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친고모가 두 분이다. 아버지의 여동생들이다.
아버지 가신 뒤 큰고모가 가시고, 오늘 작은고모가 가셨다.
두 분 고모 다 모진 현대사를 사시다 가셨다.
큰고모는 광천으로 시집가 해산물 장수를 하시면서 나와 우리 형제에게 해산물을 통한 두뇌영양소를 공급해주신 분이다. 큰고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의 이 두뇌 기능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모도 고모부는 잘못 만나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죽도록 일만 하다 돌아가셨다.
나는 바이오코드를 발명한 이래 해산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입장에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고모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모는 5일장마다 광천에서 내 고향 운곡으로 장사를 하러 오시는데, 그때마다 우리집에서 잤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릴 해산물을 챙겨오고, 조카들 먹일 것도 덩달아 가져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돌아가신 뒤에도 고모는 늘 그렇게 했다. 고모 덕분에 우리집에는 새우젖, 여러 가지 굴, 절인 생선 등이 떨어질 날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내가 젖 종류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고모 덕분에 생긴 입맛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고모가 내 나이 대여섯 살 때 광천으로 가셨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해산물 공급이 거의 없었는데, 항상 아쉬워하는 점이다. 아깃적부터 해산물을 먹은 우리 막내가 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제법 두뇌기능이 괜찮은 것은, 아마도 유아시절부터 고모가 가져오는 갖가지 해산물을 먹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둘째고모는 내게 거의 추억이 없다. 싸우다 친정으로 도망쳐온 고모를, 뒤따라온 고모부가 학대하고 거친 말을 퍼붓는 걸 보았다. 내가 당시 대여섯 살에 불과해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는데, 더 컸더라면 아마 그 고모부는 내게 맞았을 것이다.
고모는 종종 한숨을 쉬며 대전에서 할머니가 계신 우리집으로 달려오곤 했는데, 난 눈치로 고모가 싸우다가 도망쳐 온 거란 사실을 짐작했다. 그렇게 눈칫밥을 먹는 동안 고모는 조카들 속옷을 벗겨 이를 잡아주고, 목욕을 시켜주었다. 이를 어찌나 잘 잡는지 지금도 고모가 이 잡던 풍경이 선명하다.
내 인생에서 우리 작은고모는 이 정도 추억 밖에 공유된 것이 없다. 게다가 고모의 양아들이 7년 전 급사했는데, 오늘 숙부가 말씀하시는데 병원에서 무연고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둘째형이 나서서 겨우 장례식장을 마련하고, 내일 아침 우리형제들이 모여 장레를 치르기로 했다.
고모하고는 혈육이라는 사실 말고는 동네 사람이나 친구들만큼 추억을 공유하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불쌍하고, 그 모든 사람의 죽음은 다 슬프다.
부디 좋은 세상으로 다시 오셔서 못다 한 복을 누리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난 환생을 과학적 추론으로 굳게 믿는 사람이다.
우리 고모가 맞이하는 새 인생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 작은고모는 1938년 음력 7월생이다. 고모는 24년생 우리 아버지하고 약 14년 터울이다.
이 사진은 일제 때 고향 운곡에 설치된 야학의 졸업기념사진이라는데, 아랫줄 맨왼쪽 분이 우리 당고모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더벅머리가 1924년 1월생 우리 아버지고, 그 옆이 25년 9월생 둘째숙부다.
오른쪽 깃발은 일제의 깃발인 욱일승천기다.
사진에 소화 17년으로 나오는데 태평양전쟁이 터진 해인 1941년 4월 29일이다. 당시 고모 나이는 4살이니 이 야학에는 올 나이가 안된다. 이 사진 찍은 한 달 뒤 지금 생존해 있는 부천숙부가 태어난다.
진주만 공습은 이 해 12월 7일에 벌어지고 우리 아버지도 공출 등에 시달린다.
1945년 23세가 된 우리 아버지는 일제의 징병 1기로 뽑혀 대전 주둔 224부대로 가던 중 탈출하셨다가 해방될 때까지 몇 달간 산에 숨어 사신다.
고모 사진이 없어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아버지 사진을 대신 올린다.
* 기록할 데가 따로 없어 여기 메모한다.
세하 2004.12.30 0860 옥계초등학교 늘사랑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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