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란태양/*파란태양*

아무도 없는 고향집 가끔 들여다보며

어머니가 노쇠하셔서 고향집을 떠나 대전에 나가 계시다.

상태가 좋지 않아 늘 가슴이 아프다. 불가항력, 온몸으로 나의 무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소설 이순신>을 재발간하랴, <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를 새로 쓰랴 몇 달간 몹시 바빴다. 어머니 뵈러 자주 가지도 못하고, 추석에는 마감이 걸려 저녁에 갔다가 아침에 왔다.

 

 

- 2009년 부여 만수산 만수사에서 찍은 사진. 지금은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나이를 웬만큼 먹고 보니 점점 더 우울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실 때만 해도 나하고 너무 먼 얘기처럼 그리 슬프지 않더니 나를 돌봐주신 육촌형이 질식 후 장기부전으로 가시고, 사촌동생이 암으로 죽고, 사촌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또다른 사촌동생이 사고로 반신 마비가 되고, 사촌형이 폐암에 걸리고, 숙부들, 고모들이 잇따라 가시면서 나의 이 보잘 것없음에 무릎을 꿇는다. 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고, 면회조차 금지된 기간에는 차라리 죽고싶을만큼 우울했었다.

 

애써봐야 거기고, 몸부림쳐봐야 역시 거기다.

<사도세자, 나는 그들의 비밀을...>을 통해 약 200여년의 역사를 훑고 나니, 더더욱 인간이란 종에 대한 회의가 깊어진다. 악을 써봐야 그 자리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좋은 사람이니,  다 거짓말이다. 세월 앞에 진면목이 낱낱이 드러나건만 기어이 거짓말한다. 역사소설이란 역사에 담그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왜, 어떻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1986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글만 쓰며 살다보니 세상에 부끄럽고,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멋대로 일어나고, 아무 때나 자고, 하기 싫은 거 안하고, 보기 싫은 사람 안만나고, 그러기를 28년째다. 200년 역사를 들여다봐도 별다른 게 없는데 내 인생인들 뭐가 다르랴. 내 마음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갑자기 온순해지거나 착해질 것같지는 않다. 여전히 예, 아니오가 분명하고, 또 좋고 싫음을 애매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딸이 말하기를, 우리 아빠는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딸만은 이 못된 아버지를 용납해준다.

그래서 마음 좀 잡아보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가 안계신 시골집 CCTV를 들여다본다. 푸른 잔디가 깔린 안마당은 하루 종일 적막하다. 담장 밖으로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간다. 거실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고정돼 있고, 장독대에는 가끔 벌이나 나비가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비가 내리는 것도 보인다. 부모님, 조부모님, 숙부와 고모들이 싸우며 소리치며 비비고 살던 그곳이 이렇게 적막하다. 언젠가는 누군들 어느 집인들 적막하지 않으랴. 그래도 고향집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아직은 다행이다. 시시각각이 다행이다.

 

- 어머니께, 사진 찍으니 손 좀 들라 하니 들어주셨다. 2012년이다. 이런 사진 다시는 찍지 못한다.

 

- 어머니가 늘 내다보시던 마당. 지난 4월에 간 요크셔 테리어 리키와 반신불수 노견 하얀 바니가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순간이다.

어머니는 이 창으로 밖을 보시기 어려울 것이고, 리키는 아주 가버렸으니... 2012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