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감상 중엔 오른쪽 상단의 음악재생기를 정지하세요>
워낭소리, 내게도 추억이 있다.
내가 기른 소가 몇 마리던가.
우리 소도 아니고 남의 소를 빌려다 나중에 새끼치면 한 마리 주기로 하고 기르는...
긴 여름, 소를 끌고 여기저기 끌고다니며 풀을 뜯기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다 어디로들 갔는지...
장이 열리기 전날, 다른 때보다 더 맛나게 여물을 쒀 먹인 날은 불길했다.
아침에 일어나고 보면 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외양간은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외양간 추녀에 우리 소 목에 달려 있던 워낭이 걸려 있곤 했다.
내가 중학교 걸어다니던 그 30리 길을 우리 소, 내 소도 터벅터벅 걸어,
그런 다음 트럭타고 하늘로 갔을 것이다.
예고편만 보는데도 정신을 못차리겠다.
나를 중학교 보내고, 고등학교 보냈을 그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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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나서.
다큐인 줄 알았더니 드라마가 섞여 있다. 연출자가 개입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늙은 소와 늙은 농부를 있는 그대로 촬영해 편집만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수명이 1년 밖에 안남은 줄 알고도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노인도 자녀가 아홉이나 되고, 그 아홉 자녀가 넥타이 매고, 큰 차 타고 시골에 오는데 그렇게 기어다니며 일할 만큼 그분의 일상이 그런지 의심스럽다.
잔명이 며칠 안된다는 걸 알고도 마흔살이나 된 늙은소를 팔겠다고 장에 나간 건 순전히 연출자가 의도한 것같다. 농부는 팔 마음이 하나도 없는데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연출한 게 아닌가 싶다.
소가 죽고나서 할머니가 독백으로 읊는 대사에 "겨울 따뜻하게 나라고 땔나무를 많이 했다"며 카메라가 엄청난 물량의 나무를 비쳐주는데,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가 낫이나 톱으로 해온 나무가 아니라 전기톱이나 성인 청년이 아니고는 베지 못했을 만큼 큰 나무도 많다. 나무의 상태로 볼 때 해온 지 한두 달 이내 것이던데 늙은 소가 죽기 전 한두 달 동안 그 많은 나무를 끌어다 놓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 다리가 불편한 늙은 농부가 밭을 기어다니며 김을 매는 장면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수레를 지고 가다서다 죽는 날이 돼서야 멍에를 벗고 코뚜레를 빼는 늙은 소의 마지막 여정을 서사한 것은 감동이 크다.
독립영화는 값싼 영화라는 인식이 있어 그런지 경상도 사투리를 표준말로 자막을 적었던데, 오자와 오류가 자주 보였다. 성실치 않아 보인다. 돈 적게 들였다고 오자나도 괜찮지는 않다. 정신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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