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8 (금) 18:57
내 친구 신과 우리집 개 도반이
내 친구 이름은 신 아무개, 나하고 동갑이다. 내가 시골에 내려와 산 11년 동안 유일하게 마음을 담아 사귄 현지인이다.
어느 해 가을, 탈곡을 하다 지쳐 쓰러진 이 친구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런 뒤로는 진정제를 먹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서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도 하루 한 차례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꼭 사건이 일어난다. 다리 밑에서 개 잡아먹던 지역 경찰 네 명을 혼자서 다 두드려패기도 하고, 동네에 처음 이사와서 뻣뻣하게 굴던 외지인 한 명의 집 기물을 박살낸 적도 있다. 애들 소꿉장난에 쓰는 반지를 들고 금은방에 가서 팔겠다고 기를 쓰다가 매장을 뒤집어 엎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이 친구 아버지는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내 아들은 정신이상자이니 이해해달라, 치료비는 물어주겠다 해서 겨우 무마를 해 놓는다.
그러다 보니 집에만 있어라, 사람들하고 말하지 말라,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지 말라 등등 이 친구한테 따라붙는 금기가 많다. 그러므로 이 친구는 늘 외롭다. 그런데 나는 동네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 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신은 어찌나 아는 게 많은지 만나기만 하면 나를 훈계한다. 농사란 말이야..., 내가 이십년째 고추농사를 지었는데..., 수박은 열두 마디째를 길러야 하고... 등등 아는 건 다 토해놓는다. 이 친구의 가장 큰 정신적 결함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마치 저 하나를 앞에 놓고 방송하는 것인 줄 착각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사회자나 아나운서는 이 친구 하나를 위해 보고하는 심복이 된다. 농어촌 지원금 몇 조 하면 그게 다 자기한테 주는 줄 알고, 미녀들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면 역시 저 하나를 위해 위문공연하는 줄 안다. 대통령이 담화문이라도 읽으면 역시 이 친구한테 보고하는 꼴이 된다.
서울에서 손님들이 내려온 날에도 이 친구는 이따금 합석을 하는데, 그때마다 이런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국가기밀에 대해서는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만 얘기하자고 설득하여 간신히 입을 다물게 한다.
친구 얘기에 이어 우리집 명물 도반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녀석은 내가 서울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을 때 3년여를 길에서 오가며 알고 지낸 개다. 눈오면 눈맞고, 비오면 비맞는 녀석이 어찌나 불쌍하던지 결국 주인을 수소문해 돈을 치르고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길에서 만난 친구라 하여 도반(道伴)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런만큼 이 녀석은 사람을 경계하고 눈치를 잘 본다. 골목길을 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뒤져먹느라 어지간히 발길질에 채였는지 누가 손만 대면 마구 으르렁거린다.
그런 녀석을 목욕시키고 예방주사 맞혀서 입양을 하고부터는 녀석의 비뚤어진 성격을 교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우리 식구들은 도반이만 보면 예쁜 도반이니 착한 도반이니 하면서 온갖 아양을 떨어 녀석의 경계심을 풀어보려 애쓴다. 그렇지만 온가족이 녀석에게 수없이 물렸다.
입양 몇 달째던가, 딸이 타고다니는 유치원 버스를 상대로 격렬하게 짖다가 뒷바퀴에 다리가 깔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난 버스 바퀴 밑으로 뛰어들어 녀석을 구했는데, 녀석은 절 구하려는 건지도 모르고 내 손목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손목을 물린 채 집으로 달려가서 녀석의 다리에 약을 발라주었다. 나중에 보니 바퀴에 깔린 녀석의 발보다 녀석이 문 내 손목의 상처가 더 컸다.
우리집 개 여덟 마리중 일곱 마리는 한 군데 모여 잠을 자고, 거의 내무반식 규율을 지키며 단체 생활을 한다. 그런데 유독 이 녀석만은 우리집에 온 지 벌써 5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따로 논다. 창틀에 올라가 잔다든가, 부엌 창문에 올라와 밥을 따로 먹는다든가, 하여튼 별스럽다. 다른 녀석들은 찍 소리도 안하고 광견병 주사 따위를 맞는데, 이놈은 내가 물릴 각오를 하고 주사를 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만 나는 도반이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먹는 거야 가장 늙은 열한 살짜리 코커스파니엘부터 챙기지만 정을 주는 건 그렇지 않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여덟 마리가 다 나를 반기지만 맨먼저 멀찍이 떨어져서 꼬리를 치는 도반이 머리를 쓰다듬고, 그 다음 두어 달 전 이사간 어떤 작가가 팽개친 개(아직도 정서불안이다)를 쓰다듬고, 그 다음 도살장에 끌려가다 구사일생으로 우리집에 입양된 발바리를 쓰다듬는다. 강아지 때부터 우리집에서 자란 나머지 녀석들은 건성으로 지나가도 불만이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두 가지 주의를 준다. “이 친구 신은 내가 보기에는 정신분열증 같고 본인 주장으로는 귀신이 들렸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말라.”고 사정한다. 그리고 도반이를 가리켜 “얘는 무는 개니까 눈도 맞추지 말라.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손님들은 알아서 내 친구 신하고 도반이한테 갖은 아양을 떨어준다. 그러는 손님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런 위험한 친구를 사귀지 말고, 무는 개쯤이야 팔아버리면 그만인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신이 보고싶고, 도반이가 사랑스럽다.
- 여기 나오는 신 아무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고 등장한 개들 중 '늙은 열한 살짜리 코커스파니엘'은 열다섯 살에 사망하고, 문제의 도반이는 열네살에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발바리는 열일곱살에 심장판막증이 너무 심해져 갖은 치료와 정성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하고, 폐수종으로 잠 한 숨 자지 못해 저하고 나하고 사흘을 뜬눈으로 지새다가 눈물을 머금고 안락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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