯하고, 하필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경전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무섭도록 오직 진실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붓다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분명히 아주타나(나가르주나, 용수보살)가 쓴 건데 왜 이 경전이 모든 팔만대장경의 맨 윗자리에 있느냐는 것이다.
- 1990년, 저자는 인도 중부 나가르주나콘다에서 진짜 금강경을 만났다
저자는, 금강경의 저자 나가르주나가 자신을 인도로 불러들였다고 믿는다. 1990년, 저자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발길이 닿은 성지는 모조리 빼고, 그가 가보지 않은 땅, 정말 인도인들이 욕망하는 진짜 삶을 살피러 인도 전역을 돌아다녔다. 뉴델리, 뭄바이를 거쳐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동해안을 타고 도로 올라오다 불교 유적지가 나타날 때쯤 여행을 접고 뉴델리로 곧장 가서 귀국했다.
이런 인도 여행길에 저자는 아주타나의 고향인 하이데라바드에서 뜻밖에도 소련의학자가 쓴 《생체시계(The Grand Biological Clock)》(1989년)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을 하루 만에 읽고, 그로부터 바이오코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해인 2023년 2월 2일, 고타마에 대한 의심을 끊고, 아주타나가 하는 말귀를 겨우 알아듣고 나서 이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소설 《금강경 비밀장》은 꽤 오래 걸린 작품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 작품으로 《천년영웅 칭기즈칸》(전8권)이 있는데, 5년 걸렸다. 거기에 비하면 이 소설은 거의 3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저자는, 2000년 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만큼, 뾰족한 송곳, 잘 벼린 도끼, 날카로운 칼, 돌을 떼어내는 정을 다루느라 그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오직 진실을 깨우치고자 하는 고타마 싯다르타(테라와다)와 나가르주나(마하야나)의 정통 불교는, 불멸 후 2600년 동안 인간의 욕망이 불타는 깊은 바닷속에 빠져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한때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번성하다 사라진 고도의 철학 대승불교는 반야에 지친 중생들 때문에 지금은 사막에 스며든 물처럼 사라져버렸다.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는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오아시스처럼 금강경은 다시 한번 목마른 중생의 목을 적실 것이다. 두 다리가 잘리도록 잡석으로 취급되다 죽을 때가 돼서야 겨우 인정받은 화씨벽(和氏璧 ; 중국 최고의 옥)처럼, 금강경은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반야를 찾아 헤매는 중생에게 큰 빛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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