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0 (월) 21:30
사주 역술에 대한 유감
사주나 역술이란 어휘를 들으면 난 기분이 나쁘다. 소설가가 그런 데 신경쓸 필요가 없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런 어휘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싶은데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하필 <소설 토정비결>이다보니 나 스스로 굴레를 뒤집어쓴 꼴이 되어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소설 토정비결>도 실은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자 도가 수련의 달인이던 토정 이지함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건만, 이게 무슨 역술이나 사주책인 줄 지레짐작하는 독자들이 있는가보다. 읽은 독자들이야 다르겠지만 안읽은 사람들이 특히 그런 선입관을 강하게 갖고 있는 모양이다. 350만부라는 책이 팔렸지만 대한민국 인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인지.
특히 내 이름을 딴 역술인이 두 명이나 행세하고 있다니 더 답답하다. 내가 무슨 조용필도 아니고 왜 역술인 예명에 내 이름을 갖다쓰는지 정말 화가 난다. 사기로 고소할 수도 없다. 하긴 내 이름을 나만 쓰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학자들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공무원도 있는데 그런 쓰레기들이 우리들 공동의 이름을 갖다 지저분하게 쓰는 데는 다같이 화가 날 것이다.
그래서 말 안하려고 늘 참고 참던 걸 여기 써야만 하겠다.
난 사주나 역술, 명리학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많이 참았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역술인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자유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만 갖다쓰지 않았어도 이런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이름을 역술인들이 베껴쓰지 않도록 하는 바람으로 적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주는 명백한 미신이다. 사주로 미래를 훤히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놈들은 다 거짓말쟁이다. 아니면 사기꾼일 뿐이다. 하긴 내가 아는 한 역술인은 고졸인데 지방대학 무슨 센터에서 강의한 걸 가지고 아예 교수역술인 행세를 하고, 전문대 출신인 한 역술인은 버젓이 그럴 듯한 대학교 졸업이라고 학력을 내세우니 다른 역술인들 중에서도 무슨 박사라고 하는 몇몇을 검증해보면 아마도 가관일 것이다. 물론 정규 언론에서는 이런 사람들까지 검증하기에는 자존심상해 안하겠지만.
지리산 10년, 계룡산 10년 식으로 아무리 오래 공부해도 남의 미래를 알 수 없다. 또한 역술인 자신의 미래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사주의 이론 중 기본 명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주 이론에 대해 의심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안다. 그러나 나는 이론을 직접 점검하고, 통계를 통해 사주가 허구라는 걸 명백하게 알아냈다. 사주가 같으면 같은 일생을 살아간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흔히 역술인들은 이거 거부 사주네, 이거 첩 사주네, 이거 조실부모할 사주네, 이건 살아있지 않은 사람의 사주네, 이따위 망발을 한다. 그러면 한국인 5천만 중에 사주가 같은 이가 한 사주에 대략 1백여 명이 있고, 전세계에 1만 명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거부고, 다 첩이고, 다 조실부모하는가. 특히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장남은 조실부모할 사주고, 차남은 부모가 장수할 사주라고 감정하는 어리석은 놈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장남 기준이라고 둘러대는 놈도 있다.
하여튼 같은 사주는 같은 날 같은 시에 일제히 죽는가. 이런 게 말이 되는가. 내가 아까운 돈 수억원을 들여 통계를 내보니, 이런 일은 없다. 사주가 같아도 누군 부자고, 누군 가난하고, 누군 정치하고, 누군 장사하고, 누군 오래 살고, 누군 몸이 허약하고, 누군 스포츠선수다.
