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전원 이야기

전원에서 자식 기르기

전원 이야기 | 2007/05/19 (토) 23:11

 

전원에서 자식 기르기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교육 문제다. 
나 역시 그 때문에 10년이나 살던 동네를 벗어나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재작년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마을에는 분교가 있는데, 한 학년에 두 명, 세 명 그랬다. 
딸아이가 입학하는 해에는 내 딸까지 합쳐 입학예정자가 세 명이었다. 
그러니 전교생을 다 합쳐도 도시 학교의 한 반조차 구성하지 못한다.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도 할 수 없고, 농구나 가까스로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가지고는 사회성을 기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나는 후보 학교를 근처에서 골라보았다. 
그래서 좀 떨어진 다른 면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곳 사정도 잘 모르니 집을 덜렁 살 수는 없고 일단 마음에 드는 동네의 전원주택을 빌렸다.

그런데 이 동네가 또 문제였다. 
시내에 가깝다 보니 동네 인심이 사납다. 
이유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잠잠하던 시골 동네에 무조건 큰 차만 타고다니는 복덕방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인심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웃집은 평당 얼마에 팔아먹고, 또 다른 집은 그보다 더 비싸게 팔았다더라, 이런 얘기로 날을 지새웠다. 
그러니 남의 집 마당에 잠시잠깐 차를 세우는 것도 마치 대로상에 불법주차하는 것만큼 까다롭게 굴고, 
개 한 마리가 개구멍을 빠져나와 돌아다녀도 그냥 두질 않았다. 
해를 끼치는 것도 없건만 돌팔매질을 하거나 성을 내며 찾아와 대문을 발로 찼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보니 어른들이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별로 없지만 딸아이한테 다른 문제가 생겼다. 동무가 적어 나가놀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동네 인심이 사납다 보니 마음놓고 내보낼 수도 없다. 
시골 사람들이 다들 순박한 줄 알지만 근친상간 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곳이 이런 시골이다. 
성이 문란하기로 말하자면 도시에 비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는다.

실화로 말하자면, 목격한 것만 두 건이 있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제 딸을 상습적으로 건드린 놈도 있고, 아버지를 어려서 잃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를 하교길의 산길에서 기다렸다가 상습적으로 건드린 늙은이도 있었다. 
원조교제라면 돈이라도 쥐어주련만 이 늙은이는 빵 한 개로 그 여자아이를 다스렸다. 
결국 딸아이를 건드린 놈은 감옥에 가고, 늙은이는 늙었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창피만 당하고 끝났다.

이런 걸 내 눈으로 멀쩡히 보고나서 내 딸을 남의 집에 마음 놓고 보낼 수는 없다. 
심지어 친한 친구네 집에 간다고 해도, 30분에 한번씩 전화해라, 한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 하고 못을 박아 보내야 안심한다. 겨우 아홉 살난 딸 하나 기르기도 이렇게 힘든 세상이다.

결국 이런저런 걱정으로 애를 내보내지 못하다 보니 딸은 늘상 텔레비전을 끼고 산다. 
가끔 책도 읽고 가족과 함께 어울려 놀아보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다. 
그러니 비디오테입을 자꾸만 사다 바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어딜 놀러가야 한다.

이 또한 사회성에 문제가 있을 것같아 임대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학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빌라로 갔다. 
나하고 개들만 전원주택에 서재를 갖고 엄마와 딸은 오랜만에 빌라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이사한 지 6개월쯤 되는 지금으로서는 일단 안심이다. 
학교하고 집이 1분 거리이다 보니 친구들이 하루에도 서넛씩은 들락거린다. 
학교로 도로 가서 노는 때도 많다. 
아니면 길거리에서 로울러블레이드를 탄다든가 숨바꼭질을 즐기기도 한다. 
일단 사회성 교육에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무슨 문제가 어떻게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심이다. 
워낙 자연 속에서만 자란 아이라 신문명에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내 딸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나를 따라 강아지를 보러 옛동네에 간다. 
아직도 우리집 강아지들이 모여 사는 그곳에. 열두 살, 열한 살, 열 살짜리 강아지 네 마리가 시끄럽게 짖어대는 그 집에 나는 매일매일 녀석들을 돌보러 다니고 있다. 
딸도 거길 가면 제가 젖먹이때부터 뛰어놀던 길에서 놀고, 산책을 하던 뒷동산에 강아지와 함께 뛰어올라간다. 
동네 어른들 만나면 깎듯이 인사하고,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도 정을 준다. 
그 많은 풀이며 나무 이름을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그 차이는 다 안다. 
어떤 나무에서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도 안다. 그로써 나는 만족한다.

- 대학 다니다 회사에 들어갔는데, 친구들하고 무슨 얘기인가 했는지 집에 와서 멋쩍게 말한다.

"아빠, 난 정말 잘 살았나봐. 내가 갖고 싶은 걸 못갖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친구들은 그런 일이 참 많았다네. 난 그냥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딸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한 모든 걸 다해주려 노력한 걸 이제야 좀 눈치를 채는 것같다.

심지어 외출했다가 저 좋아하는 드라마 시간에 대질 못할 때는 방송국에 전화 걸어 방영을 30분 늦춰달라는 전화를 하는 시늉까지 했으니 그러리라.




'파란태양 > 전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채소  (0) 2008.12.14
겨울나기   (0) 2008.12.10
쓸쓸한 가을  (0) 2008.12.10
전원과 겨울 세시   (0) 2008.12.10
전원의 백미, 가을   (0) 2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