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쓴 글
요즘 대구에서 북한 운동 선수와 응원단이 U대회라는 걸 한다고 시끄럽군요. 난 다른 나라 선수들 얘기는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해서 북한하고 우리만 경기하는 줄 착각이 들곤 한답니다.
하여튼 한총련인가 하는 데서는 응원하러 다니기 바쁘다고 하고, 보수단체 몇 군데서는 옛날에 한총련이 하던 것처럼 거꾸로 시위하느라 바쁘다고요. 하여튼 통일이 큰 화두로 등장한 요즈음,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픕니다.
저는 역사 문제를 소재를 글을 쓰는 작가이다 보니 통일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다릅니다.
요즈음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는 거지요. 고구려가 망한 뒤 당나라에 편입됐고, 그 자리에서 발해가 일어났다는 거지요. 그래서 발해사는 일찌감치 중국사가 됐고요. 발해가 일어났던 자리에서 나중에 금나라가 일어나고, 청나라가 일어났는데, 금과 청도 역시 중국 역사가 돼버렸지요.
저는 1992년에 처음 발해 유적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이놈들이 숨김없이 자료를 다 보여주더라고요. 왜냐하면 자기네 역사니까 자랑스럽게 보여준다는 거에요. 발해유물관 같은 데 가봐도 그렇고, 성지를 가봐도 그렇고 다 같은 소리를 해요. 그래서 이것 큰일났구나 싶었는데, 불과 10여년이 지난 지금 고구려까지 덥석 중국사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틈틈이 고구려-발해-금-청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우리 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실제로 여진족이 고구려 백성이었던 건 불변의 사실인 데다, 금나라 시조 아구타의 시조는 고려인이라고 저희들 책에 버젓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고매하신 조선의 선비들이 오랑캐, 오랑캐 하면서 배척한 거지요. 우리 고려왕조실록에만 보아도 금나라가 망한 뒤 많은 부족장들이 속국을 자처하고 공물을 바치러 수없이 드나듭니다. 세조 때에는 이 사람들과 우리 변방의 백성들하고 합쳐 나라를 세우기도 합니다. 이징옥이 대금국의 황제로 등극하는 거지요. 몇 달 안가 토벌되긴 했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단 말입니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누르하치가 조선병마사 벼슬 하나만 주면 기마군을 이끌고 가서 조선을 구하겠다고 제의했지만, 오랑캐는 빠지라는 조정대신들의 서릿발 같은 중화사상에 밀려 실패했지요. 대마도는 또 어떻구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전까지 대마도는 조선국 경상좌도 대마도 병마사가 다스리는 땅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적장으로 할 수 없이 들어왔던 대마도주 종의지는 전쟁을 막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포기했지요.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는 조선 사람도 없고, 그저 오랑캐나 사는 더러운 땅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지요.
그렇게 세월이 지났습니다. 고구려의 맥을 이어오던 대청제국은 망하고, 오늘날 고구려족의 후신인 만주족은 문화도, 역사도 잃고 중국내의 소수민족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도 쉽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 집단이 웃기는 짓을 자주 하지만, 그런 건 내버려둡시다. 우리 역린만 안건드린다면 기쁨조를 운영하든, 장군님 초상화가 비맞는다고 우르르 내려 떼어가든 그저 그네들 덕분에 한번 잘 웃었다, 이렇게 넘어갑시다
김정일이 북한 주민들을 아무리 사상적으로 가르치고 쇠뇌한다고 해도 불과 이삼년이면 그 독이 다 빠집니다. 전에 <남부군>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빨치산 입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이 빨치산들이 토벌대를 마구 공격하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답니다. 그런 겁니다. 카메라가 경찰쪽에 있느냐, 시위대 쪽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 시각이 저절로 설정되는 것처럼요. 우리 주적을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잖아요.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병이 뭐냐 하면, 과거사를 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일본, 마땅히 식민지배며 임진왜란을 근거로 따질 건 따져야지요. 따지는 이유는 놈들이 다시는 우리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고, 아울러 우리는 놈들이 또 그런 짓을 하더라도(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은 반드시 합니다.) 이번만은 안당한다는 각오로 우리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싫다고 일본 제품도 싫고, 일본인 개개인도 싫은 건 아니지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배울 건 배우고, 교류할 건 하면서 경게를 해야지요. 일본에는 한국 사회나 문화 등을 연구하는 모임이 부지기수로 많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이 무슨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요. 이러다 또 당합니다.
요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보면 겁이 납니다. 모든 게 다 善이 돼버리는 것같아요. 김정일은 김정일이고, 김일성은 김일성입니다. 늑대를 훈련시키더라도 이놈은 맹수다 하는 전제하에 길을 들여야지, 이놈이 설마 날 물겠느냐,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국가 지도자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으면 나라 말아먹는 거 시간 문제입니다. 국가 지도자는 가장 보수적인 시각에서 국제 정세를 보고 결단을 내릴 때는 가장 진보적으로 해야 합니다.
북한 응원단, 맞습니다. 예쁜 거 맞습니다. 미인 구경 실컷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김정일 얼굴이 예뻐지진 않지요. 응원단 아가씨들이 예쁘다고 김정일도 예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2천년 전에나 유행하던 미인계에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속아넘어가는 거지요.
통일, 갈라진 지 58년여가 됐습니다. 마치 고구려처럼 돼갑니다. 우리가 금나라와 청나라를 남의 나라로 알고 살아온 것처럼 지금 북한은 남의 나라가 돼 갑니다. 무조건적으로 끌어안는 것도,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안됩니다. 그러니 남북 분단 후의 북한 역사도 우리 국사책에 넣어 가르쳐야 합니다. 김일성이 무슨 일을 하다 죽었는지, 지금 북한 체제가 어떤 건지, 경제는 어떤지 마치 우리나라 이야기처럼 자세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시시비비가 분명해지고, 그래야 통일 의지도 솟구칩니다.
내 생전에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 정책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 겁니다. 매우 복잡하지요. 그럴수록 공부라도 많이 해둡시다. 알고 찬성하고, 알고 반대합시다. 꽃같이 예쁜 아가씨가 통일구호를 외치거든 그 아가씨가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생활을 하나, 이런 것도 궁금해 합시다. 그냥 생각하는 백성이 됩시다.
백성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훌륭한 지도자가 나옵니다. 눈감고 투표하니까 나라가 이렇게 어지럽습니다. 인물 없다고 비난하지 말고, 잘 찾아봅시다. 인물 하나 잘 뽑으면 나라가 벌떡 일어나는 거고, 잘 못 뽑으면 나라 망하는 겁니다. 정치 싫다고, 염증난다고 딴데 쳐다보는 게 더 나쁩니다. 어차피 국가 운영은 지도자가 해야 하고, 우리 유권자는 그 지도자를 잘 뽑는 의무만 이행하면 됩니다. 그래야 통일이고 뭐고 다 잘됩니다.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이 사람들이 이 민족의 지도자 맞습니까?
- 이른바 '북한 미녀 응원단.' 이들은 체육대회를 응원하러 온 게 아니라 북한을 선전하러온 것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고나서 그들 얼굴을 감상하시라. 미녀는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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