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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애견일기1 - 도담 도란 도조 도롱

내 딸 도란이에게

파란태양 | 2007/05/07 (월) 21:32

 

내 딸 도란이에게

- 사랑이란 사랑할수록 커간다더라 

 

그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1990년 10월경이었을 거야, 내가 너 도란이를 입양한 그 날은. 네 짝 도담이를 입양했던 충무로 그 집이었지. 네가 제일 비쌌다. 털빛이 백설처럼 빛나고 눈이 하도 맑아서 엄마아빠는 첫눈에 너 도란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성큼 커버린 도담이하고 짝을 지워주기 위해서였다. 이름은 저절로 지어졌다. 도란. 도란도란의 그 도란이다. 내가 만들었던 어린이책의 주인공 도담과 도란, 그것이 너희 말티즈 아이들로 옮겨온 것이다.

 

하지만 1991년 3월 12일, 용인으로 내려와 산 지 몇 달 만에 네 짝 도담이가 차에 치어 하늘로 갔지. 그때 엄마아빠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너는 알지? 그로부터 10년간 도담이를 추모했으니까. 너는 이때부터 짝이 없는 신세가 되었지. 그래서 아빠는 1991년 7월, 너를 위해 요크셔테리어 도조를 입양했다. 도조는 버림받은 아이라서 우리집에 적응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지. 너 역시 도조를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힘들어했잖아. 

 

그로부터 10년간 우리 식구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낮은 산언덕으로 매일같이 산책을 다니면서 그때는 너나 아빠나 엄마나 모두 다 즐거워했지. 아빠 인생에서는 이때가 제일 행복했는데, 도란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다가 2001년 4월, 아빠가 서재로 이사하면서 너 도란이와 헤어졌었지. 일주일에 한번 보는 것이 고작이었어. 엄마아빠가 좀 다투었거든.

 

그러다가 1년 뒤에 너는 도조와 함께 엄마를 따라 서울로 이사갔기 때문에 아빠는 너희들을 한 달에 한번씩 밖에 볼 수가 없었지. 너는 아마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을 거야. 아빠가 갈 때마다 마구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치던 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병이 났던 거니? 너는 결국, 아빠가 널 보러간 그해 봄 다리를 절면서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고보니 허리쪽에 큰 종양 두 개가 만져졌다.

 

아빠는 엄마와 의논하여 너를 데리고 내려왔다.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너를 맡으마고 해서. 넌 언제나 아빠 무릎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그래주지 못해 아마도 병이 되었나 보지? 

 

해마루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종합검진 끝에 의사들은 네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여주라고 하더라. 전립선암, 폐암, 반신 마비, 허리 종양, 심장판막증, 이것이 그날 아빠가 받아든 복잡한 진단서의 결론이었다. 네게 남은 여생은 고작 6개월에서 1년이라고 하더라. 이것도 후하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아빠가 얼마나 슬펐는지 넌 아마 모를 거야. 너무나 슬펐지만, 소리내어 펑펑 울고 싶었지만 네가 알까봐 울지도 못했다. 너를 안고 돌아오던 날,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라만, 아빠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민간치료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락사 밖에 없다고들 하고, 실제로도 밤이면 도란이 네가 너무 고통스럽게 신음을 하고, 누워서 오줌을 누고, 누워서 똥을 싸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아빠가 조금만 보이지 않아도 넌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잘 때도 이불을 깔아놓고 같이 자는데, 그대로 오줌을 싸곤 해서 하루에 한번씩은 빨아야했다. 다행이라면 아빠가 일하는 중에 옛날처럼 무릎에 올라와 있고, 잠도 그렇게 잔다는 것이었다. 아, 이 행복이 제발이지 1년 이상만이라도 가다오, 아빠의 기도란 겨우 이런 내용이었다. 

 

빛이 좋은 날이면 도란이 널 마당에 내놓는데, 도리나 도신이가 절대로 건드리질 않더구나. 네가 아픈 걸 아는지 냄새만 킁킁거리다 말더라.

아빠가 사정사정해서 만난 그 아줌마 기억나지? 네게 침을 놓아주고, 좋은 약재를 주어 먹이게 하던 아줌마 말이야. 넌 침을 맞기 싫어 울어대고, 약을 먹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아빤 널 살려보기 위해 네가 싫어하는 데도 그런 걸 시도했었단다.

무슨 효소와 적송 숯가루, 마그밀도 먹였지. 멸치, 오곡 현미가루, 홍화씨 등을 죽으로 끓여 먹이기도 했지. 네가 가장 싫어하던 뜸도 매일같이 떴다. 그땐 많이 뜨거웠지?

