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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한의학에 대한 짧은 생각

2007/09/02 (일) 13:21

 

한의학에 대한 짧은 생각

 
 “우리 가족이 먼저 써 보고 약효가 증명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주사할 수 있다. 만일 잘못되면 우리 식구는 모두 마마(천연두)에 걸려 죽게 될지도 모르고, 낫는다 해도 곰보가 될지 모른다.”
미국 해군으로부터 종두법을 배우고 스스로 주사한 지석영은 자식들에게 우두(牛痘)를 접종하고, 이어서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설득하여 예방 접종을 실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유교 사상에 밀려 의학 실험이 활발하지는 못했다. 유림(儒林)들은 신체에 칼을 대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아무리 중증인 환자라도 여성인 경우에는 손목에 실을 매어 진맥을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조선시대 의학은 잡술(雜術)의 하나로 취급되었고, 의원들의 계급 또한 중인 신분을 면치 못했다. 그러므로 허준 정도의 내의원 어의(御醫)나 이제마 같은 양반 유의(儒醫) 정도는 되어야 실험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의원들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제마 같은 경우 사상체질을 발견한 이후 태양인인 자신에게 좋지 않은 무, 인삼, 더덕 따위를 써 보고 배탈 설사에 시달리는 등 수년 간 자기 자신만의 실험을 거듭했다. 그후 확신을 가진 그는 사상의학을 더 체계화하기 위하여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약 1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실증 자료를 얻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최린 같은 천도교의 거물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장작더미를 옮기도록 시켜 보거나, 소양 체질의 처녀를 치료하기 위해 속옷까지 냅다 벗겨버리거나, 갑자기 환자의 따귀를 때리는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이같은 실험 끝에 그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경우, 스승 유의태가 제자인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해부하여 위암의 정체를 밝히라고 유언했다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 전한다.
“밤중에 일어나서 이를 아홉 번 마주치고, 침을 아홉 번 삼키며, 손으로 좌우상하 열이나도록 코를 비빈다.……오른손으로 왼쪽귀를 27번 문지르고, 왼손으로 오른쪽귀를 37번 문지르면 수명이 길어진다.”
동의보감중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내경(內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모두 6권으로 된 내경은 주로 도가의 양생(養生), 기공(氣功) 등 도가적인 개념들이 상당 부분 들어 있는데, 인용한 글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동의보감 중 내경편을 직접 쓴 정작(鄭碏)이 도가 술사로 유명한 그의 형 정염(鄭Ꜿ) 등이 모든 선가의 도인양생술(導引養生術)을 결집한 때문이다.
도가의 술사들은 단 한 알만 먹으면 단번에 신선이 되거나 깨우치게 된다는 신비한 환단을 만드느라 평생을 바치는 다소 황당한 사람들이었다. 환단(丸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은 각종 치료제를 무수히 만들어냈다. 수많은 도사들이 약물에 중독되어 죽었지만 그 부산물로 나온 결과 중에서는 의학적으로는 요긴한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한의학 쪽으로 생체실험의 현장을 더 찾아가 보자면 한의학(韓醫學)의 시조(始祖)라는 신농(神農)을 만나게 된다. 신농은 수렵과 어업으로 살아가던 옛날에 열매와 풀뿌리 따위를 일일이 맛을 보아 약성을 찾고 독성을 가렸다. 그중에서 독이 없는 것을 가려 음식으로 상식(常食)하게 하였고, 그런 것을 재배하는 농업을 일으켰다. 그때 염제 신농은 독성이 있는 약초, 독초, 독버섯들까지 먹다가 그 독이 올라 얼굴이 퉁퉁 붓고 일그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신농을 그린 인물화에는 으레 우락부락하고 혹이 서너 개쯤은 달려 있는 것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처럼 한의학(韓醫學)이 유교와 신분사회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주사법이나 수술법 없이 구침약(灸鍼藥;뜸, 침, 약) 세 가지만 가지고도 서양의학에 못지않는 발전을 거듭해 온 데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한의사들의 임상 정신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전에 어떤 주간지에 발표했던 글이다. 글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을 보고 한의학에 대한 환상이라도 갖고 무작정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그 반대되는 글도 덧붙인다.)
 
하지만 한의학은 지금 침체가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근거없는 잡술로 돈벌이에 나서는 의원들이 많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같다. 뜸은 안쓰는 곳이 많고, 침은 보편화되어 잘 사업이 안되고, 남은 게 약인데, 사실 한의학에서 쓰는 약이라는 게 절반은 엉터리인 <동의보감>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동의보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미신으로 가득 차 있는지 까발린다면 독자들도 놀랄 것이다. 내 손으로 쓰기보다 직접 동의보감 원전을 읽어보시는 게 좋겠다. 그러니 <동의보감>에 나온다고 해서 꼭 믿지는 말아야 한다.

 

또 대부분의 한의원들이 그간 보약으로 장사를 해온 듯한데, 오늘날의 영양제가 적재적소에 투여하는 효과적인 처방으로 발전하면서 ‘보약’ 자체가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살빼는 약(안써봐 모르겠지만 신통해보이지는 않는다), 키크는 약(99퍼센트 가짜다. 아이고, 딸 때문에 버린 돈 생각하면...), 담석이나 간 독 다스리는 약(99퍼센트 가짜다. 올리브유로 설사시키는 건 사기다) 등 벼라별 희한한 약이 한의원에 즐비하던데, 그거 아무것도 임상실험을 통과한 게 없다. 잘못 먹으면 큰일날지도 모르니 한의학을 사랑하는 환자라면 가급적 대학병원이나 한방종합병원 등을 찾아가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런 병원은 나중에 잘못되면 책임이라도 질 테니까. 우리 재종형님 한 분이 간기능을 개선한다고 한약 먹었다가 지금 치유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 소송해봤자 법원은 의사들 편이라 잘 통하지도 않는다. 임상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한의학계 관행 때문에 불쌍한 환자들이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실험 데이터도 챙기려 들지 않는다.

 

한의학은 무한한 지식 정보를 갖고 있다. 가능성은 크다고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실험 정신이 없고, 임상 정신이 없는 한 발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의학 자체가 소멸(지금과 같은 방식을 말함)될 날이 멀지 않다. 한의학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침은 이미 양방에서 흡수해버렸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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