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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가던 길 멈추고 2018

바이로차나, 당신이 지으신 이 세상에 불만 있습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가는 걸 매우 싫어했다. 일요일이 끝나는 게 싫고 방학이 끝나는 게 싫었다. 학교갈 걱정으로 아침이 싫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내내 학교 가는 게 짜증이 나고, 대학원 다닐 때마저 대학교수를 하느니 차라리 굶어죽지 이 더러운 무지의 소굴에서 아까운 인생 버리기 싫다고 아우성쳤다. 군대 가기도 너무너무너무 싫었다.


한번도 교실이 편안한 적이 없었다. 어떤 선생이나 교수의 강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왜 그런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지 모욕이 느껴졌다.

왜 내가 그따위 허섭한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그냥 집에서 책만 골라보면 되는데, 책이라면 몇 장 읽다가 집어던져도 되고 텔레비전이라면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인데 나는 수업시간이 고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말도 안되는 개똥철학을 들으러 왜 그 먼 길을 걸어 학교에 가야만 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어떤 선생은 수업이 시작되면 제 공책 더듬더듬 봐가며 백묵으로 칠판에 하얗게 써놓고는 그거나 베끼라고 한 놈도 있었다. 저런 쓰레기한테서 내가 뭘 배우나, 늘 불만이었다. 그런 주제에 툭하면 때리고 욕하고 눈깔을 부라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내 따귀를 대여섯 대나 때린 선생놈이 있었는데, 이유도 마땅찮은데 그렇게 폭력을 쓴 놈이 있어 지금도 진저리가 나는데, 그런 쓰레기가 사는 이 세상이 정말 싫었다.

그런 내게 뭐 중학교 동창회에 나와라,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와라, 이러면 정말 재수없다. 난 스승의 날에도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책으로 지혜를 가르쳐준 스승들이 더 고맙고, 반야를 가르쳐준 고타마 싯다르타가 고맙다.


난 중학교 1학년 때 30여 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지쳐 환각 증세가 일어나고, 이어 부하를 이기지 못한 뇌가 환영 환청을 만들어내는 걸 비참하게 경험했다. 

그렇게 힘들여 간 학교에서 어줍잖은 지식으로 우물거리는 선생을 볼 때, 정말이지 학교 따위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책만 있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독서하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부모님의 기대, 형제 중 처음으로 중학교에 갔다는 의무감 따위 때문에 성적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아파도 어느 놈 하나 알아보는 선생이 없었다. 내 딸이 아플 때에도 눈치 채는 선생이 한놈도 없었다. 학교를 찾아가 담임교사를 만나고 교감을 만나 사정을 해도 그 년놈들은 학교가 시끄러워지지 않기만 바라는 것같았다. 지옥까지 가는 건 그렇고, 죄다 축생으로 나서 저마다 그 무지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더는 학교를 다니기가 싫어 가방을 내던지고 집에 틀어박혔다. 무식한 선생들의 헛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집에서 부모님 농사일 거들며 자연을 벗삼아 사는 게 낫다고도 생각했다. 때마침 유신교육으로 진절머리가 날 때였다. 웬 교련 수업은 그렇게 많은지 새벽부터 밤까지 군사훈련이 지겨웠다. 

새로 들어간 고등학교 내내 책만 읽으며 지냈다. 고등학생 때 장편소설을 두 권 쓸 정도로 늘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선생들 만나는 건 싫고 귀찮지만 뒷산에 사는 스님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스님의 법력도 그리 높은 건 아니지만 고등학생을 가르칠만한 수준으로는 넉넉했다. 그 스님에게서 배운 교육이 내가 학교에서 얻은 것보다 백배는 더 알찼다. 그 스님이 고타마 싯다르타를 내게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이 세상의 야만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따지고 의심하는 버릇이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스승이랍시고 늘 내 눈앞에 나타나 다가와 뭐라고 지껄였지만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고, 늘 불만족스러웠다. 저런 실력으로 무슨, 이러면서 딴 생각이나 했다. 요즘에도 혹시나 하고 방송 법문 보다가 평생 남이 보시하는 밥 처먹고 저 따위 헛소리나 하다니, 이러면서 채널을 확 돌려 사바나로 달려가고 만다. 차라리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온힘을 다해 달리는 사자나,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초식동물이 아름답다. 가끔 법문이 그리워 특정 채널을 잡아보지만, 직업이 중이라는 놈이 한다는 소리가, 나이 60, 70이 돼가는데 저렇게 밖에 공부를 안했을까 싶을만큼 횡설수설하는 걸 보면 잡아다가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다른 종교인들이 침 튀기며 떠드는 걸 가끔 보는데 사바나의 하이에나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잘못 구성되었다. 소설로 치면 문장 조악한 3류 소설쯤 된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나는 개를 기르고 화초를 기른다. 사로 먹이고, 털 깎아주고 양치질시키면서 내 존재를 확인한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 개와 화초를 돌보기 위해서다. 딸이 아플 때는 딸을 위해 살았는데 막상 다 나으니까 마음이 허전해 견딜 수가 없었다. 무식한 독자를 위해 글 쓰는 것도 짜증나고, 머리 안되는 사람들에게 바이오코드 가르치는 것도 신경질나고, 더러 무슨 강의를 해도 말귀 못알아 듣는 이런 짐승들에게 내가 왜 아까운 시간 버려가면서 이 짓하나, 자괴감에 진저리를 치곤 했다.


