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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바니 도란 도조 도쉰 다래

엄마 찾아 천 미터

엄마 찾아 천 미터

오랫동안 개를 기르다보니 자견을 분양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더러 리콜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세 마리 중 두 마리(다래, 바니)가 리콜된 아이들이다.
1994년 도리와 희동이 사이에서 태어난 머루와 다래 남매를 아는 작가에게 분양했다. 5월경에 태어난 아이들인데, 이 작가네는 우리집에서 직선거리로 천 미터쯤 되는데, 야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그 집까지 걸어가자면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

남매를 분양한 뒤 애비인 희동이는 제놈이 애비인 줄도 모르기 때문에 무심했지만, 제 젖 먹여가며 애지중지 기른 엄마 도리는 달랐다.
내가 이따금 그 집에 가 바둑도 두고 차도 마시기 때문에 그때마다 몇몇 아이들이 따라다니곤 했는데, 그러면서 도리가 길을 알아두었다.(그 집에 갈 때 따라간 아이들 중 참을성이 없는 도롱이와 도반이는 십 분도 안돼 산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이십분쯤 버티던 희동이와 도리도 가버린다. 하지만 도신이는 내가 한 시간을 머물든, 두 시간을 머물든 현관 앞에서 기다린다. 늦게야 주인이 뭔지 그 맛을 알아서 그런가보다.)
혼자 살던 이 작가가 외로움을 달래볼까 하여 이 남매를 데려다 기르는데, 그때부터 도리가 자식들을 보러 산길로 하여 그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강아지 시절에는 이 남매가 집 근처만 맴돌더니 이윽고 석 달이 지나면서부터 제 엄마를 따라 우리집으로 놀러오곤 했다. 이 작가가 어디 외출이라도 하면 남매 둘이서 오기도 하고, 거기까지 찾아간 제 엄마 도리를 따라오기도 했다.

그때 함께 살던 장모님(前)이 제 주인한테 정들어야지 자꾸 오면 못쓴다고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은 적도 많다. 그러면 이놈들은 대문밖에 쪼그려 앉아 낑낑거리고, 어미인 도리는 안에서 소리를 질러댄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이 작가에게도 명절이 있고, 휴가가 있고, 데이트가 있는 바에야 늘 집을 지킬 수만은 없어 며칠씩 우리집에 남매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남매는 우리집은 마치 친정처럼 생각하고, 저희 집은 시집처럼 생각하는지 하루에도 서너 번씩 다녀가곤 했다.

이 남매는 둘 다 머리가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사내인 머루의 머리가 기가 막혔다. 거기다 애비인 희동이를 닮아 그런지 의리도 있고 신사다운 면도 있었다. 남하고는 절대 싸우지 않는데, 누가 제 동생(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알아서 동생이라고 정한 게 아니고 덩치로 정했다.)인 다래를 건드리려고 하면 사나운 소리를 내며 앞을 막아서곤 했다.
이 남매가 엄마집에 다녀가는 걸 창문으로 내다보면 참으로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남매 중 계집애인 다래가 이 작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의 ‘사람 애인’이 질투를 할 정도였다. 이 작가 역시 다래를 좋아하여 어딜 가면 꼭 조수석 맨바닥에 앉혀 데리고 다녔다. 사내인 머루는 이때 덩치가 너무 커져서 차에 태울 수가 없어 이놈은 늘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다섯 살 나던 1998년, 이 작가는 애인하고 살기 위해 용인을 떠났다. 서울에 구한 집이 이 남매를 기를 만한 형편이 안되어 어쩌는 수없이 우리가 맡았다. 이놈들이 오고 보니 우리집은 도롱이, 희동이, 도란이, 도조, 도반이, 도신이까지 하여 여덟 마리로 늘게 되었다.(이때 ‘말하는 개’ 심바는 가출한 뒤였다.)
대가족이 되었다. 특히 일가인 도리, 머루, 다래 셋은 늘 몰려 다녔다. 애비인 희동이는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덩치가 커진 머루가 맞장뜨자고 덤빌 때가 가끔 있었다. 하지만 머루도 워낙 착하고 애비인 희동이도 순한 애라서 자주 싸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가운데 머루가 문제였다. 이 녀석은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늘 집을 나가 동네를 배회하다 잡혀오곤 했다. 이 녀석을 찾으러 온 동네, 심지어 이웃동네까지 훑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먼 동네서 발견해 데리고 오면서 말로 야단치면 녀석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미안하단 표정으로 날 따라오곤 했다. 우리 애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목끈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저 몇 발 떨어져 뚜벅뚜벅 따라오는 것이다.

수컷은 늘 잠재적인 불안이 있는데, 이 녀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집에서 가장 먼저 간 도담이도 실은 발정난 암캐 찾아다니다가 그렇게 됐다. 말하는 개 심바 역시 발정난 개를 찾아 어디론가 갔다가 못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머루 이놈도 간덩이가 부었는지 조금씩 더 먼 동네까지 원정을 다니고, 그러다 급기야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이놈은 덩치가 크고, 누가 봐도 탐나는 개이기 때문에 개장수 눈에 띄면 위험하다고 조심했는데, 저희들이 알아서 대문 열고 드나드는 걸 미처 막지 못한 것이다.
머루를 찾으려고 반경 10킬로미터 이내는 다 찾아다녔지만 끝내 실패했다. 발정난 암캐를 찾아다니는 버릇으로 치면 우리 희동이도 대단했지만, 이놈은 귀소본능이 워낙 뛰어나 밤사이에는 애인 집에서 동침을 하더라도 새벽이면 꼭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보인 뒤 사료까지 먹고 다시 나가곤 해서 무사했고, 겁 많은 도롱이는 다른 애들이 갈 때 따라갔다가 볼 일만 얼른 보고 돌아와서 역시 무사했다. 도조도 수컷이지만 이놈은 집안 암컷만 다룰 줄 알지 남의 집 암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단 하루도 가출한 적이 없다. 1부에 나온 도스란 녀석도 암컷 찾아다니다가 손을 탄 것이다.

이때 잃어버린 머루가 살아 있으면 지금 다래하고 동갑이니 열네 살이다. 녀석은 하도 머리가 좋아 훈련소에 보낼까 생각해보기도 했었는데 다 틀렸다. 그 녀석을 보면 사람이 잘못하여 개로 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안타깝지만 녀석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사정 모르는 도리와 다래 모녀는 머루를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 다래. 왼쪽은 털깎은 모습, 오른쪽은 춥지 말라고 털을 기른 모습.
머루는 동영상은 있는데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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