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 | 2007/05/19 (토) 20:10
고향 뺏기는 놈이 무엇인들 제대로 지키랴
요즈음 중국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육자회담? 북한 난민?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들 난리다. 얼마 전에는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더니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정통성마저 앗아가려 하고 있다. 아니, 어느 정도 빼앗긴 일면이 있고, 그런데도 우리 정부나 역사학자들은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언젠가는 백제사마저 일본이 가져갈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펴는 논리는 이렇다.
“고구려는 당나라에 멸망했다. 신라는 고구려와 민족이 다르고, 또한 고구려를 통합한 적이 없다. 신라는 백제 하나만 멸망시켜 차지했을 뿐이다.
당나라에 멸망한 고구려의 지배층이 전원 중국으로 흡수되었으며, 나중에 그 땅에서 살던 유민들이 세운 발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는 신라나 고려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또 그 자리에서 일어난 금나라하고 청나라가 있는데, 이 역시 중국 역사다. 대체 한국 사람들이 왜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가르치는지 이해가 안간다.“
대충 이렇다. 그러고 보면 전혀 억지소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중국측 논리에 우리 실증 사학자들은 말문이 막히고 만다.
얘기 방향을 조금 돌려서 이런 걸 생각해보자.
다른 건 그만두고 내 분야인 문학만 놓고 보자. 한국인이 노벨문학상 받았다는 얘길 들어보신 분은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다른 나라에 번역되어 잘 팔린다는 말도 못들어 봤을 것이다. 외국 독자라고는 한 명도 거느리지 못한 게 우리나라 작가 시인들의 현주소다. 이따금 몇몇 작가들 작품을 국가에서 돈을 대 불어로도 번역하고, 영어로도 번역해서 현지에서 출판하는 사례가 있지만, 그건 마치 지방 문단에서 억지로 문집을 내고, 문학지망생들이 자비 출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 의식 속에서는 패자의 그늘만 잔뜩 드리워 있고, 승자의 영광은 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명(明)과 청(淸)을 사대(事大)한 것이며 일본군에게 15일만에 한양이 함락된 것이며, 일본 낭인들이 왕후를 난자해 죽인 것하며, 강점 35년, 이런 것들을 주로 기억한다. 그러니 훌륭한 소재를 찾아내기 어렵게 돼 있다. 역사 문화 공간이 좁고 어두컴컴하다 보니 무슨 거창한 세계며 이상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같은 조선시대를 보더라도 인류 최초로 철학으로 시험치고 철학으로 관리를 선발하여 철학 정치를 편 나라로 자랑할 수 있잖은가.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삼심제 사법구조, 기록문화의 세계적인 보물 왕조실록 등 따지자면 우리의 영광은 부지기수다.
그럼 이런 시각으로 고구려를 돌아보자.
고구려는 누구한테 망했느냐, 중국의 한족에게 망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웃해 있던 선비족에게 망했다. 선비족이 누구냐면 고구려의 이웃사촌이요, 이들이 북위, 수나라, 당나라를 세웠다.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에게 전쟁으로 진 것이 아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7년 가뭄으로 농사가 전혀 안되어 군사들이 많이 흩어지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민심이 이반되면서 지휘부 내분까지 생겼다. 그래서 수나라, 당나라에 맞서 당당히 싸워 이기던 고구려가 어느 날 갑자기 손을 들었다. 이때 백제를 병합한 신라가 당나라를 상대로 싸워 고구려 영토 중 한반도 쪽 강역을 수복했다.
그뒤 고구려 유민들은 해동성국 발해를 일으켰다. 비록 고구려 지배계층은 당나라에 잡혀가 중국에 흡수되었다지만, 고구려 백성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가 발해로 독립한 것이다. 그런데 이 발해는 나중에 대규모 화산이 폭발하면서 수도가 초토화된다. 그런 걸 거란이 거저 가져갔다. 거란 역시 옛날 고구려의 피지배민족이었다.
