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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달리는 말이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며칠 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당선된 설정 스님이 인삿말에서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글 검색을 하니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2014년에 이 말을 인용하고, 같은 해에 천안시장이 신년사에 쓰고, 경북일보 사장, 삼성 황창규 사장,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 노래하는 아이들 수퍼주니어, 바로투자증권 사장, 강화군수, 관세청장 슬로건, 2013년 제천시장 슬로건 등 숱한 유명인들이 무심코 이런 말을 쓰고 있다.


따져보자.

말굽이 멈추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는가?

말굽은 저절로 움직이는 시계추가 아니다. 말이 달릴 때 따라 움직일 뿐이다.

즉 말이 달리는 거지 굽이 달리는 건 아니다. 말이 멈추면 굽도 멈춘다. 자동차가 달리지 타이어가 달리지는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에 두 가지 오류가 있다.


1. '달리는 말'이 아니고 '적과 싸우는 사람'이 주어다. 싸우는 주체는 사람이지 말도 아니고 말굽도 아니다.

2. 말굽은 멈추는 게 아닌 그냥 명사다. 말굽은 말의 발톱이다. 실제로는 발톱보다는 뜻이 커서 발바닥 정도 된다. 그러니 자동차가 멈춘다고 하는 대신 타이어가 멈춘다고 한 것처럼 어색하다. 

따라서 '적과 싸우는 사람'이 주어가 되면 '멈춰서는 안된다'는 뜻이 된다. '말이 서 있을 새가 없다.' '말발굽이 보이지 않을만큼 빨리 달린다' 등 여러 표현이 가능하다.


한문 어원은 "마부정제(馬不停蹄)"인데 원나라 시절의 경극 작가인 왕보보(王實甫 ; 왕시푸)가 지은 ‘여춘당(麗春堂)’ 제2막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이러하다.

- 적타급난척수, 타적타마부정제(的他急難措手,打的他馬不停蹄)

(적을 칠 때는 적이 미처 손 쓸 틈이 없이 재빠르고, 일단 치기 시작하면 쉬지 말고 끝까지 적을 몰아붙여야 한다.)


원문에 보면 '정체(停蹄)'는 '발굽이 보이지 않을만큼', '발굽이 멈출 새 없이' '쉬임없이', '끊임없이' 등의 뜻이다. 그런데 한문 한자라면 좀 안다는 사람들조차 우리말을 잘 몰라 이따위 번역을 해놓는다.

정리하여 바른 번역을 내놓는다. 


적을 칠 때는 적이 미처 손 쓸 틈이 없이 재빠르고, 

일단 치면 쉬지 말고 끝까지 적을 몰아붙여야 한다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1000가지>는 우리말로 쓰이는 한자어를 해부하여 바른 뜻을 적은 사전이다. 

여기 있는 4권 말고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책이있는마을)> 등 6권이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