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중에 부처를 믿다가 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정해진 시간, 수명이란 게 있었다.
2002년 10월 말쯤 감기가 든 듯한데 잘 낫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열이 39도 가까이 올라갔다. 감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진단 결과는 전혀 달랐다. 백혈병이었다. 그는 진작에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지만 짐짓 감기인 척하면서 주위를 달랬던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평소 그토록 뵙고 싶어하던 숭산스님을 하필 생사의 징검다리를 밟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뵐 수 있었다. 원래 고향 친구인 수보스님이 화계사 숭산스님이 참 훌륭하니 꼭 뵈라는 얘기를 해서 혼자 화계사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스님을 뵙지 못했던 것이다. 그 괴로움을 적은 글이 있다.
- 선지식 없는 외로움!
이 외로움으로 한밤중에 일어나 몸을 추스르며 소리없는 절규로 눈물 흘리네.
아아! 스승 없음이여. 스승 없음이여. 내 목숨을 앗아갈 스승 없음이여…!
그 옛날, 저 영축회상에서 인천(人天)을 위해 법화의 법을 설하시던 석가모니붓다께 나의 스승됨을 청원하여 보건만, 두터워라! 이 업장(業障),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시는구나.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 다만 이 선지식없는 외로움에…
- 요즘 어떤 때에는 목각으로 동무를 하나 조각해서라도 같이 염불도 하고 좌선도 하고 싶은 생각이 부쩍 든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불상인 것같기도 하다.
늘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스승없이 혼자 공부해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그는 하필 목숨이 다하는 순간인 2002년 12월 15일, 즉 사망 6일 전에 겨우 그가 바라고 바라던 그 선지식을 만나게 된 것이다. 희유한 인연이다. 평소 좋은 스승 만나기를 바랐는데 야속하게도 이런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의 기록을 그가 남겼다.
- 병원 응급실 베드에서 숭산스님을 만났다. 심장이 안 좋으신 모양이다. 병원바닥이지만 큰절을 올렸다. 그러나 도저히 기력이 없어 삼배를 할 수 없었다. 겨우 일 배를 한 뒤 내가 여쭈었다.
유마 : 스님,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잘 모르지만 마음을 어떻게 요긴하게 써야 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숭산 : 다 내려놓아. 방하착이야. 불생불멸의 이치가 거기에 있어.
유마 : 스님, 마음은 내려놓지만 몸은 잘 내려놔 지지가 않습니다.
숭산 : 그래? 마음은 잘 내려놓았다는 말이지? 그럼 말해 봐. 마음은 있어 없어?
유마 : ……?
숭산 : 바로 그것이야. 오직 모를 뿐이야.
그는 여기까지 쓰다가 “아, 현기증이 나서 더 이상 쓸 수가…”라는 말로 맺고 있다. 이것이 12월 15일이다. 대신 그 자리에 동석했던 조카더러 숭산 스님과 만난 이야기를 더 자세히 적어 카페 회원들에게 알리라고 부탁해서 그 조카가 뒷 이야기를 조금 더 적었다.
유마 : (뭔가 교조적인 질문을 하자) ……
숭산 : 너처럼 자꾸 대가리를 쓰려고 하는 것이 문제야. 오직 모를 뿐이야, 그것에만 집중해.
유마 : (잠시 침묵 후) 스님, 불생불멸하는 것이 몸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숭산 : 그럼, 몸이 아니지, 그럼.
유마 : 마음이 정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면 소용이 될까요? 염불도 괜찮을까요?
숭산 : 염불도 괜찮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좋아.
숭산을 친견한 후 유마는 어린애처럼 들떠 이 조카에게 자랑했다.
- 병원 로비 벤치에 숭산 스님과 나란히 앉았거든. 스님도 심장수술을 받고 치료중인 모양이야. 손에 링거를 꽂고 계셨어. 그래서 그 손을 가만히 잡아드렸지. 그러니까 스님도 링거 없는 다른 손을 조용히 내 손위에 포개시는 거야.
그러고서 일주일 뒤인 12월 21일이 되었다. 백혈병은 두통이 엄청나다. 헤모글로빈이 없어 결국 산소 부족 현상에 시달려야 한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진다. 마지막 날, 그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여 몸을 수건으로 말끔히 닦고 이를 닦고 뒷물을 했다. 그러고서 침대로 돌아온 지 30분만에 의식을 놓았고, 그 길로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아니 열반에 들었다.
그가 병원에서 의식을 놓기 전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글이 있다. 그는 평생 어머니가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지고 있었다. 딸을 내리 낳다가 가까스로 얻은 귀하디 귀한 아들이 개신교를 버리고 마귀의 소굴인 불교로 귀의했다니, 평생 교회에 인생을 바쳐온 그의 어머니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마 김일수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생신 때면 일부러 찾아가 찬송가를 불러드리기도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어줄 수도 있었다. 어머니가 개신교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아래 글을 보면 그가 유마였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글은 숭산스님을 뵙고 나서 쓴 글인 듯하다. 제목이 ‘정신을 놓기 전에’다. 실제로 이 글을 쓴 다음 그는 숭산스님을 만난 인연을 적다가 끝내 다 적지 못했다.
