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5/11 (금) 21:35
교교(皎皎)하게 흐르는 달빛을 보셨나요?
시골에 살다 보니 자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해진다. 24절기가 있다는 건 지식으로 알았지만 그걸 몸으로 깨달은 건 퍽이나 늦었다. 그래서 지금은 하루 날씨가 흐리고 맑은 것에 내 기분까지 왔다갔다한다. 서울 살 때에는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무덤덤했는데, 매일같이 창밖을 내다보니 산색(山色)의 미세한 작은 변화까지 다 느낄 수 있게 되었다.
4월, 5월, 6월의 색깔 변화는 현란하기까지 하다. 6월에는 송화가루 냄새, 아카시아꽃 냄새, 밤꽃 냄새가 차례로 불어와 코끝을 간지른다. 물론 이러한 갖가지 변화는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다.
그중 재작년 겨울에 깜짝 놀란(나나 놀라지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경험이 있다.
달빛이 교교(皎皎)하다는 표현은 고전에 자주 나오는 말인데, 난 그저 교교란 음감(音感)만 가지고 그 뜻을 여러 곳에서 썼다. 아마 이 어휘를 뜻도 모르고 써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교교한 달빛,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 선배 작가가 왔다 가는 길에 동구밖까지 나가 배웅한 적이 있었다. 떠들다보니 밤 한 시가 넘었을 때였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고, 온도는 영하 10도 정도 되었다. 습도는 거의 느껴지지 않은 걸로 보아 40-50% 미만이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온 동네가 은빛으로 빛나길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둥근달(滿月)이 둥실 떠 있는데, 그야말로 ‘교교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기 하늘 좀 보세요. 달빛이 정말 교교하네요.”
한자 교(皎)를 보면 흰 백(白)을 변으로 써서 그 빛이 희다는 걸 표현했다. 그런데 그날 달빛은 정말 흰빛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그냥 백색이 아니라 물감 자체가 깊이 퍼지는 듯 진했다. 화이트 80이나 90정도에 옐로우(Y)와 샤이안(C)을 아주 조금 섞은 달빛이었다.
그날 이후 달이 뜨면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그날의 교교함을 찾아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된다. 우선 날씨가 맑아야 하고, 습도가 극히 낮아야 하고, 달의 고도(高度)가 정중(正中)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기중의 먼지나 수증기에 산란되는 게 적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어려운 게 습도라서 달빛이 교교하게 빛나는 걸 자주 보기 어렵다. 특히 몇해 전까지 살던 다른 동네는 평균 습도가 너무 높아 좋은 달빛을 본 적이 드물다.
달빛만이 아니다.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햇빛도 그렇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햇빛은 늘 같은 게 아니라 고도에 따라 사뭇 그 느낌이 달라진다. 실제 색깔까지 다르다. 한뼘 한뼘 해가 지나갈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참으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앞산 녹음도 위에서 햇빛을 뿌릴 때하고 오른쪽에서 뿌릴 때 서로 명암이 달라지고 색감이 변해 딴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해와 달의 흐름을 나보다 더 민감하게 보고 주시하는 생명체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텃밭을 가꾸다 보니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가 작물을 살피는 게 취미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씨앗이 발아되는 순간부터 잎이 말라 고사(枯死)할 때까지의 생장 과정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식물이 해와 달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과학자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눈빛만큼이나 진지하다. 해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는 것이며, 잎사귀를 가급적 겹치지 않게 펴려고 몸을 감는 나팔꽃 같은 덩굴식물을 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수분과 햇빛이 좋을 때는 성장에 치중하다가도 장마가 계속되거나 가뭄이 심할 때는 얼른 자구책을 찾는다. 식물은 씨앗을 언제 맺게 할 것인가를 가장 신중하게 결정하는 듯하다. 같은 명아주라도 내가 물을 주며 기르는 명아주는 지름이 3-4센티미터가 되도록 무성하게 자라지만 바위틈에서 자라는 명아주는 지름이 3밀리미터밖에 안되는데도 벌써 씨앗을 맺어버린다. 자신의 처지와 햇빛, 수분 등 주변 조건을 고려하여 즉시 반응하는 걸 보면 식물도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는 듯하다.
이렇듯 자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가 보다. 전원생활에서 느끼는 큰 즐거움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