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이야기 | 2007/05/19 (토) 23:16
겨울나기
전원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계절을 꼽으라면 누구나 겨울을 꼽게 될 것이다. 겨울은 집을 지을 때 건축업자들한테서 무엇을 사기당했는지, 또는 부동산업자한테서 무엇을 속았는지 여실히 드러내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별난 게 단열재 부족으로 결로가 생기거나 그 결로가 얼어붙고, 그 자리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이다. 건축비를 아끼려다 겨울에 집을 통째로 망치는 수가 있다.
지난 여름, 어떤 별장촌 사장이 어떤 작가에게 전원주택 한 채를 빌려주었다. 대지도 널찍하고, 집은 뉴질랜드산 통나무로 둘러싸서 한눈에 참 보기 좋았다. 벽난로도 있고, 천장은 하늘끝까지 솟아오를 듯 송진냄새가 풍기는 질 좋은 목재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을 그곳으로 불러 차를 나누어 마시고, 괜히 하룻밤 자고가게 했다. 하여튼 그때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12월이 되면서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집은 땅에서 50센티미터 가량 떠 있는 구조였다. 뉴질랜드 사람들처럼 집을 옮겨다니기 쉽게 지게차 같은 걸로 번쩍 떠다 옮기려고 그랬는지, 밑을 들여다보니 훤히 뚫려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유리창 사이로 벌레가 드나드는 건 물론이고, 그 사이로 칼바람이 술술 드나들었다.
세상에, 그런 집을 주인은 2억 5천(2000년 기준)에 사라고 권했다고 한다. 교통편이니 위치니 이런 거 다 제쳐두고라도 그 집은 일단 사람이 살만한 데가 못된다. 여름 석 달 쓰면 끝인 데다, 방충 시설이 잘 안되어 있어서 온갖 잡충이 드나들고, 비가 오면 습하고, 밖이 추우면 안은 더 추운 집이다. 한 달에 등유를 서너 드럼은 때야 미지근할 정도니 난방비 부담도 그렇거니와 도무지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작가는 아예 서재를 폐하고 문을 닫아걸었다. 그러고 보니 요며칠 전 영하 15도로 내려가던 날 그만 수도가 얼어붙었다고 한다. 보일러도 외출로 해놓았다는데, 그러고도 실내에 있는 수도꼭지가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집은 해동 때까지는 무용지물이다. 보나마나 보일러 배관이 터지고, 보일러 자체도 얼어붙을 게 뻔하다. 그거 물어주려면 속이 쓰릴 것이다.
이처럼 겨울이 되면 전원주택에는 갑자기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일단 남향이 아닌 집은 난방비가 훨씬 더 들어가는 데다, 집안에 빛이 들지 않아서 음습한 기운이 돌아 더 나쁘다. 또 남향이 아니면 마당이 늘 얼어붙어 있어서 미끄러지기 십상이고, 정원수도 동상을 입기 쉽다.
또한 흔히 실수하는 것중의 하나가 거실 전면을 튼 페어글라스다. 약간 먹빛을 넣어 어슴프레하게 해놓고는 밖을 내다보면 분위기가 아주 그만인 것처럼 보이던 이것도 겨울에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우선 빛이 안드는 게 문제고(선팅이란 건 여름 석달용일 뿐이다), 또 문틀이라는 게 대게 실리콘으로 쏘아 대충 막는 게 보통인데, 그 정도로는 강추위를 견딜 수 없다. 실리콘이라는 것도 한두 해 지나다보면 조금씩 삭는데, 갈수록 바람구멍이 커진다.
우리 강아지들이 사는 집에도 거의 전면을 페어글라스로 해놓았는데, 겨울철에는 이중 비닐을 쳐놓아야 겨우 추위를 막을 수 있다. 그러면 보기도 안좋고 어쩌다 해가 떠도 햇빛을 받기 어렵다.
요즘에는 철로 만든 집이 많은데, 프레임 자체를 철로 짠 경우에는 겨울철에 좀 특별한 잡음을 많이 들어야 한다. 판넬, 스테인레스 등 금속이 들어간 집은 대부분 그런 것같은데, 겨울철에 갑자기 뭐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자주 난다. 자다가도 뚝, 음악을 듣다가도 뚝 하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우가 많다. 견고하고, 강풍이 불어도 지붕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건 좋은데 일교차가 심한 날이면 마치 고드름 부서지듯 쇠가 늘었다줄었다 하면서 내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정원수를 짚이나 방한포로 감싸는 것도 일이지만, 감싸봤자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다른 데는 다 춥고 거기만 따뜻하면 온갖 잡충이 그리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춘이 지나서나 대보름 전쯤해서 나무를 감싼 짚이나 방한포를 떼어 불살라야 한다.
그래서 전원주택을 구입하려면 겨울철에 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봄가을에는 마당 가득 피어있는 화초에 취해 집안 곳곳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여유가 안생긴다. 흐드러진 능소화 한 그루에도 마음을 다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봄가을에 봐서 아름답지 않은 전원주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을 때는 겨울철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설계하고, 살 때는 겨울철에 얼마나 강한 구조를 가졌는가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