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 | 2007/05/11 (금) 21:21
진실만이 가장 빠른 길이다
어제, 저는 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올해 72세 된 인생 상담가이신 이 분은 제가 10년째 찾아뵙는 '밝은 눈'이십니다. 이 분은 독특한 방법으로 상담을 해 주시는데, 어제는 이 분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할머니는 아들 둘, 딸 둘을 두셨는데, 그중 큰딸이 상당히 예민하고 고집스런 완벽주의자였대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자신에게 잘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형이라는 뜻이지요.
최 할머니는 이 딸이 걱정되어 아마도 운명을 감정하셨나 봐요. 그래서 이 딸이 언젠가는 <고독>을 감당하지 못해 자결을 하리라고 예측했대요. 그래서 딸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고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을 했대요.
이 딸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느냐.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지요. 남편의 박사 학위 논문까지 대신 써 주었답니다. 애들은 모두 대학까지 잘 보내 놓았지요.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토록 좋아하던 문학적 열정을 이루지 못해 항상 열등감에서 헤어나질 못했지요.
저도 몇 년 전에 이 딸을 만나본 적이 있어요. 역시 자신감이 너무 없더라구요. 작품을 보자고 해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지 단 한 줄도 보여주지를 않더라구요. 이 딸은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자신의 글을 공개한 적이 없대요. 남편한테는 보여 주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이 남편은 평생 소설 한 편 읽지 않는 사막의 모래같은 사람이랍니다. 그러니 칭찬을 들을 일이 없었지요.
이 딸은 늘 자신을 학대하고 "못난 년, 못난 년." 이렇게 주문을 외우며 살았대요.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에게 내려와서는 "엄마, 나 엄마한테 영원히 돌아오고 싶어요." 이러더래요.
"이혼하겠다는 거냐?"
그래도 웃기만 하구요. 할머니는 그 말이 곧 자결할 거라는 뜻인 줄 어렴풋이 알아차렸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더래요. 그 딸의 남편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요 얘기는 할 수 없지만 하여튼 함께 온천 목욕이라도 며칠 다녀올 여유가 없는 빡빡한 관계였나 봐요.
할머니는 마치 정해진 시간을 기다리듯 딸을 돌려보내고 소식을 기다렸대요.
이튿날, 오후 1시 무렵, 전화가 왔지요.
딸이 자결했다구요.
할머니는 이 날 참 많이 생각했대요.
그 딸이 언젠가는 자결하고 말리라는 어머니로서의 예감 때문에 십여년간 속앓이를 해 왔는데, 어쩐 일인지 딸이 마침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속이 편해지더래요.
어쨌든 그 딸은 지금 영원히 어머니에게 돌아와 마음편하게 쉬고 있겠지요.
자결도 삶의 방식일까요?
할머니는 저한테도 그 딸이 가졌던 자결수가 있다며 조심하라고 하십디다. 그래서 아픈 이야기를 해 주는 거라구요.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 자신도 저를 미더워하지 않고, 도대체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니까요.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분이 꽤 있는 것같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적어 보았지요. 그딸이 어머니 가슴에 말칼로 새겨준 말씀이 한 줄 있는데 읽어 보세요. 할머니는 이 말을 돌에 새겨 마당에 세울 참이라네요.
- 진실만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 말이 결론이 되었다면, 그 딸은 얼마나 많은 거짓과 투쟁했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도 이 말을 일단 올해 우리집의 가훈으로 삼았습니다.
- 1995
- 무질서해보이는 번갯불도 실은 정확한 물리법칙에 따라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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