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게 뭐 그리 이쁘랴. 다른 아이도 다 걷는데.
아기가 아빠 알아보고 소리지르는 게 뭐 그리 대단하랴. 남의 아이들도 다 그러는데.
이렇게 매사 시큰둥하면 안된다.
아, 숨을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게다가 두 다리 멀쩡해 잘 걷고, 잘 듣고, 잘 본다면 이 또한 감격이 아닐 수 없다.
머리가 좀 나빠 공부를 못할지언정 오락가락하지 않는 것만도 어디랴. 안당해 본 부모는 무슨 말인지 말귀도 못알아 듣는다.
오늘은 사실 별 것 아닌 일로 내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렌다.
우리 바니(실명은 반이. 이 아이 아버지가 도반이라서 반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애비 반이가 워낙 가슴 아프게 해서 바니로 고쳐버렸다.)가 마루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잔디밭이나 아스팔트길에서는 걸었는데, 미끄러운 거실에서는 전혀 걷지 못했다. 미끄러운 데서는 일어서질 못하기 때문에 그냥 앞발로 기어다녔다.
그러면 뒷다리는 질질 끌려다닌다. 한참 휘젓고 다니다보면 엉덩이가 시뻘개진다.
그래서 휠체어도 만들어 타게 했지만, 휠체어라는 게 여간 불편하질 않아 바니가 잘 타려 하지 않았다. 그러느니 기어다니는 게 나은 모양이었다.
2년이 지난 것같다. 디스크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된 이래 바니는 거실을 통 걸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오늘 웬일로 벌떡 일어나 쪼르르 걸어나오더니 내처 똑바로 서서 걷는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바니가 거실 좀 걸어다니는 게 기적이라면 이 세상 기적 아닌 게 어디 있으랴.
컴퓨터로 글을 쓰고, 그걸 읽는 것도 기적이요, 이도 기적, 저도 기적, 만사 다 기적이라.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자꾸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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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는 게 역시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이 기적의 유효기간은 두어 시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후에도 미끄러운 거실을 두 번 더 걸어본 적이 있는데 곧 다시 미끄러지고 만다. 신경이 가다 끊기다 하는 모양이다.
- 말년에 바니(하얀 말티즈)는 리키라는 요크셔 테리어하고 살았는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리키가 하도 까불어서 걷지 못하는 바니가 샘이 났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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