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REM수면 상태에서 꾸는데, 그러자니 늘 새벽녘에 꾸게 된다.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이한 것은 자각력이 커져 새로운 기억으로 재생산되기도 한다.
꿈이란 지나간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라지만, 이렇게 되면 꿈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오늘 새벽, 참으로 행복했다.
아이들이 떠난 지 오래 되다 보니 그리움이 사무쳐도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간 지 1년이 안되는 도조(요크셔테리어.19세)가 너무 그립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키들을 보다가 눈물을 짓기도 한다. 얼마 전 문화방송에서 애완견들의 마지막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다가 펑펑 울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을 다 그렇게 보냈기 때문이다.
도담, 희동, 도롱, 도반, 도신, 도리, 다래, 도조까지 여덟을 내 품에서 보냈다.
내가 분양한 말티즈 순동이 복동이는 농약묻은 고기(애들 죽이려고 일부러 고기 던져놓은 두 인간, 제발 벌 받기를)를 먹고 우리집까지 달려와 살려달라고 신음하는데,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갔다. 이렇게 열이나 된다.
그리움에 지치면 사진첩을 열어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거나 비디오를 틀어보지만, 아이들이 이미 죽은 다음에야 별 의미가 없다. 살아 있을 때 사진을 봐야 감동이지 죽고나니 들춰보기도 싫다.
그런데 가끔 이 아이들이 꿈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것도 과거의 한 기억이 아니라 새로 연출된 환경에서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한번 가보지 않은 어떤 공간에서, 이 아이들이 한번도 하지 않은 어떤 동작으로 내게 나타난다.
오늘 새벽, 그립고 그립던 아이들 셋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년, 아빠가 보고싶지도 않은지 왜 한번도 안올까" 이렇게 늘 서운했던 다래까지 달려왔다. 심장판막증으로 폐에 물이 가득 차, 주사기로 물을 빼고 또 빼도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안락사했던 도신이도 오고, 다래 엄마 도리도 나타났다. 세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엉겨붙었다. 도신이가 내 얼굴을 마구 핥고, 다래가 핥고, 도리가 핥았다. 죽은 아이들이 어디서 이렇게 나타났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눈앞에 있으니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래를 끌어안으면서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너 다래 맞지? 그러면 역시 다래고, 그러면 또 꼭 끌어안고, 그러다 다랜가 다시 확인했다. 웬일인지 이 날은 아이들이 바뀌지 않았다. 안고나면 다른 아이로 바뀌기도 하는 게 꿈인데, 다래는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재롱을 피웠다. 마치 그동안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는지 아느냐고 묻는 듯했다.
세 아이를 실컷 안고, 만지고, 뽀뽀했다. 대개의 꿈이 짧게 끝나는데 오늘은 해후 시간이 넉넉했다.
게다가 세 아이 모두 건강하게 뛰어다녀서 어찌나 기분 좋은지 정말 행복했다. 도신이, 다래는 모두 심장판막증으로 가서 죽을 무렵에는 거의 걷지 못했다. 걷기만 해도 심장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에서는 힘차게 바람을 가르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꿈이 참 놀랍다. 꿈에 찾아온 도란이를 안으면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머릿속에 그 촉감이 저장되어 있다가 꿈을 꿀 때 다시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도조의 세세한 표정과 동작까지 죄다 되살아난다.
이러고보니 우리 아이들 중 꿈에 제대로 만나지 못한 아이는 도반이 뿐인 것같다. 이놈은 유기견 출신이라, 제 주인들한테서 너무 여러 번 버려진 놈이라 우리집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른 애들에게 치어 제대로 사랑을 받지도 못하더니 죽어서도 집이 그립지 않은가 보다. 내게 와 10년을 살았는데도 주인이나 물고, 다른 애들한테 집단 따돌림이나 당하더니 내가 미운 건지 잘 안온다. 와도 멀찍이 떨어져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도 꿈이라는 이 묘한 작용이 있어 가끔이나마 하늘 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우주는 너무나 미묘하여 이런 내 꿈이 꼭 꿈으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리라고 믿는다.
어디 있든 우리 아이들이 늘 행복하고, 우주가 존재하는 한 서로 잊지 않기를...
'기록의 힘 > 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명을 부탁합니다 (0) | 2009.08.09 |
---|---|
오늘은 기쁜 날 (0) | 2009.07.31 |
바니, 뒷다리를 동시에 차다 (0) | 2009.07.02 |
바니, 저승에 다녀오다 (0) | 2009.05.19 |
바니의 디스크 치료기 (0) | 200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