무소유? 내가 언제 뭘 소유하려고나 했나. 난 언제나 버리려고 노력했다.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에서 늘 달아나려고 했다. 소유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떠나려고, 벗어나려고 애썼다. 내 인생은 탈출하려는 죄수 빠삐용의 몸부림이다.

난 이곳이 임시 머무는 곳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헛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가면서 이 매트릭스 세상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래서 난 버리고 버리는 사람이다. 사람도 버리고 인연도 버리고 전화번호도 버리고 내 거처도 버린다. 가끔 책도 다 내다버린다. 한번은 4톤 트럭 불러 죄다 내버린 적이 있다. 소설가가 책 버리는 건 군인이 무기 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난 버린다. 책이 없어도 쓸 수 있어야 작가라고 믿는다.

애착 따위는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난 법정 스님이 난초를 기르다가 그것 때문에 생기는 애착이 싫다며 그 난을 누구에게 줘버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난 말 못하는 짐승이나 화초는 그렇게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무소유할 게 있고, 유소유할 게 있다. 내가 반신불수 바니를 평생 길렀지만 그래봐야 14년이었다. 사람도 죽으면 그만이듯 개의 생명은 더 짧으니 언젠가는 벗어날 시각이 있고, 그래서 바니는 기어이 알아서 떠나갔다. 바니에게 쓴 시간은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고, 치료비나 사료값이나 그 무엇도 아까울 것 하나 없다. 


난 남이 버리는 화초를 갖다가 기르기를 좋아하고, 남이 잘 못길러 기력이 없는 화초 데려다 살리는 걸 좋아한다. 그럴 뿐이다. 그래야 내 존재가 느껴지니 그 녀석들 힘으로 잠시 견딘다.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까지 보내고 나니 의지할 곳이 없다. 어려서는 눈에 안보이면 죽을 것만 같던 형들조차 장가가서 형수라는 이상한 존재들과 엮인 뒤로는 정을 떼게 되고, 동생들은 그나마 힘들 때마다 전화 목소리라도 들으면 기운이 나는 샘 같다. 조카들 웃음소리라도 들으면 축 쳐진 몸이 어디선가 기운이 솟구치는 것같다.

어머니 앞에서 신경질이라도 내고 나면 속이 후련했는데, 이제는 영영 그럴 수가 없다. 딸이 결혼한답시고 전화조차 뜸해지니 별군이 하나 끌어안고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누가 정치를 묻고, 인생을 묻고, 사업을 묻는 일이 더러 있는데 애정 갖고 얘기하다가도 상대의 탐진치를 재고나면 어서 빨리 일어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사귀던 사람 하나가 툭하면 자동차에서 내리고 싶다고 투덜거렸는데, 딱 그 짝이다. 난 이 인생에서 내리고 싶다. 세상이 너무 재미없고, 짜릿한 감동이 없다. 아무것도 재미없다. 게임도 싫고 노래도 싫다. 등산 가는 것도 싫고 모임 나가는 건 세상에서 제일 싫다. 누가 이유없이 나오라고 하면, 밥이나 먹자고 하면 가장 괴롭다. 차라리 집에서 라면 끓여먹을지언정 헛소리 들어가며 밥 먹을 생각하면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힘들 때는 나 힘들어, 이러면서 쓰러지면 무릎이라도 내줄 아내가 그리운데 내게는 그런 사람이 없다. 전화하면 바쁘다 하고, 오라면 싫다 하고, 가겠다면 귀찮다고 한다. 몸이 고단해 한 잠 깊이 자 기력 없고 배고플 때 따뜻한 밥 했으니 일어나 먹으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고, 아플 때 내 이마에 따뜻한 물수건을 얹어 줄 사람이 없다. 대신에 밥 달라고 킁킁거리는 별군이가 내 얼굴을 핥는다.

