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개 심바
얼굴값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름도 제 값을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심바란 녀석의 삶이 그렇다.
심바는 월트 디즈니사에서 만든 만화영화 <라이언 킹>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라이언 킹>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동물의 왕 사자로 나오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 원작과 다른 점이다. 심바는 위엄 있는 사자왕의 아들로 태어난 왕자지만 못된 삼촌의 계략으로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자신의 무리를 떠나 방황의 길을 떠난다. 청년이 되어서야 이 모든 것이 삼촌의 음모였음을 알게 되어 다시 가족에게 돌아와 삼촌을 몰아내고 행복하게 산다는 게 기본 줄거리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개 ‘심바’는 도리와 희동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다. 흰색도 누런색도 아닌 털빛깔에, 아버지의 혈통인 말티스나 바둑이도 어머니의 혈통인 잉글리시 코카 스파니엘도 닮지 않았다. 어찌 보면 길에서 흔히 만나는 이른바 똥개 비스름한 생김새이긴 하나, 자세히 보면 어딘가 품격이 서려 있고, 더 자세히 뜯어보면 이목구비가 못생긴 데가 없이 잘 생겼다. 다만 털 색깔이 허여멀건 게 첫인상으로는 별 특징이 없어 보인다.
심바는 새끼 적에 우리 옆집에서 데려갔다. 옆집에는 작가 한 분이 집필을 위해 내려와 있고 가족은 서울에 사는데, 혼자 있기 적적하여 개를 기르겠다고 데려간 것이다. 도리가 낳은 새끼 여러 마리 중에서 제일 잘 생긴 녀석을 고른 게 심바다.
심바란 이름은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던 그 댁의 딸 봄빛이가 지어 주었다. 라이언 킹이란 만화영화가 한창 인기 있던 때라서 심바란 이름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주말이면 아빠의 집필실에 찾아오던 봄빛은 심바를 끔찍이도 위했다. 오기만 하면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며 예뻐 했다. 심바도 그 집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러나, 심바가 그 집에 간 지 두 달쯤 되던 어느날, 주인인 작가가 심바를 혼자 두고 외출했을 때, 심바가 사라져 버렸다. 그 집 대문은 바닥과 사이가 벌어져서 심바가 그 틈새로 빠져나갈까봐 굵은 각목을 대 놓았는데, 각목이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주인인 작가는 우리 집에 도움을 요청했고, 우리는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한테 탐문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란 주민등록에 등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어 두는 경우도 드물어 한 번 사라지면 찾기가 힘들다. 더구나 시골에서는 아직도 개는 ‘잡아먹는 동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개 한 마리 사라졌다고 찾아다니는 행위 자체가 흉거리가 된다. 개가 사라져서 찾아다닌 경험이 많은 우리로서는 그래서 개 찾아 다니는 기분이 영 안 좋다. 찾는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찾아다니는 동안 주민들로부터 온갖 이상한 눈길을 다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심바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개를 길러 보신 분을 알겠지만, 개도 어릴 적이 더 예쁘다. 그리고 3-4개월 때에 가장 예쁜 짓을 많이 한다. 그때엔 대소변도 잘 가리게 되고 재롱도 많이 피우고 주인도 잘 따르니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조금 더 자라면 따로 훈련을 시키지 않는 한, 고집도 피우고 말도 안 듣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때에는 그저 하는 짓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뻐 보인다. 이런 때에 심바가 사라졌으니 주인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심바가 없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서 작가의 부인과 따님이 내려와 함께 찾으러 다녔다.
40여 호나 되는 우리 동네 집집마다 찾아다녔으나 심바는 흔적이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 동네를 거쳐 학교에 다니는 이웃 동네 아이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 말이, 작가의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마당에서 강아지가 끙끙거리더란다. 그래서 각목을 치우고 강아지를 꺼내 데리고 놀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 동네로 가는 데 자꾸 따라와서 가라고 가라고 쫓았더니 돌아서서 가더란다. 그게 전부였다.
아이들의 말에서 희망을 얻은 우리는, 그렇다면 아이들이 보는 데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척하고는 다시 아이들을 따라 산너머 이웃 동네로 갔는가 보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이웃동네로 찾으러 가기로 했다. 산너머 이웃 동네로 가는 도중에 산 속에 외딴집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집에도 들렀다. 이러저러하게 생긴 강아지를 찾는데 혹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40대 초반의 주인은 못보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해 이웃 동네로 갔다. 그러고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심바야, 심바야.” 하고 부르기도 하고, 대문이 열려 있는 집은 그 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기도 하고, 개가 많아 보이는 집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려 그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심바는 없었다. 며칠을 일삼아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흘렀다. 허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심바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지던 때였다.
산너머 동네에 가는 길에 있는 그 외딴집에 사는 남자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옆집에서 잃어버렸다는 개와 비슷한 개를 봤어요.”
