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국수를 만드려면 사람이 여럿 참여해야 했다.
<기산풍속도>에 나오는 그림. 지렛대를 눌러 국수를 뽑기 위해 한 남자가 벽에 매달려 있다.
19세기 초인 순조 때 발간된 <임원십육지>에 국수틀로 뽑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큰 나무통에 구멍을 뚫고 바닥에 작은 구멍을 무수하게 뚫는다.
이 국수틀을 큰 무쇠솥 위에 고정시키고 국수 반적을 놓아 지렛대를 누르면 가는 국수발이 물이 끓고 있는 솥으로 줄을 이어 흘러내린다.’ 위 그림과 같다.
처음에는 메밀을 주로 썼다는데, 면이 끊어져 녹두녹말을 추가했다. 밀국수는 너무 귀해서 널리 먹지 못했다.
이처럼 국수를 만들기가 어려워 일년에 두 차례 정도밖에는 해먹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잔치를 벌일 때나 국수를 뽑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잔치국수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조선시대 국수 만드는 법을 적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번역> 보릿가루(麥屑)를 면이라 한다. 곡식(穀), 나물(茶), 과실(菓), 콩(荳)으로 가루를 만든 것을 면이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가루를 반죽해서 만든 것은 모두 다 병(餅 ; 떡)이라 부른다. 색병(索餅)과 수인병(水引餅) 같은 것은 우리나라의 수면(水麪)과 같은 것인데 중국에서는 병(餅 ; 떡)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국수라 한다. 우리 풍속에 마른 것은 떡이라 하고 젖은 것은 국수라 한다. 마른 것은 시루에 찌고 젖은 것은 끓는 물에 삶거나 물에 넣는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제의(祭儀)에 보면 면식(麪食), 떡, 만두, 미식(米食), 자고(餈糕) 등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다. 국수를 익힐 때 냉수를 많이 쓰고 다 익은 다음에도 국수를 냉수에 담가 뜨거운 기운이 다 없어졌을 때 건져내어 초, 마늘, 장, 기름, 부추 등을 섞고 다시 국에 말면 맛이 아주 좋다. 국수는 여러 가지 잔치에 쓰이고 조반이나 점심 등 쓰이지 않는 데가 없다.
사람을 대접할 때 국수 대접은 밥 대접보다 낫게 여겨지므로 국수를 대접할 때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는 것이 좋다. 국수는 속껍질이 조금 있어야 맛도 좋고 자양에도 좋다. 시골에서 만드는 국수가 빛은 검으나 맛은 좋다. 국수를 많이 먹으면 풍이 동한다고 하고 또 부은 것이 빠진다 하여 산모가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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