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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엘마 할머니, 참 멋지게 돌아가셨네요

엘마 할머니, 참 멋지게 돌아가셨네요

 

* 출판사 글로세움에서 '엘마 할머니'란 사진집을 낸다고 하여 내가 서평을 썼다. 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날짜를 안적어 놓아 언제 썼는지 모르겠다. 문서정보를 보니 2002년 5월 13일로 돼 있는데, 그건 아닌 것같다. 우리 도란이 얘기가 있는 걸로 보면 2003년 5월 29일(도란이 간 날) 이후에 쓴 글이다. 나이 먹어갈 땐 메모를 잘 해 놓아야 하는데...

* 헛,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책이 나왔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다. 발간 날짜는 2006년 01월 20일이다. 허 참, 책이 나왔으면 보내줄 일이지. 내 글이 어떻게 실렸는지도 모르겠고... 여하튼 이 글은 2003년 5월 29일에서 2006년 1월 20일 사이에 쓴 게 틀림없다. 추청컨대 2004년쯤인 것같다.

 

할머니, 지금은 사철 꽃피는 하늘나라, 애완견 코코와 함께 아름다운 새가 노래하는 정원을 거닐며 행복했던, 그리고 가끔 마음이 시렸던 인생 시절을 회상하고 계시겠지요?

저는 소설가 이재운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 그때 전두환이란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마침 휴교 중이었는데, 그때 죽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유명인들이 죽어가면서 한 말이나 행동을 수집하는 거였지요. 왜 그런 일을 했느냐면, 어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기 전에 죽을 때 모습을 한번 더 보라고 하시더군요. 즉 죽을 때의 모습이 인생 그 자체라나요.

그런데 이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유명인들의 죽음은 별다른 특징이 없었어요. 죽기 전에 한두 마디 하는 게 좀 있었는데, 말로는 감동이 적거든요. 그래서 정말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분들을 찾다보니 선사(禪師)들 이야기로 모아지더라고요. 선사란, 결혼하지 않고 평생 깨달음을 추구하는 붓다의 제자들이란 뜻입니다.

 

엘마 할머니, 이 이야기를 왜 드리느냐면 할머니의 임종 장면을 들여다보니 바로 그 선사들이 생각나서 그래요.

할머니는 오츠카 아츠코란 사진작가한테 죽어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고 허락하셨잖아요? 이거,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거, 자료 조사 과정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자신이 죽는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고, 또 할 수 없이 포기한다고 해도 차마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질 못하거든요.

또 할머니는 장난스럽게도 하늘로 가실 날짜를 미리 적어놓고 식구들을 웃기기도 하셨잖아요? 꼭 선사들이 하는 장난 같았아요. 삶뿐만 아니라 죽음마저 가지고 노는 도통한 선사들요.

제 말이 거짓말일 것같지요? 그럼 여기 한번 할머니처럼 죽음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선사들 몇 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신찬(神贊) 스님이라고 있었지요. 어느 날 신찬 스님은 삭발과 목욕을 마친 다음 종을 쳐서 대중을 불러 모았어요.

“여러분, 소리없는 삼매를 아는가?”

삼매는 금강삼매니 무슨 삼매니 하여 참선에 들어가 깊고 깊은 사유의 경계를 벗어난 상태를 말한답니다. 그러니 대중들이야 알 리가 없지요. 그래서 숨소리 하나 안들렸지요.

그러자 신찬 스님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어요. 꼭 할머니 미소처럼요.

“내가 소리없는 삼매의 소리를 들려줄 테니 조용히 들어봐. 다른 생각 말고. 가만히들 있어 봐.”

대중들은 숨을 죽이고 굉장한 일갈이 내려지나보다 하면서 잔뜩 귀를 기울였지요.

시간이 적잖이 흘렀어요. 침 삼키는 소리만이 이따금 날 뿐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법당이 조용했지요. 시간이 한참 흘러 지루해진 대중들이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 참지 못하여 일어나 스승에게 다가갔더랍니다.

그런데 스님은 벌써 소리없는 삼매를 보인 뒤였답니다. 어리석은 대중들은 아무도 소리없는 삼매를 듣지 못한 거지요.

엘마 할머니, 죽음마저도 법문으로 이용하는 신찬 스님의 높은 경지를 보실 수 있지 않아요?

 

한분 더 볼까요?

죽는 시범을 보인 스님으로는 동산 양개(洞山良价)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동산은 임종을 앞두고 대중에게 최후 문답을 허락했어요. 불가에서는 죽어가는 노스님을 붙들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게 관습이거든요.

먼저 동산 스님의 질문이 내려졌어요.