산에서 돌아다니는 걸 자기가 집에다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즉시 그 집으로 갔다. 심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서...
심바였다. 어느새 강아지의 태를 벗고 어른티가 제법 났지만, 허여멀건 털 색깔하며 뜯어보아야 잘 생긴 걸 알아 볼 수 있는 얼굴 하며 심바가 틀림없었다.
“심바야.”
하고 부르니까 심바는 금세 저를 부르는 줄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외딴집 남자의 말로는 산에서 돌아다니며 사는 걸 데려왔다는데, 산생활을 한 개 치고는 너무도 말끔했다. 야생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순하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듣고, 털도 목욕을 자주 시킨 것처럼 깨끗했다. 사람이 사는 집 울안에서, 아니 방안에서 자란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외딴집 남자가 의심스러웠다. 심바를 처음 잃어버렸을 적에 그 집에 가서 물어보았을 때 대답하는 태도에서 뭔가 미심쩍은 게 느껴졌던 기억도 났다. 그가 심바를 방안에서 키우다가 덩치가 너무 커져 밖에 내놓고 길러야 할 형편에 이르자 그러다가는 주인에게 들킬 것 같고, 그래서 아예 돌려주기로 한 것으로 짐작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수사관처럼 그를 신문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고맙다며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바를 찾으러 다닐 때, 개를 찾아주는 사람한테는 사례비를 주겠다고 공표를 하기도 해서 그에게 3만원인가 5만원인가 소액의 사례비를 주기도 했다.
여하튼, 우리의 의심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심바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대문만 열리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산너머 외딴집에 있는 심바를 찾아오곤 했다. 심바는 그 집 개들과도 친해서 함께 뒹굴며 놀고 있곤 했다. 제가 살던 곳, 함께 놀던 친구들이 그리워 가는 모양새가 분명했다.
몰래 숨겨 길렀다가 귀찮아지자 능청맞게 돌려준 외딴집 남자가 괘씸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돌려준 게 고맙기도 하고, 그 외딴집 남자가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친 이후로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는 터라, 우리는 괘씸한 마음은 접어두고, 고마운 마음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심바는 제 이름의 원 주인인 월트 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의 심바처럼 어린 시절 집을 떠났다가 장성해서야 집에 돌아오는 인생, 아니 견생 역정을 겪은 것이다.
심바는 6개월여를 옆집과 외딴집, 이렇게 양쪽집을 오가더니 그 이후엔 원래의 집에 적응했다. 주말이면 작가의 부인과 딸이 찾아와 심바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함께 놀아주며 귀여워해주니 집과 식구에 다시 정이 든 모양이었다.
심바의 주인인 작가와 부인, 딸도 어린 새끼에서 청년이 다 되어 돌아온 심바를 처음엔 서먹서먹해 하더니, 금세 다시 정이 들어 “우리 심바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며 예뻐해 주었다. 그리고 심바의 외가댁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집 식구와 만나면 심바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심바는 인물도 잘 생겼지만 머리도 엄청나게 좋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해 준 심바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참, 나도 목격한 장면이기도 하다.
심바는 햇볕을 좋아했다. 겨울에는 특히 더 좋아해서 따뜻한 햇볕 아래서 방석을 깔고 낮잠을 즐기곤 했다. 그러나 짧은 겨울해는 금세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서녘으로 기울기 마련. 그러다 보면 심바가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에는 그늘이 길게 드리워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심바는 방석을 입에 물고 햇볕 쪽으로 옮긴 다음 낮잠을 자고, 다시 그늘이 지면 방석을 입에 물고 또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보면 하루 해가 질 물렵이면 심바는 방석을 물고 마당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이 일을 겨우내내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 장면을 목격했다.
심바는 또 우유를 좋아했다. 그런데 주인이 먹고 싶을 때마다 챙겨주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쓰레기 봉투에서 우유곽을 찾아다가 입에 물고 와서 주인한테 보여준다. 그러면 주인은 “아하, 우유 달라는 거로구나.” 하면서 우유를 따라주곤 했다.
심바는 또 엄청나게 음흉스러웠다. 심바는 덩치가 커서 밖에서 키웠는데, 목줄을 하지 않아서 대문 안에서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심바는 사람하고 가까이 있는 게 좋은지 주로 현관에 있었다. 그러다가 현관과 거실 사이의 문이 열려 있으면 슬쩍 앞발을 방문 안쪽으로 걸쳐놓는다.
“심바, 너 들어오면 안돼!”
주인이 엄포를 놓으면 심바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내가 언제 들어간댔어요? 괜히 그래?
하는 표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 주인이 딴전을 피고 있는 사이, 심바는 슬금슬금 뒷다리까지 끌어다가 거실 안쪽으로 밀어넣는다. 앞발은 그대로 있고, 뒷다리만 안으로 끌어넣었으니, 그때 심바의 모습은 등이 잔뜩 휜 게 공모양이다.