얼마 전 내가 아는 출판사에서 유명하다는 한 역술인이 책을 냈다. 사장이 나더러 좀 괜찮은 책인지 봐달라고 해서 내용을 살펴봤더니 어찌나 신념이 강한지 이 사람은 세상사 모르는 게 없을 만큼 아무 주제나 갖다가 마구 지껄였다. 그러나 어쩌랴. 거의 도사 수준으로 지껄인 내용 중에 사주는 음력으로 보는 것이고, 음력으로 보지 않고 양력으로 보는 건 엉터리다, 24절기도 봐라, 그거 음력으로 그렇게 정확하게 아는 거 아니냐, 이따위 쓰레기 같은 글이 꽉 들어차 있었다. 중학교만 제대로 나와도 24절기가 양력으로 계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텐데, 그 이는 그만한 학력도 안되는가 보다. 사주 명식을 뽑을 때는 음력으로 말해도 다시 양력으로 환산해서 사주를 뽑는 것이다. 만세력이라는 게 바로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사주를 뽑으라고 있는 책이다. 이런 수준 이하 인간들이 무슨 도사입네 하고 다음 대통령은 무슨 무슨 사람이 되니 안되니 헛소리들 한다. 그러니 이런 인간을 유명하게 만드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긴 신문마다 '오늘의 운세'를 싣고 유명 신문에서 역술인 칼럼까지 싣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주로 알 수 있는 게 약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아주 낮은 수준의 기미를 짐작이나 할 뿐이다.
나는 1992년에 그해가 임신년이라길래 역술인들더러 왜 임신년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물어본 역술인들은 이 원리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기초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임신년이 왜 임신년인지도 모르면서 사주를 본다는 게, 학문하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물어도 물어도 아는 놈이 없어 내가 직접 고려왕조실록을 뒤지고, 이어 사기 천관서를 뒤져서야 겨우 그 까닭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뒤로 내가 최소한 이런 원리쯤은 알아두라고 역술인들에게 알려줘서 지금은 아는 사람이 많다.
내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주명리학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팔자를 생년도 아니고 생월도 아니고 생일로 잡고, 그것도 생일의 지지도 아니고 천간으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그 까닭을 물었지만, 이 역시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생년의 천간은 자기가 아닌가? 생년의 지지는 자기가 아닌가? 이런 기초적인 의문에 대해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 고서를 뒤져봤지만 찾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의문을 가진 지 10여년만에 가까스로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알고나니 웃음이 나왔다. 명백한 미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술인들이 너무 충격받을까봐 발설은 삼가겠다. 하여튼 미신인 줄이나 알고 조용히 음지에서 어리석은 사람들 인생상담이나 해주며 살아줬으면 좋겠다.
또 하나 이건 밝혀도 괜찮을 테니 적어보겠다. 쥐띠니 소띠니 하는 십이지지가 무슨 황제니 문왕이니 하는 놈들이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역술인들이 쓴 책마다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다. 십이지지는 중국에서 생긴 게 아니다. 그러니 그놈들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요즘은 글로벌 세상이라 십이지지를 쓰는 나라가 어디어디인지 다 나온다. 십이지지는 아랍, 인도, 아시아 각국, 미 대륙까지 쓴다. 기록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나온 곳은 아랍(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 바빌로니아)이고, 그 다음이 인도다. 그것이 중국으로 들어가 십이지지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주명리학이란 사상누각의 미신이요, 잡설일 뿐이다. 그래도 의지하고 싶으면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요즘은 상담심리학이 발달해서 굳이 역술인 찾지 않아도 전문상담소에서 많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또 뇌과학이 발달해서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문제를 푸는 도구가 잘 발달되어 있다. 그러니 제발 역술인 찾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내 이름하고 같은 이 만나거든 제발 다른 이름으로 바꾸든가, 본명으로 떳떳이 쓰라고 권해주기 바란다. 내 이름 더러워진다고, 이름 주인이 싫어하더라고.
아, 또 하나, 역술만으로는 안되어 부적 쓰고 풍수 보게 하는데, 그것도 다 거짓말이다. 부적에 대해서는 내가 철저히 연구한 게 있는데 100% 거짓말이다. 풍수는 일부 좋은 이론이 있지만 역술한다고 다 풍수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아는 역술인 중에도 지리학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나침반들고 다니며 저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는 이가 있다. 마음이 불안하기야 하겠지만 죽은 이가 뭘 도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서 잘 사는 방도를 연구하는 게 백번 낫다.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에게 몇십만원, 몇백만원 줄 거면 복지기관에 기부하는 게 적선에 좋다.
그만 쓰고 입씻어야겠다. 다소 거친 표현은 나중에 다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