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 이재운 / 책이있는마을 / 304쪽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4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552쪽 / 23년 28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 / 이재운 / 노마드 / 편집중
요리사 황 아무개가 불고기 어원을 일본어 야키니쿠(焼肉 やきにく)에 갖다 대고 있어 논란이다.
오늘 경향신문을 보니 이 유사어원설에 대한 비판 기사가 떴다.
그런데 기사를 쓰는 기자도, 비판하는 학자들도 주장하는 논리가 부족하다. 기자란 사람들이 대개 제 전화번호부 속 인물만 취재원으로 삼으니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다.
1. 요리사 황씨의 주장 근거
한글학자 김윤경 씨의 경향신문 인터뷰인 것같다.
-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은 역시 세계적으로 훌륭한 글이라고 찬양’하면서 “처음에는 생소하고 듣기 어색했지만 ‘벤또’ 대신에 ‘도시락’이, ‘돔부리’ 대신에 ‘덮밥’이, ‘야키니쿠’ 대신에 ‘불고기’라는 말이 성공한 것은 얼마나 좋은 예냐”고 말한다.
이 말이 전부인데, 요리사 황씨는 이를 야키니쿠에서 온 말이라고 단정하는 듯하다.
그리고 김윤경 씨의 주장 중 '한글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글'이라고 했는데, 한글은 글이 아니다.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번역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한글은 글이 아니다. 이때문에 오류와 착각을 일으키는 사람이 너무 많다. 훈민정음에서 말하듯 '바른소리'를 적는 문자다.
위키백과를 보니 김윤경 씨는 한글학자로 나온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따지는 건 한글이 아니라 우리말 즉 한국어다. 이런 구분이 확실해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여기 나오는 김윤경 씨 주장은 일본말을 들여와 그대로 썼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말에 대한 한국어 대응을 말한 것이다. 번역했다는 말이 없다.
언어는 언제든 국경을 넘나든다. 우리말이 일본으로 들어간 것도 수없이 많고, 일본어가 우리말로 들어온 것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발음이며 문자 그대로 들어가거나 오는 경우는 있어서 해방 뒤 국어학자들은 그런 왜색 언어를 없애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지금도 구라니 기스니 숱한 일본어가 일상에서 쓰이는데, 더 시간이 필요할 것같다. 다만 일본어에도 우리말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워낙 오래된 말이 많아서 그들은 그냥 쓰고 있다.
따라서 김윤경 씨 주장을 요리사 황씨가 자신의 논리 근거로 삼았다면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황씨가 김윤경 씨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더구나 전문가들도 헷갈려 하는 조어 원칙까지 요리사가 덤벼든 건 대단히 무모하다.
2. '야키니쿠 설은 엉터리'라는 경향신문 기사 제목도 문제 있다
이 기사는 요리사 황씨 주장이 틀렸다는 목적 의식을 갖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몇몇 한글학자와 언어학자를 둘러세우는데, 이들 주장도 황당하다.
- "황씨가 한 이야기는 아주 엉터리다." 수화기 너머 국어학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국어학자가 누군지, 왜 엉터리인지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이건 주장이지 팩트가 아니다. 그저 비난일 뿐이다.
또 인터뷰에 나선 사람들도 주장의 깊이가 너무 얕다.
내가 정리한다
1. 요리사 황씨 주장에 1리가 있다.
이유는 3번에서 말한다.
오히려 여기 나오는 국어학자들의 주장이 옹색하다. 황씨 비난용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2. 그렇다고 황씨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
팩트로 보자면 불고기는 불고기이고 야키니쿠가 아니다. 야키니쿠 역시 불고기가 아니다.
그리고 갖다붙인 논리가 너무 허섭하고, 그가 모르는 국어학의 경계를 너무 많이 넘어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겼다. 지적하진 않겠다.
특히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출신으로 쇠고기 문화를 잘 모르고 자랐을 소설가 이효석의 글은 더 신뢰가 가지 않고, 그 또한 총독부 경무국에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일제시대에 일본어를 일상으로 쓴 식민지 백성이기 때문에 일본어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는 환경에서 살던 작가다. 안타깝지만 그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고 미국과 맞짱뜨던 1942년, 일본인 신분으로 죽었다.
- 요리사 황씨가 근거로 든 이효석의 글. 이 글이 발표된 1939년 당시에는 멀쩡한 우리말도 일본어로 바꿔쓸 때다.
시인 서정주 선생 말씀에 따르면 영원히 일본이 될 줄 알았다잖은가.
