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 | 2007/05/22 (화) 11:53
딸 때문에 생기는 이 욕심
나는 퍽이나 늦게 둔 딸아이가 하나 있다. 이녀석 나이가 올해로 네 살, 만으로는 겨우 세 살이다. 작년부터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제법 사사건건 물고늘어져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아 아예 유치원에 넣었다. 나이가 안되지만 강제로 밀어넣었다.
아이를 영재로 기르기 위해서 넣은 게 아니라 아내는 회사일 때문에 바쁘고, 나는 책을 읽고 써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이를 유치원에 맡겼다. 아이를 봐주는 장모님이 한집에 사시지만 하루 종일 아이하고 부대끼다 보면 노인의 기력으로 감당하질 못해서 한나절을 눈 딱 감고 유치원으로 쫓아버린 것이다.
이 녀석이 젖먹이일 때에는 몰랐던 문제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왔다. 어쨌든 저도 생명이라고 낄 곳 안낄 곳 가리지 않고, 나오는 대로 그저 떠들어대는데 그것도 자주 듣다 보니 새록새록 정이 든다. 부모라서 그나마 정을 느낀다고 하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똑똑한 소리를 해서도 아니고 예쁘고 귀여운 짓만 해서도 아니다. 시건방지고 못되고 떼나 쓰는 그런 짓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작은 입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또 내가 저한테 무슨 책임이 있다고, 그리고 저는 나한테 무슨 권리가 그렇게 많다고 막무가내로 대드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거 사내라, 저거 사내라, 왜 난 안사주느냐, 아빠는 나쁘다 등등 시끄럽기 짝이 없다.
“우유!” 하고 한 마디 하면 온 집안이 비상이 걸려 우유병을 찾는다, 시원한 우유를 따라붓는다 하여 허둥댄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까짓거 녀석 어디 아프다 하면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눈비비며 병원으로 달려가도 좋다. 내 귀를 잡고 늘어지든 입을 가로 째든 거기까지는 좋다.
내가 이 아이 때문에 가장 불편한 것은 전에 없이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난 이 아이가 생기기 전에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걸 다 쓸 데가 없다 하여 아내하고 둘이서 일찌감치 여기저기 다 처분해 버렸다. 그렇다고 공짜로 마구 뿌린 것은 아니고 멋대로 쓰다보니 금세 다 없어졌다는 뜻이다. 한국 추상 미술을 한번 해본답시고 얼마, 프로그램 개발한다고 얼마, 전자도서관 한다고 얼마, 이렇게 해보고 싶은 일에 마구 돈을 쓰다보니 시장가는 아주머니 콩나물값 걱정하는 신세까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사는 데는 지금도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일 욕심만 부리지 않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예금하며 골프치며 여행다닐 수 있다. 지금도 아내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전자도서관에는 한달에 몇 천씩 어디로 다 나가는 돈인지 모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그래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런 일쯤에는 완전히 초월해 있었다.
- 때가 되어 돈이 떨어지면 잘 할 수 있는 다른 사람한테 주지 뭐. 그때까지만 열심히 해서 전자도서관이라는 거 우리가 처음 만들었다는 그 기록만 세우면 돼. 일하는 재미, 그건 얻고 있잖아?(말이 씨가 되는지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랬다. 탁탁 털고 일어나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도, 우리 부부는 아직 새파랗게 젊으니 어디 월세방부터 시작해도 몇 년 내에 집 사고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변화의 진앙지는 역시 우리 아이다. 이 녀석이 제법 사람 구실을 하면서부터는 이상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우리 두 사람 고생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얘는 안돼. 보험 들어둡시다.
그래서 교육 보험인지 뭔지 하는 것을 두 구좌나 들었다. 그것만 제대로 보험료를 납부하면 이 녀석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되는지 아내는 우리 부부 앞으로 생명 보험 비슷한 것을 무더기로 들었다. 부모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지 녀석을 키워내겠지만 만일 무슨 일로 그렇지 못하면 누가 맨입으로 아이를 키워주겠느냐, 그건 내 부모님, 내 형제라도 안그럴 거다. 요지는 그랬다. 그래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양육비 정도는 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들어둔 보험들이다.
언젠가 아내가 그동안 든 보험을 이름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고 줄줄이 적어서 주는데, 참 우습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를 두면 사람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인가 보다. 전부터 선배들이 자주 하던 말이 바로 그것 아니던가. 짜식아, 잘난 체하지 말고 너도 장가가고 애 낳아봐 하고 나무라던 그 말.
더우기 우리집에는 내가 온 정성을 다 해서 기르는 강아지가 여덟 마리나 있다. 딸 때문에 보험을 든 뒤로는 강아지도 걱정이 되어 이제는 그 몫까지 떼어놓았다. 강아지 기르는 데 드는 돈은 기껏 한 달에 사료 두 포 정도, 돈으로는 1만원 쯤이다.(글 쓸 당시 기준) 나머지가 바로 정성인데, 내가 아니고는 아무도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에는 돈이 필요할 테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해놓고, 만일의 경우 무슨 일이 있으면 그 강아지들을 잘 돌봐 줄 사람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이게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다. 정말 여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자식을 뛰어넘는다는 게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것인가 보다.
이 글은 광복 50주년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문든 생각이 나 쓴 것이다. 처자를 버리고 이역 만리로 떠났던 그 독립운동가들은 오죽이나 독한 마음을 먹었었을까 하고. 처자를 버린다는 게 얼마나 가슴저리는 일인가 나를 빗대 반성하면서.
- 199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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