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켰을까
- 김상국(경희대 교수)
여기서 퍼와 다듬었습니다 /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71> ‘오펜하이머’영화와 일본의 피해자 코스플레이 > 청계산 칼럼 | (사)국가미래연구원 (ifs.or.kr)
1. 왜 독일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켰을까?
2차 세계대전은 이름 안에 ‘세계’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처럼, 전 세계가 두 편으로 나뉘어 함께 싸운 인류역사 이래 가장 많은 전비와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이다. 약 5천5백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통 전쟁에서 사망자와 다친 사람의 비율은 4배에서 5배라고 한다. 그러면 적게 잡아 4배라고 하면 약 2.7억 명 정도의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계산이다.
질병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으로 약 2천만~5천만 명이 죽고, 흑사병으로는 약 3천만 명(추청치는 7천5백만 명에서 2억여 명 등 다양함)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 잠깐 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라는 전쟁광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고만 말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원인의 한 단면만을 보는 매우 좁은 시각이다. 히틀러가 아무리 전쟁광일지라도 그런 큰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막대한 전쟁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를 설득하기 위한 그럴싸한 이유, 곧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알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의 암살로 시작되이었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그런 단순한 사건 하나 때문에 생기지는 않는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큰 전쟁은 반드시 그 뒤에 엄청난 경제적 요인이 있다. 즉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9세기에 꽃을 피운 『산업혁명』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영국과 함께 재빠르게 산업혁명을 일으킨 프랑스 그리고 장사하는 것으로 잔뼈가 굵은 베네룩스 삼국 등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함으로써 매우 큰 부(富)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 독일연방은 34개의 제후국과 도시들의 합의체였다. 즉 통일된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느슨한 형태의 연방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세력도 없고, 연방 안의 제후국 간의 내전 등으로 강대국으로서의 힘을 갖출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는 독일 제국을 통일하고, 비로소 강대국의 대열에 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식민지는 이미 영국, 프랑스 등의 차지였다. 그러므로 갓 통일한 독일 입장에서는 전쟁을 통해 그들의 식민지를 빼앗아야 했다. 곧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은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황태자가 암살된 것이다. 얼마나 전쟁을 일으키기에 좋은 명분인가?
역사상 모든 전쟁의 기본은 『경제적 이익』이다. 다만 그 전쟁 발발의 시기는 당시 통치자의 성격에 따라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시작할 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성급한 성격 때문에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일찍 일으킨 전쟁이고, 시진핑의 대만 침공 야욕은 경제적으로는 너무나, 너무나 일으키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일으키지 못하는 전쟁일 뿐이다. 그래서 시진핑은 마치 내일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으르렁거리지만, 사실은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2. 독일의 10억 배가 넘는 초초 하이퍼인플레이션
세계 2차대전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발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영불 등 소위 전승국들은 『베르사이유 협약』을 맺었다. 패전 독일에 전후 책임을 묻는 협약이다. 경제학에서는 물가상승률이 연 3%를 넘으면 인플레를 우려하고, 연 200%가 넘으면 ‘초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일은 1924년 연간(年間)이 아니라, 월간(月間) 물가상승률이 300%를 넘었다. 당시 2년여 기간 동안 독일 물가는 무려 ‘10억 배’ 상승하였다. 구체적인 예로 1923년 11월 1일 빵 1파운드의 가격은 30억 마르크, 소고기 1파운드 가격은 360억 마르크였다. 물가는 년 1,000배(100,000%) 이상 뛰는 일이 일상사였다.
그 이유는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연합군이 독일에게 요구한 것이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① 독일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시행하라고 하였고, ② 육군과 해군력 특히 함정 등에 제한을 두었으며 ③ 전쟁 배상비용으로 무려 1,320억 마르크의 금(金) 가치로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이 배상금액을 계산할 때 그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0725코드)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는 연합군 측 대표들에게 “이 금액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불 가능액수인 20억 달러(약 100억 마르크)의 1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런 전쟁 배상비용은 독일이 도저히 갚을 수 없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20년 후쯤 제2의 전쟁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20년 그리고 며칠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났다.
이런 무리한 전쟁배상 비용은 결국 독일 경제를 망가뜨리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당시 너무 물가가 빨리 올라 상점의 가격표는 시간 단위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 삽화를 보면 집에서 음식 마련을 위해 장작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지폐를 태우는 그림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발행된 최고금액 화폐는 1조 마르크였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은 패전으로 금싸라기 땅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불란서에게 다시 빼앗기고,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도 넘어갔다. 독일 국민들의『증오심』은 극도에 달했다.
이 틈을 타고 세력을 잡은 사람이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는 “게르만의 영광을 되찾자”고 부르짖으며, 독일의 경제를 안정시켰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연 300%로 안정시켰다. 이런 성과를 이룬 히틀러를 독일 국민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정계에 입문하지 불과 13년 만에 ‘종신 총통’과 “Heil Hitler!, 히틀러 만세!”라는 군중들의 환호성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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