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이를 느끼나 보다.
지난 날이라고 이런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제대로 느낌이 온다. 제대로 가슴 저리다.
누구네가 하루 아침에 이사가 날이면 날마다 불러내 함께 놀던 친구가 사라져버리고,
외지로 유학가면서 여러 친구들을 갑자기 이별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할 때마다 같은 일을 겪기는 했다.
하지만 이사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만나겠지, 친구들과 헤어져 뿔뿔이 흩어져도 동창회 때나 무슨 모임 때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이 정도였다. 실제로 만나고 싶은 친구는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도 있는 게 지난 날의 이별이라고나 할까. 다만 이름이 잊혀지고, 기억이 희미해져 만나고 싶은 생각이 안드는 게 병이라면 병일까.
이젠 그런 낭만적인 이별은 더이상 없는가 보다.
설날이라고 하여 딸을 데리고 내려가는데 폭설이 내려 갈팡질팡했다. 늘 가던 길로 안가고, 막힐까봐 일부러 네비게이션을 놓고 먼 길로 돌아가다보니 더더욱 폭설이 두려웠다. 가는 길에 갓길로 빠지거나 사고난 차량을 수십 대나 보아야 했다. 눈이 어찌나 펑펑 쏟아지던지 폭우가 쏟아질 때처럼 윈도우브러시를 고속으로 돌려야 겨우 눈앞이 보였다. 딸은 그 엄청난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빗발치는 창밖을 향해 비디오를 돌리며 중계방송까지 했다.
- 앞이 안보입니다! 우리 아빠 완전 긴장했습니다! 아이, 그러니까 내가 어제 가자고 했잖아? 아빠 때문에 이 고생하는 거야. 시끄러! 아빠, 집중해야 돼. 아, 나도 집중해야 한다구! 이거 영화 보는 거 같다. 무서운 영화.
엔진 브레이크 넣기를 반복하며 숨가쁜 순간을 수없이 넘겼다. 아차 하면 길을 벗어나 어디고 나가떨어질 상황이다. 운전경력 20년 힘으로 조심조심 가다가 마침내 고향 마을로 오르는 경사로를 탔다. 여기는 원래 난코스라 웬만한 운전자는 갈 수가 없다. 결국 아랫길에서 힘차게 속력을 낸 다음 경사로에 이르자마자 2단 기어를 넣고 정속 주행을 했다. 그래도 언덕 막바지에 바퀴가 도는 게 수상했다. 조금씩 나아가기는 하는데, 진행속도가 너무 느렸다. 엑셀레이터 가속에 자그마한 변화만 줘도 미끄러지거나 아예 헛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를 꽉 물고 가속력을 유지하니 조금씩 일정하게 나아가다가 기어이 언덕에 올라섰다.
이 날 밤, 귀향하던 몇몇 동네사람들이 기어이 밀고 당기고 해서 그 길을 올랐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간 집이건만, 늘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맞아주던 당숙모가 보이지 않는다. 올 수가 없다
짐을 풀고 당숙모가 살던 집에 가보니 그새 불도저로 싹 밀어버려 옛 형체는 하나도 없고, 낯선 컨테이너하우스 한 채가 무슨 성냥갑처럼 던져져 있을 뿐이다. 꿈속에 가끔 나오는 대문이며 키다리 감나무, 장독대, 빈 우물, 뒤란의 꽃밭, 앞마당에서 꿋꿋이 자라던 20년생쯤 되는 산초나무가 안보인다. 주인이 가니 주변 소품도 다 가버린다. 내 기억 속의 그림들이 원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또 꿈을 꿔도 나올 텐데 현실 세계에는 더이상 없다.
설날 아침, 늘 하던대로 상을 차리고, 조부모, 아버지 앞에 절을 하고나서 당숙모네 생각을 했다. 형제들이 다들 그러했다. 지난 추석만 해도 우리 형제 중 누가 당숙모네에 가 함께 제사를 올리고, 거기서 음복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거기 형제들 중 누가 우리 제사에 참여하고, 이어 당숙모가 우리 집에 와 이런저런 얘기를 해야만 명절같은 기분이 나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당숙모의 자식이 육남매나 되지만 오직 장자 한 명만 찾아오고 나머지는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당숙모가 돌아가시면서 가족이 해체된 모양이다. 어렵고 어렵게 가족을 유지하던 어머니란 항성이 사라지자 이 철없는 행성들은 저마다 자기들 궤도로 이탈해버렸다. 그나마 장자도 올해까지만 여기서 제사를 올리고 내년부터는 자기네 집으로 옮겨간단다. 이렇게 해서 내 기억 속의 당숙, 당숙모네는 사라져갈 모양이다.
