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5/11 (금) 21:40
여름 정원
전원생활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만화방창(萬化方暢)한 정원을 감상하는 일이다. 정원을 얼마나 잘 가꾸었느냐에 따라 주택의 얼굴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수나 정원수를 적절히 배치해 놓고, 잔디를 푸르게 깔아놓으면 이런 정원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봄은 봄대로 꽃을 감상할 수 있고, 여름은 여름대로 녹음을 즐길 수 있고 , 가을은 가을대로 단풍을 볼 수 있다. 겨울 함박눈도 정원에 흩날릴 때야 제 멋이 난다. 달밤에 그날 깎은 잔디밭을 거닐거나, 낙엽이 수북히 쌓인 마당에 서서 석양을 보는 것도, 설화(雪花)가 핀 한 겨울 정원을 감상하는 맛은 제각기 일품이다.
그러나 어느 집 정원이나 다 이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조건이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잔디마당은 해충이 서식하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에 진드기 등이 우글거리기 십상이고, 개미, 지렁이 따위도 굉장히 많이 산다. 그런 잔디 위에서 아기들을 발가벗겨 놓고 뛰놀게 한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푹신하다고 해서 다치지 않겠지 하는 것만 생각하지 아이가 넘어졌을 때 얼마나 많은 잡충이 아기를 공격할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특히 습기가 많은 북향(北向) 마당이나 습지에 잔디마당을 가꾸어 놓으면 큰일난다. 잔디를 한 꺼풀만 벗겨놓고 보면 모기, 나방 같은 해충들이 득실거린다. 여름 잔디밭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을과 봄에는 유행성출혈열을 옮기는 들쥐떼가 지나갈 수도 있어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런 계절에는 아이들이 마른 잔디밭에서 뒹굴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잔디 대신 모래를 깔아버리거나 잡석가루를 덮어놓으면 여름 내내 풀 뽑느라 신경이 쓰여 전원을 즐길 여유를 갖지 못한다. 여름 한 철 맨마당에 난 잡초를 뽑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오뉴월에는 그야말로 풀을 뽑고 뒤돌아보면 또 풀이 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이따금 아스팔트를 깔아버리거나 시멘트를 쳐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글쎄 그것도 멋이라고 느낀다면, 그것도 전원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이번에는 수목(樹木)을 돌아보자.
여름 정원의 백미는 그늘이다. 봄 정원이 꽃이라면 가을 정원은 단풍이고, 겨울 정원은 잘 전지된 수목의 육체미에 있다.
여름 정원의 백미인 그늘을 잘 만들려면 서쪽 또는 남쪽 또는 남서쪽에 활엽수를 심어야 한다. 그래야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지고, 이 활엽수들은 햇볕이 필요한 겨울철에는 막상 잎을 다 떨궈줌으로써 일조권을 지켜준다. 겨울에 햇빛이 잘 들어야 좋다는 것은 천만번 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니 남쪽과 서쪽에 상록수를 심어 겨울 햇빛을 가로막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상록수는 북쪽과 동쪽에 심어야 한다. 동쪽은 이른 아침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인데, 해는 대부분 동남방에서 뜨기 때문에 정동 방향에 심는 상록수는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북쪽이야 당연히 괜찮다. 바람막이도 되고, 마당에 밴 햇볕의 온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이제 여름 정원을 구성할 동남방의 활엽수를 보자. 처음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은 흔히 온갖 과수를 다 갖다 꽂아놓기 쉽다. 사과, 배, 복숭아, 은행, 체리, 포도, 살구, 대추, 감, 밤 등 묘목을 마구잡이로 갖다 아무렇게나 땅을 파고 심으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먼저 서울을 중심으로 1백킬로 미터 이내에서는 심어서는 안될 나무를 가려야 한다. 체리, 동백, 석류, 대나무, 천리향, 장미 같은 것들이다. 이런 나무들은 겨울철에 잘 싸주지 않으면 한두 해 겨울만 나면 대부분 죽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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