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박사장이 더 좋아
2007/07/29 (일) 15:44
우리 도신이는 우리집 개중 가장 덩치가 작다. 가냘프게 생긴 도란이보다 더 작다. 몸무게는 5킬로그램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권력 서열을 따지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집에서 대장은 잉글리쉬 코커 스파니엘 ‘도롱’이고, 2등은 믹스견 ‘희동’이다. 3등이 바로 도신이다. 도롱이 말고도 식구가 많은데, 사람 잘 무는 ‘도반’이도 도신이 한테는 어림도 없다. 한번 화를 냈다 하면 어찌나 앙칼지게 대드는지 남의 집 큰 개들도 도망갈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도신이를 가리켜 깡이 좋다고 한다. 한 줌도 안되는 것이 맹렬하게 싸우는 걸 보고들 하는 말이다.
도신이의 이런 성격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이웃에 있다. 주말에만 내려오는 분인데, 우린 흔히 박 사장이라고 부르는데, 도신이도 그렇게 알고 있다. 박 사장이 오는 날이면 도신이하고 다래(얘도 설명이 필요한데, 도신이 얘기부터 하고) 둘이서 그 집 대문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차 소리를 알아듣는 모양이다.
그러면 박 사장은 그럴 줄 미리 알고 도신이 먹을거리를 일부러 사온다. 오징어나 과자, 육포 같은 것들이다. 박 사장은 깡이 자신을 닮은 것같다면서 도신이 머리를 쓰다듬고 더러 안아주기도 한다. 옆에서 멋쩍게 서 있는 다래도 같이 얻어먹는다. 다래는 특별히 박 사장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주말마다 간식을 주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기억을 하는 모양이다. 먹을 거 챙겨 먹으면 얘는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다른 아이들은 기분이 나면 가보고, 아니면 만다. 먹성 좋은 도리도 굳이 박 사장한테 뭘 얻어먹으려 하지는 않는다. 유독 도신이하고 다래만 그렇게 붙는 것이다.
문제는 도신이다. 먹을 거 다 얻어먹고도 얘는 집으로 오지 않는다. 도신이가 없어 찾으러 가보면 그 집 현관 앞에 쪼그려 잔다. 그러기를 박 사장이 돌아갈 때까지 그러고 있는다. 박 사장이 차를 타고 떠나야만 그제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게 버릇이 되어 도신이는 수년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박 사장의 마음은 도신이보다는 다래한테 가는 모양이라서 도신이 몰래 다래를 방으로 들여놓는 적이 있다. 다래는 대화가 좀 되는 개라서 심심풀이 상대로 삼기에는 그만이다. 오너라, 가너라, 뒤집어라, 잦혀라, 이런 것 정도는 다 말로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혼자 와서 나하고 한두 시간 노는 것말고는 내내 혼자 있어야 하는 그이는 다래하고 대화를 하고, 다래하고 밥 먹고 잠을 잔다. 물론 도신이 몰래다. 도신이는 그런 줄도 모르고 문밖을 지킨다. 도신이는 지능이 다래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웬만큼 속여도 잘 모른다. 도신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다래 머리가 워낙 뛰어나다보니 그렇다.
이러다 보니 난 박 사장이 온다고 연락이 오면 다래는 미리 목욕을 시켜놓는다. 도신이는 그저 박 사장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기 때문에 단장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어쩌다 박 사장이 방에 들여주지 않는 날이면 다래는 미련 접고 집으로 돌아와 잔다는 것이다. 사랑은 일방통행인가 보다. 도신이는 박 사장을 좋아하고, 박 사장은 다래를 좋아하고, 다래는 제 엄마 도리가 있는 우리집을 좋아하니 말이다.
![](http://i.blog.empas.com/bioclock/31425110_200x149.jpg)
- 뒤에 있는 금발이 도리, 앞의 왼쪽이 도리 딸 '다래', 오른쪽 털깎은 애가 도신이다.
2002년 6월 사진이다. 사진 속의 도신이, 도리는 이미 故犬이다.
(이 글을 쓴 뒤인 2008년 4월, 사진 속의 다래마저 하늘로 가 이 사진은 공동 영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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