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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집사람이 십수 년 전에 다니던 회사가 있다. 말이 회사이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체육단체로 당연히 공무원들이 많은 곳이다. 이 사무실에 한 사무관이 부임했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으레 권위적이고 꼭 막히고 답답한 인간형을 상상하는 법이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나이도 어리고,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갓 나온 풋내기 사무관이라서 일선 업무에는 깜깜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무관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즉 사소한 거짓말을 해서 약간의 편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무관님, 업무차 차 한잔 마시러 갔다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러면 이 사무관은 활짝 웃으면서 허락한다.
“힘드시겠네요. 잘 다녀오세요.”
그러고는 끝이다. 확인하지도 않는다.
“저, 옆사무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도 역시 인사는 똑같다.
심지어 이 사무관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지하철이 펑크나서 지각했다고 변명해도 믿을 정도다.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직원들은 스스로 분별력을 갖고 오히려 알아서 몸조심을 했다. 말하자면 끝없이 순진하기만 한 이 사무관을 놀려먹는 일이 저절로 부끄러워진 것이다. 세상 어지러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순진한 그 모습, 그 자체가 이 사무관의 위엄이자 부하를 다루는 기술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무관은 집안이 워낙 좋아서 세상 궂은 일 하나 겪지 않고 곱게 자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잘 먹고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정직하고 예의가 발라서 도무지 거짓말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오고, 또 남의 말은 항상 귀담아 듣고 진실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대열에 한때 서기도 했던 집사람(20대 시절)은 그 뒤로는 차마 사무관을 놀려먹는 짓을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고 실토했다.
집사람이 그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그 사무관은 여전히 부하 직원들을 신뢰하고, 그래서 적어도 그의 부서 안에서만은 서로 믿고 아끼는 마음을 확실히 전염시켜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한 수 더 높은 것 아닌가.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가 그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할 뿐이다. 설사 상대방이 나를 몹시 힐난하고 핍박하는 사람일지라도 끝없이 믿어주고 위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로 해서 그의 마음이 변하든 안변하든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 세상이 누군가한테는 천국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지옥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식의 인간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란 존재를 조건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사형에 처했다. 그렇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의 마음에는 죽는 그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상대가 나를 죽이는 그 행위까지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극치이다.

사랑은 결코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면서 다투는 부부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수없이 출몰한다. 이런 인간 관계가 더더욱 메마른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설사하듯이 방귀뀌듯이 한다고 한다. 그저 생리 현상처럼, 지나가는 일상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남북으로 갈려 있다. 게다가 일제때 중국으로 피난갔다가 영영 눌러 살고 있는 교포가 많다. 소련쪽으로 도망가서 지금껏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교포도 많다. 구한말 좀더 잘 살아 볼까 하고 하와이며 남미 쪽으로 이민간 교포들도 있다.

안에서는 전라도 경상도 하면서 철부지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지연 학연을 부추기는 선동가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전라도 친구에게 경상도 출신 후보를 말하지 못하고, 경상도 친구에게 전라도 친구를 말하지 못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반목한다. 부자는 가난한 자의 게으름을 탓한다. 이 시대에 노동만 해도 하루 일당이 얼만데 아직도 세상만 비관하느냐. 네 놈들 능력이 없어서 아직 집 한 칸 마련 못하고 남의집살이를 하는 것이지 그게 왜 자본가 잘못이냐! 그러면 가난한 자는 피를 물고 대든다. 네 놈들이 노동력을 착취하고 온갖 이권은 저희끼리 나누어 먹으면서 감히 무슨 잔소리냐! 이러면 끝이 없다.

집사람이 근무하던 그 회사의 그때 그 사무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참 많이 부러운 사람이다. 알고보면 평범하고도 쉬운 진리이건만,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 1990년대 초반에 쓴 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