그러고 한참 있다가 주인이 다시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이, 심바는 앞다리를 쭉 뻗는다. 마치 기지개라도 켜는 것처럼.
그렇게 앞다리를 쭉벋은 자세로 한동안 꼼짝않고 있다가, 다시 뒷다리를 슬그머니 잡아당겨 놓는다.
이렇게 몇 번을 하면 주인이 전혀 눈치 못 챈 사이에 심바는 어느새 거실 한가운데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음흉하다고 할 수밖에.
이렇게 똑똑한 심바지만 운명은 기구했다. 옆집에서 집필을 하고 있던 작가, 즉 심바의 주인은 서울로 외출을 하거나 자기 집에 가서 며칠 묶게 되면 심바를 우리 집에 맡겨 놓고 가곤 했다. 심바는 좀 뻔뻔한 면이 있어서 우리 집에서도 잘 적응하는 편이었는데, 도반이와는 사이가 좋질 않았다. 그건 심바보다 도반이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었다. 도반이란 녀석은 앞에 도반이 편의 얘기를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성격이 모가 나고 비겁해서 남하고 잘 못어울리는 편인데, 가끔씩 왔다가 가곤 하는 심바와도 잘 어울릴 리 만무였다. 그러나 심바는 제 어미인 도리, 아비인 희동이와는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것에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심바의 주인이 형편이 좋지 않게 되어 집필실을 팔고, 서울로 아주 올라가게 되었다. 그분의 서울 집은 작은 아파트여서 심바를 데려갈 수가 없었다. 별 수 없이 우리 집에서 심바를 떠맡을 수밖에.
그런 심바가 할머니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 할머니가 심바가 들어 있는 개장에 사료를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 할머니를 속이는지 밖으로 뛰쳐나와 도로 집어넣느라고 고생을 하게 했다. 그리고 뭔가 요구 사항이 있으면 심바는 마구 짖어댔다. 우리는 하루에 두세 차례씩 개장 문을 열어서 녀석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게 해주는데, 그럴 때만 되면 심바는 왈왈왈 짖어대며 내놓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짖는 소리가 그냥 개짖는 소리가 아니라, 조금만 음이 정확하면 사람 말처럼 들릴 정도로 다양했다. 입도 보통 개들이 짖는것처럼 규칙적으로 벌리며 멍멍 또는 컹컹 짖는 게 아니라 입을 좌우로, 상하로 번갈아 벌리면서 짖어대서 뭐라고 의성어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심바, 너 그러다가 잘 하면 사람 말도 하겠다.” 하면서 놀려대곤 했다.
특히 개장 밖에서 사는 도반이가 약을 올리면 심바의 이 증상은 더욱 심해, 온 집안이 시끄러워지곤 했다.
- 야, 이 자식아. 너는 뭔데 밖에서 살아? 안에 갇혀 있다고 약올리는 거야? 이따 보자, 가만 안놔둘 거야.
마치 이러면서 짖는 거 같았다.
이런 심바가 우리 집에서 산 지 몇 달, 심바는 기회만 닿으면 개장 밖으로 빠져나오고, 대문 밖으로 탈출해 몇 번이고 찾아나서게 해 우리를 귀찮게 하곤 했는데, 어느날은 아주 집을 나가 버렸다. 심바를 우리 집에 맡기고 갔던 심바의 옛주인이 놀러왔던 어느날, 심바를 붙잡고 섭섭해 하며 이런 말을 한 뒤 며칠 안 돼서였다.
“심바야, 이젠 널 자주 못보게 됐어. 우리가 아주 서울로 이사갔거든. 자주 못 보더라도 내려올 때면 맛 있는 것 사다 줄게.”
그날도 심바가 개장을 여는 순간 밖으로 빠져나가 마침 열려 있던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날이 어두우면 돌아오겠지 했건만 소식이 없었다. 다시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이웃 마을까지 찾아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끝이었다.
지난번에도 말을 했지만, 이렇게, 이 집 저 집 전전하던 개는 언젠가는 집을 나가게 되고, 잃어버리게 되곤 한다. 외방울 도스가 그랬고, 심바도 그렇고. 개도 한 부모 밑에서 오래 살아야 정서가 안정되는 모양이다.
심바, 어디에서든 살아만 있다면 오죽 좋으랴. 살아만 있다면….
- 얘는 심바는 아니지만, 심바와 같은 부모를 둔 동생이다. 품종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머리 역시 좋다. 이름은 다래인데, 심바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사다리를 탄다. 아래 사진은 나와 대화중에 찍은 것이다. 심장판막증이 심해져 산책을 시키지 않는데 그걸 항의하는 중이다. 1994년생 아줌마.
* 지금까지는 엄마가 쓴 글이고, 아빠인 내가 쓰는 글은 <애견 일기 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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