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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태양/*파란태양*

고은 선생을 뵙고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난 뒤 <고은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라는 글을 쓰고, 그뒤 마침 한겨레신문에 연재할 기회가 생겨 첫번째로 이 글을 올렸었다.

 

엊그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다른 나라 작가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또 허전했다. 우리 현대문학의 역사가 짧기는 하지만, 우리 작가들 중에는 이미 노벨문학상 수준을 넘어선 분들이 몇 있다. 역시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기도 해서 아는 스님하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칠장사로 놀러갔다. 주지 스님하고 차나 한 잔 할 요량으로 갔는데 오늘 마침 '어사 박문수 백일장 대회'가 절에서 열리고 있었다.

 

모르고 가긴 했지만 기왕 간김에 객실에 가니 주지 지강 스님과 내가 존경하는 연꽃마을 각현 스님께서 와계셨다. 안성출신 김학용 의원도 있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데, 마침 심사위원장을 맡은 고은 선생이 오셨다. 안성에 30년 가까이 살아온 선생님은 이런 지역 행사에 이따금 참석하신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는데, "선생님께서 추천사 써주신 <천년영웅 칭기즈칸> 작가 이재운입니다." 하니 활짝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주셨다. 1933년생으로 올해 일흔일곱인데 총기는 여전하셨다. 차탁에 놓인 찻잔 중에서 내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것으로 골라 잔받침과 함께 선생님 앞에 놓아드렸다.

 

고은 선생을 시단에 추천한 분은 내 스승이기도 한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시다. 사제간에 생각의 차이가 크다 보니 관계가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나 역시 서정주 선생님의 시 강의를 4년간 듣고, 따로 약 3년간 모셨으니 절 풍속대로 고은 선생을 부르자면 내게 사형쯤 된다. 물론 나하고 25세 차이인데 형이라고 하긴 적절치 않고, 선생님이 맞다. 미당 선생과 고은 선생은 18세 차이가 난다. 

 

내가 미당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모시던 1984년, 선생님의 연세가 일흔이었다. 선생님 모시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자잘한 심부름을 하느라 남현동 댁에 가 뵙기도 했는데, 아직 선생님 음성이나 표정이 훤하다.

 

오늘 고은 선생을 뵈니 불현듯 미당 선생님이 생각났다. 고은 선생님이 다실에 들어서는데 검은 모자를 눌러쓰셨다. 키에 비해 많이 날씬해 보였다. 손을 잡으니 손가락 마디마디 세월에 씻긴 흔적이 역력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시던 시절의 미당 선생님보다 더 연로하시다. 내 기억의 미당은 아직도 70세이지만 눈앞의 고은 선생은 77세시다. 7년이란 시간은 노년기에 더 크게 느껴진다. 4~5년 전에 뵐 때하고 또 다르다.

 

이런 마당에 노벨문학상을 거론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한데 나는 주책없이 내 생각만 하고 저 위에 링크한 글 얘기를 짤막하게 말씀드렸다. 웃으면서 "그만하지?" 하고 손을 저으신다. 거기 모인 사람들도 다 아는 얘기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길래 내가 나섰는데 선생님은 편치 않으신 듯했다.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내내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야 역사소설 위주로 창작을 해온 사람이라 그런 상의 대상자가 아니니 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 문학은 이미 세계 수준을 넘어섰다. 다만 우리말이 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글 말고 우리말 분야에서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은 선생님이 77세로 건강하시니 요즘 평균 수명으로도 10년 이상 넉넉히 창작 활동을 하실 것으로 믿는다. 시간은 충분하다.

 

<미당 서정주와 고은 시 비교>

* 바이오코드로 분석한 카페글이라 읽으실 수 없는 분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