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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전원 이야기

나더러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전원 이야기 | 2007/05/19 (토) 22:12

 

우리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지금 이 시간 시금치, 파, 감자, 고구마, 고추, 수박, 참외, 옥수수, 씀바귀, 토마토, 가지 등 갖가지 채소가 다투어 자라고 있다. 

그중에 시금치는 나토군이 유고를 폭격하듯 매일같이 뜯어먹건만 결국 이 시금치들은 밀로세비치를 닮았는지 꽃을 무성하게 피우고 있다. 

상추는 더 잘 자라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놓고 한 보따리씩 뜯어주어도, 서울 사는 친구들을 불러내려 트렁크 가득 실어보내도 도무지 줄지 않는다.


어제는 일요일이라고 손님들이 찾아와서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당연히 상추를 실컷 소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서 아내는 밭에 나가 한 소쿠리 뜯어왔다. 

나는 잇몸이 허물어져 먹는 한약 때문에 돼지고기는 입에 대지도 못하므로 옆에서 구경만 했다. 

아내는 제 남편이 한약을 먹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좋아라 돼지고기를 구워댔다.

“여보, 왜 안먹어? 아참, 당신 한약 먹지?”


난 기름이 절절거리며 이따금 튀는 식탁에 바로앉지도 못하고 옆으로 비껴앉아 남의 마누라 밍크코트 얘기나 실없이 나누었다. 

아내는 한 입도 못대고 혼자 떠드는 날 보고 덕분에 상추를 고맙게 먹겠노라고 아부를 떨었다. 

손님들도 덩달아 상추가 맛있느니, 고소하니 하면서 상추를 기른 나를 추켜세웠다.

“잘 먹겠습니다. 이 선생 덕분에 맛있고 싱싱한 상추를 먹는군요.”


그런데 그 순간 참 이상했다. 내가 왜 그 상추 때문에 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어색하잖은가, 나는 그 상추의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데.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겨우 씨앗을 사다가 땅을 갈아 뿌린 것 뿐이다. 

너무 가물어 흙이 마르면 물을 뿌려주고, 더빨리 자라라고 비료를 주고, 보이는대로 잡초를 뽑아주었다. 

불쌍한 잡초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아는 일이지만 원래 식물이란 땅에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저절로 자란다. 

햇빛이 내리쬐고, 비가 내리면 그만이다. 

그걸 조금 더 일찍, 크게 자라게 하려는 욕심으로 잡초도 뽑아주고 비료도 주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채소를 열심히 돌 볼 이유가 없어진다. 

씨앗도 조금만 뿌려주면 한 가족이 실컷 먹을만큼 열려준다. 

식물의 확대재생산 능력, 그러니까 자기복제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러므로 채소가 갖고 있는 기본 생명력은 원래부터 튼튼하게 있다. 

싹이 트기 시작하면서 자라는 걸 관찰하면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녀석들은 쑥쑥 자란다. 

그리고 남의 진돗개처럼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태양만 바라본다. 

채소들은 오로지 태양의 자식들이지 내 자식이 아니다. 

제 어미같은 땅에 뿌리를 박고 젖을 물 듯 수염같은 실뿌리를 늘어뜨려 물을 빨아올리고, 아버지 같은 태양을 향해 햇빛을 벌여세우고 잎사귀에 그 햇빛을 받아모아 탄소동화작용을 해서 먹고산다.


정원의 나무를 가꾸면서도 나는 전지를 한다, 거름을 준다 애쓰지만 정작 나무는 나무의 법칙에 따라 잘 살고 있다. 나는 그 나무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눈에 예쁘도록 가지를 톡톡 잘라내고, 빨랫줄도 매놓고, 딸아이 그네도 매단다. 

그러니까 나는 내 욕심으로 그러는 거지 나무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잔디깎이를 우르릉거리며 마당을 밀고다닐 때는 더하다. 

잔디 허리가 부러지는 건 예사고 여기저기서 지렁이가 잘려나와 멀리 나가떨어지고, 개구리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바쁘다. 

어쩌다 김을 매다 보면 호미끝이나 삽 끝에 찍혀 나오는 지렁이며 갖가지 애벌레 때문에 가슴이 쓰리다. 

먹는 채소 때문에 가차없이 뿌리가 뽑혀 하얗게 말라죽는 명아주, 질경이, 토끼풀 같은 잡초를 보면 그 역시 안타깝다.


그러니 식탁 위의 상추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마치 산야에서 가족과 함께 잘 놀던 토끼를 잡아다가 껍질 벗겨 놓고 감사를 받는 꼴이나 다름없다. 

나는 상추를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그 오묘한 생명체를 프로그래밍했는지 알 수 없다. 

채소와 나무를 기르면서 나는 그 많은 생명체를 각기 다르게 만들어낸 그 누군가 앞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인다. 

저절로 진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나는 그 진화의 엄청난 세월, 흔히 백만 년 이상이라고 하는 그 진화의 시간에 대고라도 감사하고 싶다.


난 정말 아니다. 

난 단지 그 씨앗을 갖다가 내가 원하는 자리에 뿌려놓고, 그 채소를 먹을 욕심으로 수많은 잡초와 토양 생물을 죽여가면서 가꾸었을 뿐이다. 

그것들이 다 자라 씨앗을 내기도 전 한창 자랄 때 뚝뚝 분질러다 놓고 먹으면서 내가 어떻게 감사를 받느냐 말이다. 

정말 나는 아니다. 

내가 그들의 은혜를 받고 사는 것이지 내가 채소한테 은혜를 베푼 적이 없다.


그러니 혹 식탁에 오른 채소를 보더라도 농부한테만 감사하지는 말라. 

농부는 그 채소를 팔아 텔레비전도 사고, 딸 시집도 보내고, 막걸리를 사먹고 더러 술주정도 한다. 

정말 감사하고 싶다면 그 채소의 어머니 땅에 감사하고, 그 채소의 아버지 태양에 감사하는 게 좋겠다. 

아니면, 실험실에서 밤잠 못자며 상추를 만들어 주셨을 태고적의 창조주에게 감사하든가, 혹 과학자라면 백만년이라는 그 세월에 감사하면 된다. 

나보고 자꾸 감사하고 말한다면 난 죄를 더 짓는 것이다.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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