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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사람들/선시(禪詩) 감상실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지나 않을지

기적의 선사 진묵 일옥(眞黙一玉)의 시를 올린다.

 

하늘을 덮고 산을 베고 땅에 누워서

달빛 켜고 흰구름 늘어놓고 바다를 마시네

취한 몸 일으켜 춤을 추나니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지나 않을지

 

내가 이 시를 안 지 30년이 돼가는데, 1998년에 고비사막에서 이 경지를 체험했다.

진묵은 상상으로 시를 쓰고, 난 체험을 했다.

 

- 우주라는 집에서 하룻밤 묵다

(북방 기마민족의 성산(聖山) 알타이산 답사기 중 일부)

 

멀리 지평선 끝에 고비알타이의 꼬리가 쥐이빨처럼 낮게 보이는 돈드고비 지역이었다. 황혼이 지는 걸 바라보면서 누구는 텐트를 치고, 누구는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동행한 스님하고, 또 여자 통역하고 셋이서 매트만 깔고 그냥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바람을 찬 삼아 저녁을 먹은 뒤 운전기사하고 몽골인들은 따로 모여 보드카를 나누어 마셨다. 원래 보드카 정도는 저희들 먹고싶은 만큼 주겠다는 게 우리들의 방침이었는데, 이 날 운전기사의 수면 운전을 핑계로 하루 한 병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그렇게 좋아하는 보드카를 홀짝홀짝 사탕 빨아먹듯이 먹어야 했다.

 

나는 매트에 누워 침낭을 펼쳤다. 침낭 세 개를 나란히 놓으니 불편할 것도 없었다. 습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밤이라지만 바람은 미풍이었다. 이른 봄, 꽃 피는 언덕으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 같았다. 습기가 전혀 없으니 솜털보다도 더 포근했다. 통역은 술에 취한 채 옷을 훌훌 벗고는 먼저 침낭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참 통역이 여자였던가.

주변을 둘러보니 매트를 중심으로 천하가 돌고 있었다. 땅은 둥근 원반처럼 보였다. 360도를 빙 돌아 다 매끈한 지평선이기 때문이었다. 별빛이 무수히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지평선이 훨씬 더 좁아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지구의 중심에 누워 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중심에 누워 있는 셈이었다. 북극성에 눈을 고정시키는 순간 우주 시계가 확연히 들어왔다. 이른바 항성시계, 나는 아직 잠에 들지 못한 스님에게 하늘과 별에 대해 말씀드렸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하늘을 가리키면서 설명하고, 또 하늘을 보고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아는 법에 대해서 얘기했다. 하늘에는 우리들이 손목에 차고 있거나 휴대폰에 찍혀나오거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시간보다 더 정확한 시계가 있다. 북극성이 바로 시계판의 중심이고 북두칠성의 손잡이가 바로 그 시각을 가리키는 시침(時針)이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바람소리말고는 들려오는 게 없었다. 낙타 울음소리나 바람소리, 아니면 승냥이 울음소리라도 들려오면 좋으련만, 기껏 기사들이 코 고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칭기즈칸군이 중국을 치러 가는 길에 아마 여기쯤에서 노숙했을 것이다. 10만 대군의 함성, 말과 양떼의 울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잠들기 전에 아마 그렇게 중얼거린 듯하다.

 

아침에 눈이 부셔 침낭 자크를 살짝 열고 보니 지평선에 해가 오르고 있었다. 노을이 노랗게 번졌다.

우주(宇宙)라는 한자를 보면 집 우, 집 주라고 하는데, 그 말 그대로 나는 우주라는 집에서 하룻밤 편하게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