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께서 즐겨 하시던 말씀이 대도무문이다.
방송을 보니 해석이 시원찮다.
대도무문(大道無門) ;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
이 사전 해설은 대도무문의 의미를 반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깊은 뜻은, 큰 도를 만나려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큰 도를 이루는 데 정해진 문이란 없으니 너 스스로 문을 내어 가라는 뜻이다.
문이 있다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 그리 지나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의 길이 아니라 새로 난 길로 가라, 스스로 길을 내라, 나아가는 사람이 스스로 문을 만들어내라는 의미다.
대도의 의미는 섭리, 진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힌두교를 깨고나와 불교를 창시한 붓다나 유대교를 부수고 나와 기독교를 이룬 예수처럼 자기만의 門을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도무문의 그 문은, 붓다와 예수가 낸 이러한 문조차 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참 뜻이다.
그렇다. 정말 큰일을 하는 데는 모범이 없고, 사례도 없고, 법칙도 없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도를 이룬 건 아니겠지만 대임(大任)으로 대도를 대신한 듯하다. 5000년 왕조국가 대한민국을 마침내 민의 나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500년 전 정도전이 이루려다 못이룬 그 나라, 4.19 때 학생들의 피로 만들려다 못만든 그 나라, 그것을 김영삼은 3당합당이라는 기상천외한 문으로 이루어냈다.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이 민주주의를 더 구체화시켰다. 최근 이명박, 박근혜가 다소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했지만 큰 틀에서 민주주의 범위 내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화된 법이 있어 이들의 독선을 5년만에 정지시킬 수 있어 다행이고, 선거로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대통령은 동지 10명을 규합하여 자유당을 탈당, 야당인 민주당을 창당(33인중 1명)한다. 김영삼 외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
YH여공들 시위 때는 당사를 빌려주어(요즘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대신 조계사에 들어간다. 야당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일로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저항, 끝내 박정희를 역사 현장에서 아웃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주저하던 일을 과감히 해치웠다.
일본 총독이 살던 청와대 내부 건물을 철거해버리고, 일제 잔재인 총독부 건물을 폭파해체시켰다. 친일극우세력들이 총독관저도 이승만이 살던 역사유물이고, 총독부도 중앙청 기능했으니 역시 역사라며 반대했지만 김영삼은 그들의 주장을 물리쳤다. 이후 누구도 김영삼만큼 친일파를 과감히 정리한 대통령이 없다.
김영삼은 율곡비리 연루 장군들을 대거 구속시키고, 군부 내 쿠데타 조직이랄 수 있는 하나회를 완전소탕시켰다. 오늘날 국방비리가 그때보다 더 많이 터지지만 제대로 구속되는 군인이 없다. 돈 정치, 부패사회를 근절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행하고, 오늘의 지방자치제도를 확대시행하기도 했다.
김영삼의 대도무문에 가장 근접한 노무현조차 똥별 운운하며 전작권 없는 장군들이 직무유기한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그들을 숙청하지는 못했다. 김영삼이 평시작전권이나마 미국에서 돌려받은 이후 아무 변화가 없다. 노무현도 말로는 전시작전권을 가져온다고 예정했지만 정작 이명박, 박근혜가 뒤집어 놓았다. 말하자면 대못을 박지 못했다.
김영삼은 문이 없는 데서 문을 만들어낸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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