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5/11 (금) 21:29
봄을 본다, 봄을 듣는다
엊그제 일요일에 된장을 담갔다. 지난 해 11월에 메주를 쑤어 처마에 줄줄이 달아매 두었던 것을 지난 1월말 누룩곰팡이가 노랗게 생기도록(시퍼런 건 안좋다고 한다) 띄웠고, 어제서야 그것을 꺼내 솔로 비벼 털고 소금물을 채운 장독에 담근 것이다. 이른바 정월장을 만들기 위해 날짜를 지켰다. 미신이긴 하지만 금기라는 신일(辛日)도 피했다.
장독 다섯 개를 다 채우고 나서 숯을 몇 개씩 넣고, 빨갛게 잘 말린 고추도 서너 개씩 넣었다. 어머니는 참깨를 뿌리고 말린 대추도 넣었다.
이제 한달 반이나 두 달 후가 되면 소금물을 머금은 메주를 꺼내 된장을 따로 담아 1년쯤 숙성시킬 것이고, 그때 장독에 남은 짙은 갈색의 물을 따로 가마솥에 모아 불로 졸이면 조선간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집, 그리고 형제들까지 먹을 된장, 간장 준비는 끝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봄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한다.
과수나무에 거름을 내는 것도 이 철에 할 일이다. 밑동을 묶어주었던 짚을 떼어내 불지르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될 일이다.
수돗가에 미니로 만들어 놓은 미나리꽝도 손질해서 싹이 잘 나오도록 다듬어야 한다. 지난 해 피었던 국화대는 낫으로 베어 한쪽에 뉘어놓아야 거름이 된다.
친구가 찾아와 풍성하게 자란 맥문동을 캐어 그 뿌리에 달린 알맹이(괴근)를 여나믄 개 따 주었다. 친구 말에 따르면 폐에 좋고, 어디 좋고, 저기도 좋다길래 그저 웃으면서 한 주전자 달여먹으며 한 해 건강에 관해 덕담을 나누었다.
벌써부터 냉이류는 고개를 내밀고 있어 호미만 들고나가면 어느 밭에서든지 한 소쿠리 넉넉히 캐올 수 있다. 언덕배기를 거닐다 운이 좋으면 고들빼기 같은 씀바귀류의 쓴 나물을 캘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은 서울보다 사나흘 봄이 더 늦게 온다. 서울에는 차도 많고, 빌딩에서 내뿜는 열기도 많아서 저절로 열섬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용인보다 늘 더 따뜻하다. 그렇지만 봄을 느끼는 강도는 사뭇 다르다.
내 차에는 온도계가 달려 있어서 어딜 나가거나 들어올 때는 온도계를 습관적으로 바라보는데, 3월초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밤이 대부분이다. 낮빛만 믿고 강아지들을 밖에서 재우려 했다가 화들짝 놀라서 아이들을 현관으로 불러들이거나, 안쓰러운 마음에 따뜻한 음식을 해먹이기도 한다.
보일러실에 기름 떨어지는 속도는 줄어든 것같은데, 날씨는 얼른 따뜻해지지 않는다. 봄동이 오를 듯 말 듯해서 애간장을 태운다. 쓱 뽑아다가 양념된장에 무쳐 먹었으면 좋겠는데, 자라는 속도를 보면 아직도 남쪽 산기슭을 따라 지나가는 태양이 밉다.
밖에 나가 오솔길을 산책하다보면 아, 봄이 오는가 보다 하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특별한 게 아니라 바람 한 자락에 묻어 있는 온기만으로도 그런 걸 알 수 있게 된다. 혹시 남산이나 관악산에 가면 그런 걸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곳 전원에서 느끼는 감동하고는 다를 것이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거름을 싣고 밭으로 나가는 경운기 소리가 들려오고,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홰를 치는 닭의 울음소리도 활기차다.
이러다가 어느 날 산수유 나무에 꽃망울이 터지기라도 하면 그 순간 가슴이 턱 막히면서 그래, 봄이야, 봄, 그러면서 흥분한다. 그뒤로는 목련나무에 겨우내 달려 있던 커다란 꽃눈을 날마다 노려본다.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보고 또 보면, 매일매일 조금씩 눈을 뜨는데, 어느 날 아침 활짝 눈을 뜨고 빙긋이 웃는 목련꽃을 보게 된다. 기다림 끝에 보게 되는 목련은 공원이나 남의 집 담장 너머로 피어 있는 도시의 목련하고는 정말 품격이 다르다.
그때쯤이면 죽은 듯이, 지친 듯이 서 있던 집 바깥의 참나무, 엄나무, 느티나무 가지에 연둣빛이 감돌고, 뭔가 두런거리는 듯한 생명의 소리가 참말로 들려온다.
지난 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지난 겨울에 누가 죽었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 이런저런 회한을 묻어버리고 어쨌거나 노랗게, 어쨌거나 빨갛게, 어쨌거나 하얗게 꽃을 피워야 한다. 다시 살아 있음을, 다시 살아가야 함을 뼈저리게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안그러면 지난 겨울, 지난 해의 아득한 기억을 어찌 다 털어내랴.
봄은 그래서 망각을 갖다주는 약인가 보다. 다시 처음이라고, 이제부터라도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따뜻하게 속삭이는 듯하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예쁜 꽃망울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갖은 시름이 스르르 녹는 듯하다. 그러고는 가슴을 한번 쭈욱 펴고 그래, 힘내야지 하고 주먹을 꼭 쥐게 만든다.
내가 힘들 때 나보다 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으면서 날 위로하던 나무들, 내가 기쁠 때는 나보다 더 기쁜 모습으로 서 있으면서 기쁨을 함께 나눈 나무들이 새 봄을 알려준다. 그래, 봄이다, 봄.
- 용수마을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