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9 (목) 08:47
우리 토마토는 모두 열 그루(원래 채소니까 포기라고 해야 하는데 우람한 자태를 보면 그루라고 해줘야 할 것같다)다. 지난 5월초에 심었으니 5개월 정도 살고 있다.
열매는 6월말부터 열리기 시작했으니 지금까지 4개월 정도 열리고 있다.
적어도 7월부터는 매일같이 토마토 주스를 갈아마실 수 있었다. 데워먹으면 항산화효과가 크다고 해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거나 냄비에 끓여먹기도 한다.
오늘 10월 9일 현재 열려 있는 토마토가 스무 개 정도 되니, 서리가 내리는 그날까지는 계속 따먹을 수 있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토마토를 위해 쏟은 정성에 비해 토마토가 내게 주는 것이 너무 많아 어제 물을 주다가 문득 고맙다고 말했다.
처음 모종을 낼 때 거름을 넉넉히 내고, 그뒤 뜨거운 여름날이면 물을 주는 게 고작이었다. 곁가지를 잘라주는 건 토마토를 더 따먹으려는 내 욕심으로 그런 거지 토마토를 도운 건 아니다.
올해는 내게도 일이 많아 원래 8월말쯤에 뿌리 근처를 조금 파고 거름을 더 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도 초기에 워낙 거름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씩씩하게 별 불만없이 잘 자라고 있어 더 대견해 보인다. 지난 9월에 지쳐 떨어진 고추와 가지에 비하면 참 장하다. 고추와 가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지난 달에 폐업을 하고 슬금슬금 올해 삶을 정리하고 있다.
토마토 열 그루, 우리 가족 두 명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 봉사자요, 희생자다. 밤 기온이 차 언제 서리가 내릴지 이 산간마을에서는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넉넉한 가을햇살 받으며 열심히 버텨주길 바란다. 원래 토마토는 뿌리째 옮겨 방안에 두면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걸 알기는 알지만 그렇게 할 여력이 없으니 서리 내리는 그날 숙살에 무너지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씨앗을 남기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것도 없다. 내년에 내가 같은 토마토 모종을 고맙게 사들이면, 너희 유전자는 나날이 번창할 테니까.
- 고맙다, 토마토. 텃밭에서 자라는 모든 친구들이 안고마운 게 하나도 없지만 올해는 특히 네 덕을 많이 보았다. 네 줄기가 비록 말라가더라도 네 결실은 나와 내 딸한테 옮겨왔으니 이미 한 몸이 된 것 아니겠어? 네 덕 생각하며 더 열심히 살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늘 고마웠지만 올핸 정말 고마웠어. 날씨가 좋기도 했지만 병 하나 없이 꿋꿋이 토마토를 생산해 주었잖아? 우주로 돌아가거든 더 좋은 일에 나서렴. 우선 우리 텃밭 거름이 되었다가 내년에 또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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