설날에는 폭설로 성묘를 못하고, 설 다음날에야 가까스로 산에 올랐다. 간 김에 두루두루 조상들을 찾아뵈었는데, 그 길에 당숙과 당숙모 산소를 찾아가 예를 올렸다. 죽으면 그까짓 땅 한 줌 쥐고 누워있을 것을, 뭘 그리 원망하시고 불만이 많으셨을까, 내가 내게 물었다.
- 사람 사는 게 뭐 그렇고 그런 거지, 당숙모 안그래요? 죽어봐야 별 볼일 없잖아요? 그래, 죽으면 뭐 대단한 호사라도 누릴 줄 알았어요?
50년간 나를 지켜보던 분이시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랴.
폭설을 핑계로 주로 집에만 있자니 설이 더욱 쓸쓸하다.
그래도 우리집은 오형제가 건재하여 형수들과 고스톱을 치고, 아이들은 '꽃보다 남자'라나 무슨 드라마 보느라고 저희들끼리 난리 피우고, 애기들은 눈사람 만든다고 그 추운 날씨에도 마당을 들락거린다. 큰형은 어디서 얻어마셨는지 술에 잔뜩 취해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즐겁게 떠들어대고, 어머니는 이것저것 내다 자식들 먹이기 바쁘시다. 벗과 어울리는 걸 특히 좋아하는 둘째형은 누가 찾아올 때마다 귀하디 귀한 말벌술을 내놓고 하루 종일 같은 대사를 읊조린다.
"이 말벌은 꿀벌의 70배나 되는 독을 갖고 있는데... 여자가 마시면 미용에 좋고 남자가 마시면 정력에 좋고..."
촛불에 불이 붙으면 밝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만다.
꽃이 피면 아름답고 향기롭기는 하나 언젠가는 지고 만다.
우리집은 지금 한창 타오르는 촛불이요, 향기 그윽한 꽃이다.
어머니가 여든이 되셨으나 여전히 총명하고 자식들에 대한 기대도 욕심도 많으시다.
저 싱싱한 우리 조카들은 이제 직장에 다니는 첫 손녀를 비롯하여 어린이집에 가까스로 나가기 시작한 막내까지 기운이 펄펄 나는 모양이다. 이래도
까르르 저래도 까르르 온 집안에 웃음이 그칠 새가 없다.
성묘길에 집안 형님의 제보를 받고 찾아가 벌집 하나를 떼왔다. 너무 낮은 가지에 집을 지어 짐승의 해를 입은 듯했다. 집에 돌아와 해체를 하고보니 한쪽을 다른 짐승이 파먹어 보온기능을 잃은 듯 성충이며 애벌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요즘같은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만 아니었더라면 살아 있을 텐데, 요 며칠을 견디지 못한 듯했다.
말벌집을 해체하는데 온가족이 나섰다. 누군 부엌칼을 잡고 누군 아이들이 있는데 혹시 모른다며 살충분무기를 잡고 대기하고, 누군 신문지를 깔고, 누군 말벌 애벌레를 담을 접시를 갖다놓고, 누군 술 담글 통을 찾아온다.
시끌벅적 말벌 아파트 한 채를 해체하면서 내 세상도 어쩌는 수없이 해체되어 간다는 걸 절감했다. 이 날 멀지 않은 곳에 큰 말벌집이 있다고 하여 둘째형이 따러갔는데, 날짐승들이 애벌레 파먹느라고 덤벼들었는지 거의 다 부서져 찬바람에 덜렁거리는 걸 보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형이 빈손으로 오니 그 무서운 말벌도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든다. 꿀벌의 70배나 되는 맹독을 쏜다 하여 여름이면 위세 등등한 그 말벌도 겨울을 나기가 그처럼 어려운 것이다.
위세등등, 며칠이나 그러랴. 그저 고개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법을 배워야겠다. 하늘도 무섭고 세월도 무섭다. 무서운 걸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온 지난 날이 겁난다,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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