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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창밖의 남자

창밖의 남자

몇 년전 미국에 살면서 국내 주간지에 시사만화를 발표하는 분이 오랜만에 귀국했다. 남의 나라에서 그 나라 돈을 벌어 먹고살자니 말못할 어려움이 많아 한 십여 년만에 겨우 귀국한 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이니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이 가까스로 복구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십년전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을 맞추어 머릿속에 재설정해 놓아야 했다. 서울 거리도 그렇고, 뉴스도 생경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쏘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신문사에서 일을 끝내고 형님댁이 있는 도시까지 전철을 탔다. 사람이 바쁘다 보면 옆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도 전철을 몇 번 이용했지만 전철 안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웬일인지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니 거기에 약간 낯선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고, 가슴에서 허리, 엉덩이까지 둥글둥글하게 내려간 게 중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내다. 마누라가 사준 옷이라서 그런지 그 나이에 알맞은 칙칙한 분위기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십년 전의 그 탱탱한 피부는 온데간데 없고 그야말로 중년의 신사가 그 자리에 서 있질 않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보니 그리 매끄럽질 못했다. 아침에 면도한 턱을 쓸어보니 까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그는 그날 목적지 역에 언제 도착했는지 모르도록 창밖의 남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미국땅에서 날려버린 10년, 그리고 이 생에서 살아온 45년여를 생각해 보았다. 머리가 희도록 무얼 생각했는가. 얼굴에 주름이 지도록 무얼 했는가.
회한(悔恨), 격정(激情), 작은 슬픔, 그리움, 아쉬움, 때때로 분노, 다짐…. 참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중년이구나. 중년답게 살아야겠구나.”
그는 스스로 중년임을 인정하고 전철안을 휘둘러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 회사원, 아가씨, 어린아이. 그러고 보니 자신이 그중 어디쯤에 속하는지 맞추어 넣을 수 있었다. 늙수그레해 보이는 사람들도 실은 자신과 크게 나이차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절감했다.

그는 며칠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따져보니 쉰이 넘은 것이다.

이 분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그와 같은 연배인 한 방송국 피디 때문이다. 살아가는 방식이 그 만화가하고는 사뭇 다르다. 그는 중년임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옷을 입는 걸 보아도 도무지 20대인지, 30대인지 구분이 안간다. 멀리서보면 젊은 청년 같다. 전화기를 타고 흘러오는 그이의 대사며 액센트 따위를 들어보면 댓살이나 어린 나보다 훨씬 더 어릴 것만 같다. 가까이 마주 앉아 찻잔을 들면서 바라보면야 영락없는 50 초로의 신사다. 그런 그가 토해 놓는 인생의 설계며 당장 하는 일, 현안을 풀어가는 사고 방식 따위를 들어보면 한창 젊은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민이 없지는 않다. 자신은 프로그램 연출을 계속하고 싶은데 후배들이 밀려와 자꾸 치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이니 뭐니 하면서 높은 직급이 저절로 떨어지고, 현역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승진, 영전 같은 어휘가 어울린다. 결국 후배들의 아우성에 하나둘 일손을 놓고 관리자가 되어간다는 걸 참을 수 없다며 머지않아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주장했다.
“안되면 영화라도 찍겠다, 연극이라도 하겠다. 난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있고 싶다.”
그 마음, 이제는 알 것같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마다 어깨와 손목이 자꾸 아파와서 나이를 실감하고 있던 터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솟는 듯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데도 나는 손가락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안그러면 손가락 근육이 아파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쉰 정도가 정년이라고들 한다. 한국인의 체력이 달려서 그런지 대개 그 나이가 되면 일손을 놓는다. 빠르게는 마흔다섯 쯤에서 손을 놓기 시작하는 소설가가 대부분이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소설가들도 쉰이 되면 갑자기 작품 활동이 뜸해진다. 한 3년에 한번 작품을 발표할까말까다. 두뇌 활동으로 소진되는 에너지도 많지만 장시간에 걸쳐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체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내 문제다. 나 역시 어제 서울에 갔다가 전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고개 운동을 두어 번 해보았다.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쓰고싶은 글은 넘치고 넘치는데 벌써 나이가 들어간다니, 이러다 쓰고싶은 글 다 못쓰고 마는 게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축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올리니 깔끔하게 보였다. 머리카락, 그건 유전일 뿐이다. 아버지, 형님들이 줄줄이 희끗하니 나 역시 나이에 관계없이 새치가 좀 났을 뿐이다.
‘까짓 거 여차하면 확 염색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노랑? 아니면 빨강? 빨강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좀 칙칙한 노랑? 아무래도 염색은 안되겠다. 그렇지. 눈에 불을 켜고 그걸 끄지 않으면 된다. 눈에 불이 들어 있는 한 난 늙지 않을 테니까.’

그러던 끝에 나는 버스를 타려고 고속버스터미널역에 내렸다가 바로 버스를 타지 않고, 근처에 있는 전자센터 빌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만보계를 샀다. 그리고 일부러 빙 돌아서 걷다가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해서도 괜히 마당을 한 바퀴 돌아서 들어갔다. 그러면서 수치가 쑥쑥 오르는 만보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난 일을 해야 하니까.

이런 결심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딸아이는 나만 보면 흰머리를 가지고 시비붙고, 여차하면 친구들 아빠보다 더 늙었느니 어쩌니 투덜거린다. 딸이 자라면 자랄수록 기분 좋은 게 아빠 마음이건만, 딸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저하고 나하고 서른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런데도 치받으면서 크고 싶은 모양이다. 글을 쓰는 데도 느닷없이 어깨를 툭 치고 도망가기도 하고, 귀에다 소리를 꽥 지르고 제 방으로 튀기도 한다. 아직까지 놀아줄 상대로 인정해주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딸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불안하다. 거울 보는 것도 겁이 난다. 이런 날이면 창밖의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회한에 빠졌다는 그 만화가가 생각나지만, 그것도 그리 길지 못하다.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시골 어머니께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보는데 걸리질 않는다. 집 전화도 안받고 휴대전화도 받지 않으신다. 초조한 마음에 동생한테 물어도 모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오후가 돼서야 가까스로 휴대전화로 연결되어 왜 전화가 안되느냐고 큰소리치니, 어머니는 이웃집하고 고추심는 품앗이하느라고 전화가 안되는 어느 골짜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버이날인데 찾아가지도 못하면서 알량하게 용돈이나 부쳤으니 찾아쓰시라는 전화를 한다는 게 이 지경이 됐다. 일흔다섯이신데 품앗이를 다니시다니, 그렇게라도 고추를 심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어버이날까지 일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는 나이 들었다고, 창밖의 남자니 어쩌니 글을 쓰는 게 부끄럽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건데 괜시리 거울을 봐가지고는 왜 이런 회한에 잠긴단 말인가. 어머니가 답인데 말이다.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