 

어느 날 아침이었던가, 똥을 누라고 잔디밭에 내려놓았는데, 너는 조금씩 걸어다니다가 쓰러지고, 또 일어나 걷다가 쓰러지곤 했지. 아빤 방안에서 너를 내다보면서도 내버려두었어. 그러면 혹시라도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결국은 입에도 마비가 와 넌 음식을 삼키질 못했어. 이때부터는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였다. 반은 흘리고 반은 삼키고, 아빠가 흘린 눈물이 네가 흘린 죽보다 더 많았다.

 

그러는 중에도 종양은 많이 줄어들고, 딱딱한 게 풀어지고 있어 아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가끔 너는 호흡이 불편하다는 하소연을 하고, 이따금 그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아빠는 차라리 네 병을 대신 앓았으면 하고 기도했다. 널 치료해주던 아줌마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무섭다고 치료를 포기하셨다. 굉장히 애를 많이 써주셨지만 아마도 어쩔 수가 없었을 거야.

  

그날이 2003년 5월 17일이었을 거야.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널 엄마에게 올려보냈지. 죽기 전에 인사하고 오라고 하여 갔다가 넌 엄마도 보고, 외할머니도 보고, 이모도 보았지. 널 예뻐해준 외할머니를 보고 또 보고 해서 외할머니가 많이 우셨다더라. 

 

5월 28일, 이 날 아빠는 서울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지. 그 사이 아빠 친구 스님이 집에 와 있으면서 널 돌봤는데, 네가 몇 번씩이나 까무라쳐 스님이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

 

이 날 아빠가 널 보았을 때 넌 이미 호흡이 가늘어져 있더라. 아빠는 직감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아빠는 각오하고 있었다. 네가 이번에 살아나더라도 너하고 아빠가 함께 살 시간은 어차피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늘에서 받은 시간이 이렇게 밖에 안되니 아빠인들 어쩌겠니.

 

그날 밤, 아빠는 네게 참 많은 말을 속삭였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아. 너도 아마 그럴 거야. 아빠가 너무나 두서없이 말을 많이 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갈 테니 그때까지 먼저 간 친구들하고 잘 지내라는 거였지. 그러다가 졸려서 네 발을 잡고 잠에 들었지. 

 

이튿날 아침, 너는 자는 듯이 누워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망울은 여전히 맑았다. 아빤 정말 네 눈망울만 보면 만 가지 시름이 다 없어지곤 해. 그런 너를 보고 아빠는 세수를 하러갔지. 그런 다음 다시 널 들여다보았어. 아빠가 그랬어. 도란아, 도란아.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불렀어. 네가 놀랄까봐. 그런데 움직임이 없었어.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넌 아빠를 똑바로 보고 있더라.

아빠가 그렇게 좋아? 바보야, 넌 숨이 끊어진 거야.

그제야 네 눈을 감겨 주었다. 못난 아빠는 우리 도란이가 언제 하늘로 갔는지 가는 줄도 모르고, 그 길을 지켜주지도 못했어. 

 

이날 마침 서재에 와 계시던 스님이 도와주어서 네 장례는 아주 그럴 듯하게 치렀다. 광목을 끊어다 염을 하고, 스님이 경을 읽어주고, 아빠는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다. 너도 귀담아 들었겠지? 그런 다음 아빠는 널 뒷산에 묻었다. 이 산에는 도담이가 있고, 희동이가 있고, 도롱이가 있잖니. 마당에는 도반이가 묻혀 있고. 그러니 외롭지 않으려니 아빠 나름대로 생각한 거야. 

 

도란아, 네가 듣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아빠가 말한다.

너하고 한 인생을 함께 지냈다는 게 정말 고맙구나. 너의 맑은 영혼을 바라보면서 아빠는 즐겁고, 언제나 기뻤다. 너를 오래도록 지켜주지 못한 이 아빠를 용서해다오. 언제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더 행복하게 살자꾸나. 도란아, 이 이름을 아빠는 가슴에 묻으마.

언제고 힘이 들거나 외로울 때는 혹시 그럴 수 있다면 아빠에게 의지하고, 아빠 품에 머물러라. 그리고 아빠에게 요구해라.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너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사랑하는 도란아, 정말 아빠는 널 사랑했다. 사랑한다, 도란아. 아빠를 용서해다오.

들꽃 한 송이로 피어나도 좋으니 꼭 돌아오렴. 조약돌 한 개로 돌아와도 아빠는 널 알아볼 거야. 안된다면 바람 한 줄기로 와도 좋다. 아빤 네 숨결만 들어도 네가 도란이라는 걸 금세 알아볼 거니까.  

 

- 2003년 6월


- 낮잠 자는 아빠를 깨우는 도란이. 1989년경.


- 흰색 꽃잎만 보아도 도란이가 아닌가 눈여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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