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2 (화) 17:20
☞ 제일 무서운 건 세월이더라
내 나이는 마흔둘이다. 우리 나이로 말이다. 요즘에는 미국식으로 나이를 말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누가 나이를 말해줘도 좀처럼 몇 년생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등 서양에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 시작된다고 보는 데 반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체세포 분열이 끝나 태(胎)에 자리잡은 순간부터 생명으로 보고, 그래서 나이를 칠 때 이 기간을 합산해 준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옳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식 나이에는 태아가 곧 생명이라는 큰 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걸 깨닫고 철없이 미국식 나이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게 아니고, 내가 마흔둘이 되도록 사귄 친구들을 두루 헤아려 보자니 묘한 서글픔이 들어서 몇 자 적어보려는 것이다.
추석 같은 명절 때도 그렇고, 이따금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내려가면 고향에 머물러 사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날 때가 있다. 대개는 동갑내기들이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학교에서 6년을 부대끼고, 또 한 마을에서 자랐으니 서로 모르는 것 없이 훤히 잘 아는 사이다. 어린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서로 부르고, 찾아다녔다. 우리들이 비록 다른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다니고, 또 대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씩 서로가 모르는 일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도 그 사이 월남전 이야기니, 시월 유신 이야기니, 또는 박정희 급서 사건, 광주 사태 등 굵직굵직한 역사의 공기는 함께 마셨다. 그리고 어김없이 명절이 되면 다시 만나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점당 백원 내기 고스톱도 즐겼다. 물론 서로 자식을 두어 가장이 된 지금도 물고기를 잡아 죽을 쑤어먹고, 허허 웃으며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가슴 속에서는 왜 눈물이 흐르는 거지? 친구들도 그럴까? 몇 마디 나누다 보면 할 이야기가 없어진다. 이따금 흥분하여 저도 떠들고 나도 떠들 때가 있지만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나 관심없어 하는 일을 열변으로 토해낸다. 그러면 웃으면서 친구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이따금 안주를 씹으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친구의 눈동자나 씰룩거리는 볼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보려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는 이제 더 이상 공통점이 없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그 친구를 이제는 알 수 없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무슨 꿈을 꾸면서 사는지 모른다. 그저 만나면 소는 잘 크느냐, 건축 경기는 좋으냐, 이렇게 친구의 직업을 가까스로 기억해내며 고작 그따위 질문이나 던진다. 내가 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소설가란 게 책을 파는 서점 주인인지, 종이장사를 하는 건지 모를만큼 지력이 많이 떨어지는 친구도 있다. 그래도 파안대소하며 추억에 묻혀보려 애쓴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간다. 오늘 소중한 사람도 십년 뒤, 이십년 뒤, 혹은 삼십 년 뒤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두렵다. 그때에도 여전히 살갑게 정을 느끼며 척하면 알아듣는 일심(一心)의 벗이 될 수 있을지 두렵다.
어젯밤 주변의 친구들과 훌라놀이를 했다. 여섯이 쳐서 4클로버를 쥔 사람은 쉬고, 나머지 다섯이 놀이를 한다. 그러면 4클로버를 쥔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고 놀이를 할 권리를 사려고 애쓴다. 백원에 사자, 이백원은 돼야지 백원이 뭐냐고 말씨름이 오간 끝에 왁자지껄 게임에 들어간다. 게임 결과에 따른 벌금은 1등 백원, 2등 이백원, 3등 3백원, 4등 4백원이다. 그러므로 이긴 사람은 한 게임에 천원을 딴다. 그러면 천원을 딴 사람은 게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 위로금 백원을 지급한다. 다들 살만한 사람들이고 그중 내가 나이가 제일 어리다. 밥 산다고 몇 만원은 거뜬히 쓰고, 모일 적마다 맛난 음식을 푸짐하게 싸들고 오는 사람들이 훌라를 할 때는 백원짜리 동전 하나에 인생을 걸고, 명예를 건다. “백원 더 줘!” 하고 외치는 소리도 하나 이상하지 않다. 그 숨소리, 그 눈빛까지 다 정겹다. 한참 어울려 놀다가도 문득 모처럼 재미있는 훌라팀이 생겼는데,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놀아볼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삼십 년 전 정이 철철 넘치도록 함께 뛰놀던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안타깝게 만나던 심정이 언젠가 또 드는 게 아닐까. 십년 후쯤 우리 훌라팀이 어디선가 다시 만나 그간 잘 지내시느냐, 아이들은 공부 열심히 하느냐, 큰아들 군대는 갔다 왔느냐 이렇게 몇 마디 나누고 나면 서로 할 말이 궁해지지는 않을까.
학교 다닐 때는 반 친구들 이름이며 성격, 아버지 직업, 성적순까지 죄다 꿰었다. 그렇게 함께 깔깔거리며 함께 이야기하던 그 수많은 친구들의 이름이며 추억까지 이제는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잖는가. 살다보니 역시 무서운 건 세월이다.
- 마흔둘이라는 걸 보니 1999년쯤 쓴 글같다. 난 미래를 보는 눈이 있는가보다. 동네친구 하나는 기어이 암에 걸려 먼저 가버리고, 밑에 나오는 훌라팀은 산산이 부서졌다. 앞으로 절대로 다시 만나 훌라를 할 수 없는 인간관계로 나뉘어버렸다. 거기 참가했던 세 팀이 다 이혼하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더이상 만날 필요가 없는 세상으로 흩어져버렸다. 10년이 아니라 겨우 8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고보면 10년이란 얼마나 무서운 세월인지 알 수 있을 것같다. 그들과 재미나게 웃고 떠들던 그 많은 기억을 어쩌란 말인가. 에이, 남는 건 맨날 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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