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5/19 (토) 22:25
전원주택 터잡기
전원 주택 중 내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은 함부로 방위를 잡아 짓고, 물길, 바람길 아무 데나 집을 앉히는 것이다. 바람과 물이라는 것은 인간 생활 중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다.
바람은 햇빛을 받으면 따뜻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다. 그러므로 남향받이가 좋은 것은 자명하고, 그러고도 가급적 북쪽이 막혀 있어야 한다. 북쪽이 열려 있는 바람길에 집을 지으면 비록 남향집이라도 수목(樹木)이 잘 자라지 못한다. 수목이 잘 자라지 못하는 집에 사람이 건강할 리 없다. 실제로 북쪽이 열려 있으면 감나무 같은 수종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서산(西山)을 등지고 동향으로 앉은 멋진 전원 주택이 많은데, 이건 결국 골칫거리가 되고만다. 동절기 반년간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만큼 연료비가 더 들고, 정원수가 잘 자라지 못한다. 꽃도 남의 집보다 늘 늦게 핀다. 습기가 차고 음기(陰氣)가 넘친다. 이런 집은 결국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또한 풍광 좋은 물가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수맥이 치고들어오는 방향에 집을 앉히는 경우가 많은데, 경치는 좋을지 몰라도 집안이 습하기 쉽다. 집에 습기가 많으면 진드기 같은 작은 생물이 번식하기 좋고, 파리․모기 같은 해충이 들끓는다. 시골 살면서 해충 퇴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역에 따라, 방위에 따라 종류가 다른 해충이 몰려든다. 자릴 잘못 잡으면 통풍 장치를 아무리 잘 달아도 습도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물가에 집을 지을 때는 가급적 물이 비껴흐르는 자리에 집을 앉히고, 그러고도 물길보다 더 높이 땅을 다져올려야 한다.
내가 전에 살던 집은 낮은 언덕에 1미터 정도 높이를 두고 집을 앉혔는데, 뒤쪽이 산그늘이다 보니 늘 습했다. 앞마당은 시야가 훤하고 수로를 파놓아 질척거리지 않았지만 뒤란이 사철 습하다 보니 그곳에 사는 개들한테서 벼룩이 너무 많이 생겼다. 온갖 약을 치고 해충구제용 목걸이를 강아지마다 채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니 한 마리씩 눕혀 놓고 벼룩을 잡는 게 중요 일과가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 사는 집은 집 자체가 높은 언덕에 있다 보니 습기가 적어 그 많던 벼룩이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이 집도 문제가 있다. 뒤쪽 절개지가 3미터쯤 되는데 마당을 넓히려는 욕심으로 집을 너무 뒤로 물려 앉혔다. 그러다 보니 뒤란 통풍이 잘 되지 않아서 바람벽에 결로 현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앞마당이 다소 좁아지더라도 뒤란 통풍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전원주택의 이상한 공통점 중 하나가 높은 담이다. 거의 교도소 수준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그런들 도둑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그래봤자 집안 공기나 나빠지고 그늘이나 길게 드리워질 뿐 좋을 게 없다. 평균키의 남자가 서 있을 때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면 족하다.
그리고 전원 주택에서는 대부분 지하수를 쓰게 되는데, 수질 검사를 꼭 해야 한다. 전에 살던 집은 대단위 논이 옆에 있었는데, 덕분에 수질이 아주 나빴다. 물이 뿌옇고, 중금속까지 검출되었다. 하는 수없이 비싼 정수기를 놓았다.
이런 경우 지하수를 팔 때 돈을 들여서라도 깊이 파는 게 좋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백미터 지하수도 어렵지 않게 판다. 물이 좋아야 음식 맛도 좋아지고, 그 물로 세수하고 목욕하는 사람도 건강해진다. 물에 따라 커피맛도 크게 달라진다. 좋은 물을 뿌려 자란 채소 역시 맛이 달라진다.
그 다음으로 택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맹지(盲地)를 피해야 하는 것이다. 길이 없는 땅 말이다. 육안으로 길이 있다고 해서 그게 길은 아니다. 길이란 지적도에 등재되어야 도로이지 안그러면 농로이거나 사도로다. 농로나 사도로를 길인 줄 알고 덥썩 땅을 샀다가 나중에 톡톡히 값을 치루는 사람이 많다. 도로 주인이 나타나 경운기를 몰아다가 세워놓는 날이면 건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살점을 뜯어주다시피 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지주가 통행로를 내줘야 하지만 법이 안통한다.)
길이 있어도 대지가 아니면 또 조심해야 한다. 준농림이나 잡종지면 어디든 건축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그렇지 않다. 상수원보호구역, 군사보호구역, 녹지보존지역, 도로예정지역 등등 규제가 아주 많다. 시청에 가서 꼭 문의를 해야만 한다. 부동산업자의 말은 들으나마나다.
그리고 부동산업자들 중에는 이따금 좌향이 맞지도 않는 나쁜 땅을 보이면서 좌청룡이 어떻고, 우청룡이 어떻다고 풍수 용어를 들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한 마디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풍수를 들먹이는 땅일수록 하자가 많다. 풍수쟁이들 말은 9할이 거짓말이다.
땅이 정해지면 잔금을 치르기 전에 반드시 측량을 해야한다. 구옥(舊屋)이 있고, 담장이 있는 대지라도 꼭 측량을 해야 한다. 나 역시 반듯하게 생긴 담만 믿고 측량을 하지 않았다가 골탕을 먹은 적이 있다. 시골에는 토지대장하고 경계선이 다른 경우가 매우 흔하다. 우리집 경계가 남의 집 안방을 지나기도 하고, 이웃집 외양간을 가르기도 한다. 그런 경우 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느니 해약하는 게 낫다.
측량하는 날이면 들로 논으로 일하러 나갔던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 것이다. 그만큼 측량은 마을사람들의 큰 관심사다. 측량을 하고도 담을 칠 때면 1미터는 안으로 들여치는 것이 예의라는 등 별의별 말이 다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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