- 정신을 놓기 전에 할 말을 해둬야겠다.
내가 이대로 가면 형제들은 물론 홀로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신 나의 어머니마저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견해를 지을 것이다….
“보라, 일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중에 부처를 믿다가 벌을 받아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겪고 말았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더하는 존재는 없다. 부처란 다만 우상에 불과하여 믿으면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시여.
제가 비록 부처님의 도를 사모하여 이 길을 왔으나 하나님의 법을 비방하여 도려낸 적이 없고 가로막은 적도 없습니다. 드문드문 하나님의 법 가운데 어지신 하나님의 법이 아님이 분명한 것에 대해서만 가로로 세로로 재어 온전히 드러나게 했을 뿐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길고 짧음이 스스로의 업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지난 생애와 또 확실히는 금생에 많은 살생의 업을 뜻과 말과 몸으로 지었기에 지금 스스로의 목숨으로 갚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만일 부처를 믿어 화를 만나 이리 된 것이라면 어찌하여 교통사고나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지붕이 무너져서 목숨을 잃지 않는 것입니까?……
어머니는 아셔야 합니다.
저에게는 단 하나의 여인입니다.
나에게 어머님은 성모이십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낳은 성자는 누구입니까? 어머님이 낳으신 성자는 바로 (주님에 대한) 어머님의 믿음이십니다. 그런 거룩한 성자를 낳으신 몸으로 다른 거룩한 분을 비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머니마저 이 아들의 죽음을 그렇게 여기신다면 저는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진정으로 지지하고 끝까지 저의 편이 되어 준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아버님도 가시고 없는데…….
어머니, 부디 그러한 견해를 짓지 마소서. 다른 형제들에게도 부디 그런 견해를 짓지 말도록 권면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저는 아직 어머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이 어린 아들이 떼를 쓰는데도 기어코 부처님을 비방하실 것입니까?……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 아들은 어머니만 믿고 갑니다.
그는 갔지만 책 네 권을 남겨주었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 불교로 개종한 신앙고백서가 아니다. 만일 경박한 불교인 누군가가 나서서 이 책을 근거로 기독교를 비방한다면 유마 김일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나아가 부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와 관련이 없다. 하물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능은 하나도 다치지 않게 했다.
그러므로 불교인이라고 해서 이 책을 읽고 우쭐해서도 안 된다. 그는 교회에서 보지 못한 하나님을 불교에서 찾았을 뿐이다. 그는 기독교를 버린 적이 없다. 기독교의 잘못된 점을 버렸을 뿐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다. 물론 그가 불교에 귀의한 이후의 기독교, 하나님, 예수님의 정의는 이전의 정의와 사뭇 다를 것이다.
유마 김일수는 종교적 귀순자가 아니라 치열한 수행자였다. 그 같은 열정을 불교인들이 얼마나 갖고 있으며, 그가 탐구했던 그 정신을, 그 용맹을 과연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가 말하기를 기독교를 비난한 적이 없고, 다만 기독교 안에서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한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교에서 틀린 것도 과감히 그가 지적했다. 아무 이유 없이 절이나 해대고 기복을 구하는 것에 대해 그는 따끔하게 지적했다.
- 친구가 말하기를, (어느 절에서) 네팔에서 국보로 모셔져 있던 불상을 모셔왔는데 천일기도 정진 중 부처님 옆구리에서 꽃이 4송이 피어서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산사를 향하는 그 순간에도 죽음의 마왕은 어김없이 내 코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너는 어찌하겠느냐? 너무 그렇게 신통한 곳만을 찾아다니며 좋아하다가는 신통이 곧 부처님인 줄 잘못 알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처님 말씀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부처님을 다 찾아다니며 공양한다 해도 가만히 앉아 짧은 순간이나마 마음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으니, 이 몸이 곧 법당이요, 이 마음은 부처님이고, 계율 지킴은 스님이며, 믿음은 청정한 신도이니 부디 너무 멀리서 찾지 마라.
불교에서도 도려내고 닦고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는 걸 그는 잘 알고 그때그때 말했다. 그러니 누구도 우쭐하지 말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마 김일수가 이 세상에 다녀간 의미다. 우리 불교가 녹슬지 않았다면 어찌 부처님과 보살들이 유마 김일수를 이 시대로 보냈겠는가. 녹은 녹이요, 때는 때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유언으로 말하기를 “불자여,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고 했다.
그가 남긴 책을 거울삼아 가던 길을 더 똑바로 가도록 해야 한다. 붓다가 곧 깨달으신 분이니 그 분의 제자인 내가 가는 길은 항상 바르다는 견해도 짓지 말아야 한다. 그의 책은 진리가 아니다. 그가 늘 말했듯이 진리를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일 뿐이다. 붓다가 열반에 들기 앞서 제자들에게 ‘내게 의지하지 말고 법(法)에 의지하라’고 말했듯이 유마 김일수 역시 두 아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 내 아들 승해야, 승인아! 너희는 내 아들이 아니라 법(法)의 아들이니, 마땅히 도(道)를 구할지언정 나의 육신된 상속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