3. 이 보도에는 불고기 어원설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28년간 24쇄를 찍은 내 책 <~우리말 어원 사전>은 보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이 분야에서는 내 책이 가장 유명할 텐데 기자는 알지도 못한다.
내가 지금 교정 중인 28쇄 <~우리말 어원 사전>과 별도로 쓴 <~우리말 은어 사전>에 남사당 은어가 있는데, 이중에 '사지서삼'이 나온다. 불고기백반이란 뜻이다. 불고기란 개념이 19세기에 이미 있었다.
그리고 내 어원사전에도 나오지만 따로 만든 <~우리 궁중어 사전>에 왕이 먹을 불고기를 '너비아니'라고 부른다는 어휘가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널리 쓰인 말이다. 이 말이 궁중 담을 넘어 서울 거리로 나온 게 19세기로 보인다.
기사 중에 '불고기는 평안도 방언'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역시 설이다. 학자가 이러면 못쓴다.
<이기문, 어원탐구 - 불고기 이야기>란 글에 "양념을 한 고리를 숯불에 직접 구워 가면서 먹은 일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있는데 너비아니는 불에 구운 고기다. 다만 궁중어라서 일반 백성들이 몰랐을 수 있다.
<1958년 고등요리실습에 "불고기는 너비아니의 속칭이며 상스러운 부름>이라고 나온다. 아마도 너비아니는 궁중어라서 일반 국어학자들이 접근이 어려웠던 듯하다.
내가 쓴 <~우리말 어원사전>에는 1994년부터 너비아니를 싣고 있다.
4.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문화는 1894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우리말이 있어도 적지 못했다. 우리말은 공용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한문으로 적혀야 효력이 있었다. 판소리를 봐도 우리말을 굳이 한자어를 끌어다 썼다. 그러다 일제에 강점되면서 그때부터는 일본어에 치여 우리말이 또 신음한다.
지금 고려시대 우리말을 적은 계림유사와 조선시대 우리말을 적은 훈몽자회가 있지만 안타깝게 불고기란 어휘는 없고, 고기란 어휘만 나온다. 왜냐하면 불고기는 왕실과 사대부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만큼 소육, 열육 등 한자어로 쓰면 썼지 우리말 불고기를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있다면 아마도 유목민족인 여진족이 많이 사는 평안도나 함경부 북쪽 지역에서는 가능한데, 아직 증거가 없다.
- 궁중 불고기인 너비아니. 왕족만이 먹던 불고기다.
따라서 불고기가 우리말이긴 해도, 불고기를 먹는 문화는 20세기의 일이다. 나도 불고기란 단어를 서울에 와서 썼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는 쇠고기가 생겨도 국 끓여 먹기 바빴다. 구워먹을 양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서울 출신 한국인들이 일본산 쇠고기를 구워먹었을 수 있다. 고기가 없어 문제지 고기만 있다면 숯에 굽기는 매우 쉽다. 야키니쿠는 일본에서도 오래된 말이 아니고 서양 문화가 들어온 이후에 쓰인 말이라고 한다.
그럼 이로써 정리되었으리라고 본다.
<제주의소리/한국 불고기가 일본 인기 요리 야키니쿠된 사연>
난 숱한 국어학자들이 우리말을 아직도 일본한자어에 가둬놓고 방치하는 사태를 매우 못마땅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설가인 내가 24년간 우리말 사전 10종을 펴내는 동안 나는 그들의 도움을 그리 많이 받지 못했다.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2.21-40회 / 1404년 1월 11일부터 점심을 먹었다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2.19-39회 / 세계라는 말에 이렇게 깊은 뜻이?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2.4-38회 / 상(商)나라는 어쩌다 장사하는 상(商)이 됐을까?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1.1-37회 / 수덕사 불상 뱃속에서 뭐가 나왔다고?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0.28-36회 / 대충대충 설렁설렁 얼렁뚱땅,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0.17-35회 / 점심 먹으면서 정말 점심(點心)은 하는 거야?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0.13-34회 / 불고기가 일본말이라고?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10.10-33회 / 메리야스가 양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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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27 - 13회 / 왜구가 아기발도(阿其拔都)로 불리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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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23 - 11회 / 망하다? 망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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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14 - 8회 / 골백번은 대체 몇 번이란 말일까?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9 - 7회 / 골로 가다? 죽어서 골짜기로 가나?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8 - 6회 / 간발의 차이? 어느 정도 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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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6 - 4회 / 가냘프다
태이자 우리말 사전 2018.6.2 - 3회 / 몇 살이나 돼야 생신이라고 부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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