사흘간 이유없이 아프다. 내가 아픈 건 좋은데 별군이가 쓸쓸한 건 못참는다. 안아주고 얼러줘야 별군이가 잠이 들고, 내 팔을 내줘야 그걸 베고 잔다. 내가 받지 못하는 걸 별군이에게 해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고백하자면, 아내가 그렇게 안해주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해주면 나는 그게 도리어 불편했다. 안타깝게 징역형을 받은 후배를 2년간 지켜보면서, 그 제수가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면회다니는 걸 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저런 아내가 있으니 후배는 인생 참 잘 산거구나 하면서 부러워했다. 지금, 산에서 내려와 창문을 두르리는 바람이 친구이고, 먼 찻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바큇소리가 세상이 들려주는 속삭임이다.


난 본디 나 스스로 파고들지 않으면 어떤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지금도 바이오코드 연구가 아니면 그나마 세상이 재미없어 견디질 못할 것같다. 그러다 세상 마칠 때에는 이 바이오코드마저 죄다 불태워 버리고 그냥 떠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은 바이오코드를 배울만큼 탐진치를 버리지 못하고, 아마도 그 무지를 벗으려면 몇 백년은 바이오코드를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 올 때 인생 설게를 잘못한 것같다. 이런 삶을 계획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태평양 한 섬에서 태어나 어부나 농사꾼으로 살면서 무지하지만 정직하고, 욕심 많지만 반듯한 여자와 결혼하여 공부 좋아하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더 유익했을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삼매와 반야는 배워야 하므로, 그 섬이 대만이나 스리랑카 정도였으면 되리라.

하기야, 이 세상에서 지낸 일 중에서도 소소한 기쁨거리를 찾아보면 그래도 많이 있을 것이다. 채소와 화초를 기르던 일, 강아지와 닭을 기르던 일, 소설 쓸 때의 쾌감, 바이오코드 연구할 때의 쾌감, 잠 안온다는 딸을 등에 업고 달빛 희미한 밤길을 걸어 마실나가던 일... 언제 한번 날을 잡아 내 생애 기쁜 순간이 언제 있었는지 적어봐야 할 것같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쓴 것은, 날이 궂어 우울하던 차에 유튜브 창에 감동이라고 치니 이 동영상이 걸려나와서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을만큼 중요한 사람도 있구나, 이런 부러움 때문이다. 아빠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딸이 애인 찾아 떨어져나가고, 함께 살아보자 마음 냈던 아내가 막상 옆에 없고, 애틋한 마음으로 끌어안고 지낸 우리 강아지들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이제 경추장애견 하나 끌어안고 세상을 견디자니, 세상 참 힘들구나 싶다. 나 힘든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온 인류의 슬픔이 다 내 어깨로 내려앉는 것같이 무겁다. 사바나의 동물들도 저마다 다 힘들고, 미세먼지로 공기마저 무겁고, 세상 그 어느 것하나 찬란한 감동이 없는 듯하다. 전생의 인연 하나 겨우 찾아 죄를 갚으려, 업을 풀어보려 노력했는데 만난 이후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얼킨 실타래 같은 장애물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걸 보니 더 우울하다. 저러다 짐승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인연들이 보일 때마다 마음이 괴롭다.

그런 중에 이 동영상을 보니, 그래서 사람들이 이 모진 세상을 견뎌내는구나 싶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인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껏 지혜롭게 계산하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써 해결하라, 고마타 싯다르타처럼 이렇게 재미없는 말이나 늘어놓을 수는 없다.


바이로차나(이 우주를 주재하는 원리를 상징하는 붓다 중의 붓다)께서는 이 세상, 조금 더 아름답게 다듬은 다음 리셋해주시면 안되겠는가. 아프다. 새벽 한 시에 닭이 운다. 저 닭은 무엇을 저리 호소하는가.

뒷산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 먼 찻길에서 들려오는 바큇소리, 이런 거 말고 좀 더 감동적인 소리를 들려주기 바란다. 세상이 다 불쌍하고, 우리 별군이가 불쌍하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할 내 딸이 불쌍하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이 모진 공간에서 버티고 살아야 할 그 미래가 안타깝다. 나 같으면 이런 세상은 만들지 않을 텐데, 바이로차나는 보고 있으신가, 더 정성 기울이기 바란다.



- 나를 가장 강렬하게 감동시킨 두 생명. 도담이(왼쪽)와 기윤이(오른쪽)

막상 나는 누군가의 감동이 되지 못했다. 부모에게 실망스런 자식이고, 형제들에게 도움 안되는 동기이고, 아내에게 불편한 존재이고, 이웃과 친구 들에게 힘이 안되는 존재다. 별군이 이놈도 고기 자주 안주다고 불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