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발표한 대하소설 <천년영웅 칭기즈칸>을 쓰면서 나는 배운 바가 많다. 그때 유념하여 들여다본 게 안다와 너커르라는 친구였다. 우리말로 '친구'라고 번역하기는 하는데, 뜻은 굉장히 다르다.
유목민족은 정착민족이 아니라 이동민족이다. 이들은 철따라, 바람따라, 물따라 수십 킬로미터, 수백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살아간다.
정착민족인 농경민족은 혈족, 씨족 중심으로 한 자리에 정착하여 세거집단을 구성한다. 그래서 서열,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유교문화가 깊이 뿌리내릴 수가 있다.
그런데 유목민족에게는 혈족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있다. 수십~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가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웃이나 친구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친족에는 부모형제가 있을 뿐 또래가 그리 많지 않다. 유목민들은 빠른 기동성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때 또래들과 힘을 모아 부족을 지키고, 적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의형제라는 뜻의 <안다>를 매우 중시한다. 안다를 한번 맺으면 평생 가는데, 실제 형제와 거의 같다.
그런데 <안다>보다 더 끈끈한 개념이 있다. 한자로 피로 맺은 친구(血盟友) 정도다. 너커르로 불리는데, 한번 너커르를 맺으면 역시 죽을 때까지 서로 지키고 도와주고 이끌어준다. 칭기즈칸에게도 이런 너커르가 있었는데, 이들은 그가 세계정복자가 된 뒤에도 친위대로 존재했다.
우리나라는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시대, 정보화시대로 들어왔는데 유목민족과 같은 안다, 너커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고향이고, 같은 학교 출신이면 다가가 손을 잡는 커넥션 문화가 조선시대부터 발달했다. 서로 목숨을 지켜주는 관계가 아니라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다. 그래서 언제 배신할지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친일파시대를 거치고 군부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회는 주인과 종으로 단순하게 개편되었다. 오늘날 친박, 비박이라거나 친문, 비문이라는 말이 바로 그러한 우리 사회를 비쳐주는 거울 언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그럴수록 돈밖에 믿을 게 없다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기억나는 그 친구가 사업상, 이권상, 이익상 필요해서 만나는 사이인가 다시 생각해보자.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무엇을 대신해도 기꺼이 할 수 있을까?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예, 갖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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