발해가 무너진 뒤 그 자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금나라가 일어났다. 그 금나라가 몽골군에게 무너진 뒤 또 얼마 있다가 그 자리에서 청나라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우리가 금나라나 청나라 등을 우리 역사로 편입하지 않는 한 고구려사를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돼 있단 말이다. 따라서 금사(金史)와 청사(淸史)를 우리 국사로 편입하면 얘기는 매우 간단해진다. 지금 중국의 동북 3성에는 굉장히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살고 있다. 만주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민족 정체성을 잃은 채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단군신화를 공유하는 고구려 유민들이요, 고조선의 민족 구성원이었다. 대체 우리가 왜 그들을 버려야 하는지. 왜 그들을 오랑캐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마치 북한 사람들을 가리켜 오랑캐라고 부르는 것하고 전혀 다르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이 밉지만, 김일성이 밉지만 북한사(史)를 우리 국사의 한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북한에서 지난 50여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기술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우리 역사 공간이 되는 거지 그걸 버리면 북한이란 땅도 버리게 된다.
안그러면 대마도 꼴이 난다. 대마도는 150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국왕의 영이 미치는 곳이었다. 대마도주는 대마도주병마사가 통치하는 조선국 경상도에 소속된 섬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戰國)을 통일하면서 그네들이 점령해 버렸다. 나중에는 조선의 속국을 자처하던 유구국(오키나와)도 일본에 넘어가 버렸다. 유구나 대마도나 일본땅이 된 지 불과 4백여 년밖에 안됐단 말이다.
이제 얘기를 우리들의 고향 충청도로 돌려보자.
신라의 후예들이 사는 땅은 경상도라고들 한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럼 백제의 후예가 사는 땅은 어느 지역인가?
아마도 초중고생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상당수가 전라도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계백장군이 황산벌에서 전투를 하는데, 화랑 관창은 경상도말을 쓰고, 계백장군은 전라도 말을 쓴단다. “오매, 징한 놈이 또 쳐들어와부렀당께.” 이렇게 말한단 말이다. 계백장군은 절대로 그렇게 발음하지 않았다.
충청도는 점차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충청도는 이제 경기도나 서울처럼 돼간다.
내가 사는 용인에서 그런 일이 급속도로 일어났다. 아무도 용인시민이 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수지 살면 수지 사람, 죽전 살면 죽전 사람, 신갈 살면 신갈 사람이지 용인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이인제 씨가, 경기도지사를 하면 지사 중에서는 제일 힘이 센 지사였으니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경기 지역에서 몰표가 나올 줄 알았을 것이다. 아니다. 경기도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표 안나오고, 덕분에 돌아다보지 않은 진짜 고향 충청도에서도(이인제 씨는 논산 사람이다.) 당연히 표 안나온다. 경기도는 지역성이 거의 없는 곳이다. 용인 사람은 안양이나 구리에서 누가 국회의원을 하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 평택 사람은 군포에서, 의정부에서 누가 국회의원을 하는지 정말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 충청도가 경기도처럼 될 수야 없다. 고향은 지킬 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충청도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자랑스런 백제 역사를 가르치고, 제발이지 의자왕이 삼천궁녀 데리고 노느라고 타락해 망했다는 거짓말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영규와 중봉이 결사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물리쳐 임진왜란을 반전시킨 땅이 충청도라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헤아리자만 너무나 많다.
백제의 강역은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기도, 나아가 일본까지 미친다. 이 큰 강역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맨날 캐스팅보트나 쓰자고 자신을 깎아내린단 말인가. 한번도 백제의 수도를 가져보지 못한 전라도에서 백제의 적자 행세를 하는데, 왜 충청도는 옛 수도를 두 군데나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쭈그러드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는 충청도의 정치를 이끌어온 어른들이 반성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결코 패거리를 지으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칠 때 정말 큰 힘이 난다. 우린 굳이 거짓말하고 과장할 필요가 없다. 사실만 가지고도 충청도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의 실효 영토인 한반도 남부.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른바 '충청도 맹주'를 자처해오던 김종필 씨가 노욕을 부리는 바람에 충청도민이 참말로 핫바지처럼 돼버려, 이때 하도 화가 나서 동창회보에 실었던 글 같다. 김종필 씨는 고등학교로 치면 내게는 대선배가 되지만, 난 결코 선후배로 무슨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에구, 고향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왜 충청도 얘기만 나오면 피가 끓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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