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가던 도쉰이
어느 날 백암장에 가는 길이었다. 기억이 가물거려 언제였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기억은 기억의 단계 중 맨 마지막이라서 늙어가면서 저절로 잊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굳이 날짜를 가늠하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 논리적으로 1992년(사진에 없음)에서 1996년(사진에 등장) 사이의 일같다. 가만가만, 1993년인 듯하다. 처음 나이를 3살로 정해 따지기 시작했으니 그렇다.
우리 차 앞으로 식용견을 가득 때려실은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신호등에 정지신호가 들어오자 트럭이 먼저 서고 나도 뒤따라 섰다.
불쌍한 것들하고 눈이 마주쳤다. 외면하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눈이 앞으로 달렸으니 놈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까만 눈동자를 가진 노란털 발바리가 눈에 띄었다.
“아니, 쟤! 아직 강아지잖아?”
애엄마(시간이 한참 지나다보니 이 용어밖에 쓸 수가 없게 됐다.)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커다란 성견 사이에 한 줌밖에 안되는 작은 강아지가 숨을 헐떡거리며 끼어 있었다.
“저렇게 작은 애를 왜 보신탕 트럭이 실어갈까?”
“설마?”
“안되겠어. 물어보자.”
나는 신호가 들어오는대로 트럭을 앞질러가 차를 세우고 트럭도 세웠다. 트럭운전사가 무슨 일인가 하여 내다보았다.
내가 차에서 내려 물었다.
“뒤에 작은 발바리 강아지가 있던데 그애는 왜 실어가지요?”
“아, 그 강아지요? 큰개를 사니까 끼워주더라고요.”
“그럼 어떡하실 건데요?”
“다섯 근은 나와요.”
“뭐요? 잠깐만요.”
나와 애엄마는 트럭 뒤로 가서 아까 보았던 발바리를 다시 보았다. 까만 눈이 너무 슬퍼보였다. 게다가 큰개들 사이에 가까스로 끼어 있는 터라 숨까지 몰아쉬고 있었다. 아, 우리가 손을 뻗지 않는다면 그 불쌍한 생명은 어쩌란 말인가. 큰개들까지 구하지 못하는 내가 한스럽지만 강아지까지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다시 운전사한테 갔다.
“그 강아지, 얼마면 주시겠어요? 불쌍해서 우리가 길러야겠어요.”
“3만 5천원 주세요.”
“3만원만 합시다.”
“그러지요, 뭐. 고깃값보단 싸지만.”
내가 운전사에게 돈을 건네자 그는 구리철망을 열어 간신히 발바리를 꺼내 내게 주었다.
품에 안으니 녀석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내 얼굴과 애엄마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우리는 이 녀석의 이름을 도쉰이라고 지었다.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에서 쉰을 따 도쉰이라고 한 것이다. 물론 발음이 어려워 나중에는 도신이라고 바꾸었지만 이 아이를 입양한 사연은 이러하다.
![](http://i.blog.empas.com/bioclock/31223493_200x147.jpg)
- 열다섯 살 나던 2004년에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찍은 지 1년 뒤 심장판막증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털이 많은데 여름이라 짧게 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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