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2 (화) 16:59
☞ 귀수불심(鬼手佛心), 귀신의 손과 부처의 마음
- 어린 시절 우리 형제들은 귀수불심(鬼手佛心)이라는 현판이 걸린 병원집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병원 환자 대기실에 걸린 귀수불심(鬼手佛心)의 글뜻은 몰랐지만 그 현판 밑에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 일본 사람 할 것없이 병원 조수와 간호원들 모두가 아버지에게 선생님요, 센새이, 선샘요 하고 만공의 신뢰와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鬼手佛心'을 눈으로만 기억하다가 `귀수불심'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침내 이 네 글자는 아버지와 연결되어 존경과 신뢰의 의미로 자리잡았다.
이 말을 70여년간 지켜온 분이 해 주신 말씀이다. 그 분이 간직해온 70년 묵은 말 귀수불심(鬼手佛心), 곧 귀신의 손과 부처의 마음.
바야흐로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귀신의 손처럼 빠르고 감쪽같은 기술과 함께, 그 기술을 부처의 마음처럼 바르고 깨끗하게 이용하자는 옛말이다.
이 말은 아버지인 의사가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병원 한쪽 벽에 늘 붙여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의사의 손은 귀신의 손처럼 환자의 병을 치료해야 하며, 그러한 의사는 또한 부처의 마음처럼 대자대비하게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리를 바라지 말고, 삿되지 않겠다는 자신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이러한 글을 그 딸이 어릴 때 보고 70이 넘도록 그의 방에 붙여 놓고 있던 것을, 내가 보고 다시 여기에 옮겨보는, 이 말을 지켜온 사람들의 믿음이 듬뿍 배인 말이다.
현대의 기술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발달되어 젊은 나까지 따라가는 게 숨막힌다. 컴퓨터를 사고나면 한달만에 곧 구형이 되고, 핸드폰을 사고나면 며칠만에 중고가 되고 만다. 이렇게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현실 앞에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컴퓨터 통신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말이 자주 들리면서 출판 시장도 얼어붙고, 따라서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생계가 막연하다고들 한다. 예전 같으면 소설 한 편 계약하자고 줄서던 출판업자들이 요즈음은 작가들하고 눈 마주치는 것조차 피한다는 푸념도 들었다. 컬러텔레비전 나오면서 흑백텔레비전 없어지는 거 당연하고, 옵셋 인쇄 기술이 나오면서 활판 인쇄가 재미없어지는 것 당연하다. 화려한 컬러 인쇄와 생생한 음성, 그리고 움직이는 사진이 척척 뜨는 컴퓨터 앞에서 이제 인쇄 기술이 가야할 곳은 종이가 아니라 디스켓이라는 현실이 실감난다. 따라서 작가 역시 단순한 문장만 지어가지고는 아무도 감동시킬 수 없다는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게 되었다.
십오년 전쯤이던가,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을 모시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어리둥절해 하며 이 편한 교통 수단을 몹시 불편해 했다. 지금도 손자들이 비디오를 틀어달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면서 허둥댄다. 날이 갈수록 부모님은 아들, 손자들과 문화적으로, 문명적으로 멀어져 간다. 리모컨을 만진다든가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고 더 감는 것 정도는 배워두는 게 좋지 않느냐고 권해도, 부모님은 70이 넘은 마당에 배우면 얼마나 배울 것이냐고 아예 고개를 돌린다.
이처럼 우리네 부모 세대를 패배시킨 기술은 이제 그때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강도로 젊은 세대까지 굴복시키려 들고 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펜티엄 프로세서보다 무려 열 배나 빠른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기사만으로 보자면 머지않아 펜티엄 프로세서와 함께 인텔사의 존재는 사라지고 이 새로운 씨피유(CPU)가 컴퓨터 업계를 장악할 것같다. 그러니 또 얼마나 빨라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숨막히는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들이 신통해 뵈기도 하고 불쌍해 뵈기도 한다.
또 신문사마다 방송사마다 키드넷이니 무슨 넷이니 하면서 인터넷을 모르면 문맹자라도 될 것처럼 국민을 위협해대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동원해 인터넷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외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한다는 둥 구호가 자못 거창하다. 이 거대한 폭풍 속에 휘말려들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을 들어가 보면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 국가들의 각축이 다시 벌어진 듯한 착각이 든다. 물론 포르노 사이트 외에 아직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어쨌든 변화는 바야흐로 내 앞뒤 그리고 옆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 가지고는 인류 문화, 문명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기술일 뿐이다. 세상이 변한 것일 뿐 인간이 변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요즈음 컴퓨터 통신에 들어가 보면 중고등 학생들이 물만난 듯이 지나치게 설치고 돌아다닌다. 마구 욕하고 소리지르고, 문법도 안맞고 맞춤법도 틀리는 마구잡이 잡문을 아무렇게나 써댄다. 일반적으로 어른들 앞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의사 표시할 기회가 적지만, 컴퓨터 통신에서는 이름 석 자, 그것도 가명으로 존재할 뿐 남녀노소, 신분, 계급 등등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다. 성년이니 미성년이니 하는 구분도 필요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익명(匿名)이라는 화려한 마약에 걸린 아주 못되고 버릇없는 어린아이들이 설사하듯이, 덜익고 상스러운 말을 마구 싸고돌아다닌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나마이트를 산업에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곧 전쟁에 이용해서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것처럼, 모든 신기술 분야에서는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마구 죽이고 때려부수면서 발전하고 있다.
철없는 이 시대의 하이테크-보이 중 누군가는 기술이라는 덫에 걸려 장차 21세기를 파멸시킬 버튼을 게임하듯이 누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끼는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통신을 권하지도 않고, 핸드폰도 권하지 않는다. 귀수불심, 이 넉 자 속에 요즈음 청소년들이나 첨단 기술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다 들어 있다.
- 이 말을 해주신 분이 올해 여든셋이니 13년 전인 1994년에 쓴 글같다. 13년전에 쓴 글이지만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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