“나는 부질없는 이름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 누가 그 흔적을 지워주겠느냐? 그대로는 부끄러워 세상을 뜰 수가 없구나.”

대중이 모두 침묵만 하고 있을 때 한 사미가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왔어요.

“화상의 법호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깨끗이 없애드리지요.”

화상의 법호란 스님의 이름이란 뜻이지요.

“아이고 고맙다. 이제 부질없는 이름이 없어졌다.”

그러고는 문인들을 시켜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입고 종을 치게 한 뒤에 태연히 앉아서 세상을 떴답니다.

그러나 동산 스님의 임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요. 울고불고 설치는 제자들이 영 거슬렸던지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나봐요. 다시 깨어나 벌떡 일어난 동산은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었어요.

“아, 정말 시끄러워 죽지도 못하겠구나. 사문이란 마음이 집착되지 않아야 참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삶은 힘들고, 죽음은 휴식하는 것인데 슬픔과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러고는 주사승을 시켜 한바탕 우치재(愚痴齋)를 지내어 대중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게 했지요. 그러나 대중들이 여전히 사모의 정을 그치지 않자 동산은 일주일을 더 기다렸대요.

공양 때가 되자 동산도 상석에 앉아서 음식을 받아먹었고요.

“중의 집안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대체로 떠날 때가 되면 이처럼 수선을 떠는구나.”

8일째 되는 날, 동산은 목욕을 마치고 나서 할 수 없이 입적에 들었답니다.

엘마 할머니, 가시는 분은 홀가분하고 조용한데 대부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시끄럽잖아요?

 

당나라 시절 보화(普化)라는 스님 얘기도 해드릴게요.

이 스님이 어느 날 시장에 나가 장사꾼들에게 장삼을 구걸했어요. 평소 시장 바닥에서 기행을 일삼던 터였기 때문에 가게마다 그가 달라는 대로 내주었지요. 그러나 달라고 할 때와는 달리 막상 장삼으로 쓸 옷감을 주면 아무 것도 받지 않고 방울만 흔들면서 돌아갔지요. 그러기를 수도 없이 부지런히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 모양으로 시장을 돌아다니고 거리를 쏘다녔답니다.

그때 눈치를 챈 유명한 임제 스님이 관을 하나 사다 주니 보화가 웃으면서 말했다지요.

“임제 녀석이 제법 영리하구나!”

관을 받은 보화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어요.

“나는 내일 동문 밖에서 죽을 것이다.”

이튿날 동문 밖에는 구경꾼으로 득실거렸지요. 죽겠다고 선언하고 죽는 게 어디 흔한 구경거리인가요.

하지만 관을 짊어지고 동문까지 나갔던 보화가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오늘은 푸른 새가 오지 않았다. 내일 남문 밖으로 장소를 옮겨 죽을 것이다.”

푸른 새는 다리가 셋인 새로 저승 사자를 뜻해요. 죽을 때가 안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튿날은 구경꾼이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보화 스님은 하루를 더 연기하고 장소도 북문 밖으로 바꿨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미치광이에게 속은 것이라며 아무도 나가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보화는 관을 짊어지고 북문 밖으로 나갔지요.

관을 내려놓고 한참동안 방울을 흔들던 스님은 관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뚜껑을 덮어버렸어요.

엘마 할머니, 이 보화 스님, 참 멋지지 않아요?

 

그런가 하면 여기 더 멋진 스님도 있어요.

이 스님은 법호를 경통(景通)이라고 하는데, 어느 날 제자들을 모두 불렀어요. 그러고는 뜰 앞에 장작을 쌓아놓고 정오가 되거든 와서 알리라고 부탁했지요.

제자들은 스승이 이르는 대로 대웅전 앞마당에 장작을 높이 쌓아두고 있다가 해가 중천에 오르자 스승에게 달려가 때를 알렸어요.

“스님, 해가 중천에 올랐는데요?”

경통은 곧 촛불을 켜들고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섰어요. 삿갓을 벗어 뒤로 젖혀 원광(圓光-부처님이나 보살 등의 등 뒤에 나타나는 둥그런 빛)의 모습을 하고 항마저(降魔杵-마귀를 항복시키는 몽둥이)의 형상으로 주장자를 쥔 채 들고 있던 촛불을 떨어뜨렸어요.

“나 마지막으로 설법할란다. 잘들 봐라. 평생에 한번 밖에 할 수 없는 법문이야.”

제자들은 그제야 스승이 정말 떠나는 줄을 알고 놀라 허둥댔지요.

