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가로서 한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아마 10만부 이상을 베스트셀러라고 할 때 나만큼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략 30권 정도의 베스트셀러를 냈다. 350만 부의 <소설 토정비결(전4권)>을 비롯해 50만 부 이상 팔린 <갑부(전2권)>, <천년영웅 칭기즈칸(8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나는 내 작품이 국경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껴왔다. 일본, 중국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고, 미국에는 교포들 때문에 국내본이 그대로 수출될 뿐 영어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50세 무렵에 영어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당시 한창 연구 중이던 바이오코드에 시간을 많이 쓰고, 집필 중이던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중지할 수 없어 끝내 실천하지 못했다.
전세계 인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영어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단한 고통이 따른다. 어학은 빠를수록 좋은데 지금 하자니 힘에 부친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어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한글본과 영어본은 전혀 다르다고 할만큼 큰 차이가 있다. 이걸 번역작가가 할 일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작품이 번안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소련 연방이던 무슨 공화국에서 천년영웅 칭기즈칸 번역 허락을 해달라 하여 동의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들이 내 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에서도 <소설 토정비결>과 후배 홍승희와 공저인 <샴발라 전기(전5권)>의 번역이 이뤄졌는데, <소설 토정비결>은 저작권 계약을 하지 않아 실패하고, <샴발라전기>는 번역본을 보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소설가로서 이때까지 살게 해준 독자들을 위해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차례로 펴내고 있다. 이것이 독자들에 대한 나의 보시다. 품이 너무 많이 들어 무료로 나눠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볼 수 있는 책은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열 권 혹은 거기에 한두 권 더 출간하면 아마 내 의무는 나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고, 그때는 우리말 사전 작업에 뜻을 같이하는 후배에게 넘기려 한다.
다만 바이오코드가 문제다.
바이오코드는 1990년부터 나 혼자 개발해온 성격분석도구인데, 성격이라는 좁은 영역을 넘어 이제 두뇌까지 올라왔다. 그러면서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는 두뇌 탐색 여행이 20여개의 뇌를 거쳐 마지막으로 편도체에 이르렀다. 아마도 여기가 바이오코드의 종착지인 것같다.
바이오코드는 3급까지 보급되었는데, 2급과 1급은 아직 비공개 상태다. 2급이야 자원자가 있으면 가르치지만 1급은 봉인된 상태다. 이 봉인을 언제 풀지 나도 모른다.
바이오코드는 2급부터는 일반인들이 알 필요가 전혀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3급 수준이라도 어느 정도 지적 회로가 갖춰진 사람이어야 지속적인 학습이 가능하지 그냥 덤벼들면 조금 재미있다가 만다. 아니면 점쟁이처럼 아는 소리 조금 하다 만다.
그래서 나는 오직 지혜만으로 신도들을 상대한다는 미얀마 스님들을 가까이서 관찰해왔다. 이들은 지적 수준은 낮지만 강렬한 믿음으로 무장한 탓에 미얀마 스님들의 설법이나 경전 암송에 기꺼이 만족한다. 하지만 그들은 바이오코드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일반상식과 과학적 사고 체계가 덜 준비됐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러고나면 내가 갈 곳이 없다.
한때 일본에 가서 바이오코드를 보급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거긴 미신 성향이 너무 강해서 바이오코드의 순수성이 훼손될까봐 도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이라는 이성의 바다, 자본주의로 혼탁하기는 하지만 인간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무명과 반야가 곳곳에서 충돌하는 전쟁터같은 사회라서 바이오코드가 성장하기에는 충분한 토양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자율차 과학자, 한국서 짐싸서 떠난 이유>란 기사를 보다가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망아지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아이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그때는 한반도가 천하이던 시절이니 그러하지만 이제 지구가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시점에는 그 서울이 미국의 주요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를 쓰는 나라여야만 하니 미국 아니면 영국 정도다.
아직 발에 묶인 차꼬를 풀지 못하니 더 생각해 봐야만 한다. 그저 생각 뿐이다.
내 왼손에는 바이오코드가, 오른손에는 아나파나 사티라는 도구가 쥐어져 있다. 소설과 우리말 사전은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같다.
지난 11월 11일에 왼쪽 목화가 핀 걸 동생이 찍었다. 그때 "옆에 있는 건 추워서 피우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미 잎은 서리 맞아 잎이 마른 상태라서 봉오리 상태로 있던 것은 피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18일에 다시 집에 내려가 목화밭을 둘러보니 제대로 피어났더란다(오른쪽 사진)
나도 저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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