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머지 않은 동네 뒷산에 묶여 산단다.
아니, 왜 아이들을 거기 데려다 놓고 깜빡 잊었단 말인가.
잊을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내가 이토록 무심하게 지냈단 말인가.
물이라도 줘야 할 텐데 물 주는 사람도 없을 테고,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까 걱정이다.
동생에게 물으니 닉스와 믹스는 죽고, 이웃 형네 개도 죽었다고 말한다.
닉스란 개도 믹스란 개도 없지만, 나는 그냥 그러려니 들었다. 그저 희동이는 죽었구나 싶었다. 희동이는 믹스견이다. 닉스는 웬일인지 도롱이로 인식되어 이 역시 의심없이 도롱이가 죽었구나 생각했다. 꿈에서는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래도 도리나 다른 아이들은 살아 있다는 말이구나 싶어 마음이 더 급해졌다.
물이라도 주지 왜 내 동생은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왔나 원망스러웠다.
물통에 물을 받고, 아이들이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챙겼다.
어서 갖다 줘야지, 보고 싶은 우리 아이들, 벌써 몇 년이나 잊고 지냈나.
이러던 중에 얼굴에 웬 물기가 확 느껴진다.
리키가 지켜보다 그 긴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냅다 핥아버린 것이다.
"왜!"
밥 달란다.
"이놈아, 네 밥이 급한 게 아니라 산에 묶여 있는 네 형아들 밥이 더 급하건만..."
리키만 아니었으면 아이들을 만나 물도 주고 밥도 주었을 텐데 이놈이 산통을 깼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리키 바니 밥 챙겨주고 나니 더 속이 상하다.
진짜로 눈물이 난다. 아무리 꿈이지만 이게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사실 12년 전 급한 일이 생겨 아이들을 시골집에 맡긴 적이 있다. 도반, 도롱, 도리 셋은 시골 감나무 밑에 우리를 만들어 두고 어머니더러 봐달라 부탁하고, 다래와 도신이는 집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 맡겼다. 도란이와 도조 둘만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그때 닥친 일을 정리했다. 아이들 보러 시골에 가면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되어 너무 힘들었다. 결국 보름만에 모두 데려왔다. 또 식당에 맡긴 아이 중 다래는 얼굴 보러 들르면 내가 돌아올 때 거의 2킬로미터 정도를 뒤따라오다 지쳐 돌아가곤 했다. 당시 도신이는 마침 새끼를 한 마리 낳아 뒤따라 오지 못한 채 차가 떠나는 걸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다래만 차를 맹렬하게 따라붙곤 했다. 결국 다래도 데려오고, 도신이는 새끼를 분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려왔다.
아마도 이때의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 아이들이 어딘가 우리에 갇힌 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저희들끼리 모여 있는 장면이 꿈에 자주 보인다.
그동안 꿈에서 아이들을 찾아가 물도 주고 밥도 주었지만 그게 늘 있는 일이 아니고,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고 만다. 일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이런 식으로 비슷한 꿈을 꾼다.
우리 희동이는 죽은 지 12년이 됐고, 가장 최근에 죽은 아이가 리키 이름에 붙어 다니는 도조인데 그새 4년이 지났다. 아이들이 또래가 다 비슷해 한 놈이 가기 시작하니 해마다 하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아이들이 갈 때마다 먼저 하늘에 가 기다리고 있거라, 나중에 아빠가 가면 다시 행복하게 살자, 이러면서 위로해주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오래 떨어져 있다보니 지치는가 보다. 아버지더러 우리 아이들 좀 맡아 달라고 제사 때마다 속으로 말씀드리곤 하는데, 꿈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보시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가장 힘든 게 먼저 간 아이들 생각이다. 머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아버지 가신 뒤 슬픔은 크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사람이니 알아서 친구들 사귀고, 낯선 세상이긴 할 것이나 그런대로 잘 적응하시겠지 안도하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반려견들은 늘 걱정이다. 정말 제사밥이라도 줘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말 못하고 생각 깊이 하지 못하는 이 어린 것들이 저세상이라는 그 미지의 공간에서 어떻게 견디나 생각하면 머리끝이 아뜩해진다. 이 불쌍한 것들을 어이할꺼나.
아이들 생각을 하면서 커튼을 걷는데 그만 그 아래가 오줌 천지다.
내 집에서 오줌을 싸는 놈은 리키밖에 없다. 바니는 애초 불가능한 데다 기저귀까지 차고 있으니 오줌을 싸는 범인은 딱 한 놈 뿐이다.
"리키, 이놈의 새끼!"
리키는 깜짝 놀라 종종 걸음으로 도망친다. 제 죄를 저도 알지만 늘 실랑이다.
죽은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산 놈이 더 골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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