불길이 서서히 타오르자 경통 스님은 더욱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과 염불로 흐느끼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답니다. 장삼에 붙은 불은 온갖 인연과 업보를 모두 녹이려는 듯 화상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어요.

경통 스님은 생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또한 제자들에게 생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지요.

 

여기 죽는 경지가 남다른 스님이 한 분 더 계시답니다.

남 죽는 모습을 재미있다고 표현하면 욕먹을 짓이지만, 참으로 절묘하게 죽는 시범을 보인 스님이 또 있거든요.

지한(志閑)이라는 스님이신데, 스님이 어느 날 시자를 불러 물었어요.

“죽는 꼬라지를 보면 깨달았는지 사기였는지 다 알 수 있지, 암.”

“그렇습니까, 스님?”

“그렇다마다. 앉아서 죽은 스님이 누구냐?”

“승가(僧伽) 스님이지요.”

“서서 죽은 이는?”

“승회(僧會) 스님입니다.”

시자의 이야기를 죽 듣고 있던 지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똑똑히 보아두었다가 멍텅구리들에게 전해라. 난 내 때를 알 뿐만 아니라 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살 수도 있다. 내가 일곱 걸음을 걷고 죽을 테니 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힘껏 소리치거라.”

그러고나서 지한 스님은 여섯 걸음을 걷고 일곱번째 발을 내딛는 순간 그대로 입적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처럼 훌륭한 선사들의 삶에는 쓰레기가 없는 법입니다. 버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요. 죽음마저도 선사들에게는 설법이 되는 겁니다.

 

기왕 죽음을 가지고 노니는 스님들 얘기를 했으니 청활(淸豁) 스님을 빼놓을 수 없네요.

청활 스님은 세상과 하직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자 대중과 신도들을 버리고 때를 맞으러 길을 떠났어요. 평소 따르던 시자 하나만 따랐답니다.

고승들이 입적할 때면 대부분 제자들과 최후 문답을 나누거나 임종 설법을 하는 게 선가의 가풍인데 청활은 달랐지요. 오히려 대중과 신도들을 피해 절을 떠났답니다. 사람들은 청활 스님이 시자를 데리고 유람이라도 떠나는 줄로만 알았겠지요. 하긴 저승가는 것도 유람은 유람이지요.

스님은 귀계라는 곳으로 들어간 뒤 임종의 터를 잡았어요. 그곳에서 스님은 시자에게 유언을 했어요.

“내가 죽거든 시체는 숲에다 갖다 버려라. 마지막으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새나 짐승들에게 나를 먹이리라.”

청활은 곧바로 반석 위에 정좌하고 앉았지요. 그러고는 한껏 소리쳐 말했어요.

“짐승들아, 나를 먹어라!”

그러고는 고요히 마지막 선정에 들었지요.

시자는 스님의 유언대로 스님을 반석 위에 그대로 두었지요. 까마귀나 독수리가 와서 눈을 파먹고 이마를 찍어댔어요. 승냥이도 찾아와 가슴팍을 물어뜯었고요.

남은 고기는 배고픈 산짐승들이 기쁜 마음으로 다가와 손도 물어뜯고 발도 물어뜯을 것이고, 파리나 작은 벌레들이 와서 한바탕 잔치를 벌일 지도 모를 일이지요. 남은 뼈다귀는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핥아먹을 것이구요. 그것을 청활 스님은 기쁘게 받아들였지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처참하지만 짐승이나 벌레의 눈으로 보면 더없이 맛있는 먹이가 되는 것 아닙니까? 생각 한번 돌리기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있지요.

 

그런데 엘마 할머니는 그런 선사들 못지 않게 몸소 하늘 가는 길을 아름답게 밝히셨어요. 유해를 바다에 뿌리고 난 할머니의 자손들이 샴페인을 떠뜨리며 할머니가 남기신 인생을 축복했다는 글을 읽을 때는 눈물이 쏙 나왔어요. 그럼요, 그래야지요. 할머니가 사신 저 긴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거지요. 비록 슬픔이 약간 있고, 어려움도 있고,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하고, 너무 힘이 들어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은 적도 더러는 있었겠지만,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여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거잖아요? 엘마 할머니,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힘 낼게요, 할머니. 저희도 아름답게, 정말 아름답게 죽도록 노력할게요. 하늘나라에서 좋은 구경 많이 하시고, 좋은 친구 많이 사귀세요. 혹시, 열다섯 살이 되던 작년 여름, 하늘로 간 우리 애완견 도란이를 보시거든 예뻐해 주세요.

그리고 고양이 스타키티의 눈으로 할머니의 임종을 그린 그 일본 사진작가요, 정말 멋졌어요. 이만 줄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