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 시리즈의 제목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는 출판사가 내건 '잘난 척하기 딱 좋은'이란 말이 앞에 붙었는데, 그건 출판사의 시리즈 출판물 제목이고 나는 어디까지나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을 내건다.
1994년부터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27년이 되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우리나라에 없고, 세상에 없는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우리말 사전으로 말하면 부끄럽게도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이 그 시초다. 이때 우리말 어휘도 많이 모아지긴 했지만 실은 일본한자어가 한꺼번에 밀어닥친 '언어식민(言語植民)' 사전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인을 조선 땅에 식민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일본어를 조선인 뇌에 심어버린 것이다.
이후 이 사전으로 공부한 숱한 친일 지식인들이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오늘날까지 우리말이 독립하지 못한 채 공무원, 군인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기자 들이 일본한자어를 열심히, 마구 쓰고 있다.
조선총독부 사전이 만들어지기 전, 비록 총독부가 언어식민 목적으로 시작하였지만 우리 학자들이 약 3년간 우리말 사전 자료를 모은 것이 있다. 무식한 조선인들에게는 이런 사전이 필요가 없다고 하여 출판되지도 않았는데, 오늘날 원고 상태로만 보존돼 있다. 어쨌든 비공식이다. 당시 총독부는 1910년에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날치기한 1년 뒤인 1911년부터 이 언어식민 작업에 나섰다. 책임자 小田幹治郞을 포함해 16명(일본인 6, 한국인 10명)이 작업을 시작해 5만8000항의 어휘를 모았다. 조선어는 드물고, 대개 일본한자어다.
이렇게 하여 총독부 사전이 나온 게 1920년인데, 이로부터 1940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사전다운 체계를 갖춘 사전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 나왔다. 그 사이 영화 말모이처럼 우리말을 많이 모으는 일이 있었지만 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게 오늘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이 되었지만, 문세영 조선어사전 뒤에 나온 이희승, 신기철신용철 등의 사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문세영 사전 이후 나온 큰사전에는 조선총독부 사전에 나온 일본한자어가 다 들어가 우리말을 오염시키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문세영 같은 자주 정신도 갖지 못한 사전학자들이 일본어 사전을 들여와, 총독부도 베끼지 않을 어휘들까지 속속들이 베낀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행복은 영어 Happiness를 번역한 일본한자어다.
총독부 사전에 행복은 'さいはひ'라고 나온다. 幸이다. 福은 번역할 때 Happiness와 'さいはひ'를 구분하기 위해 갖다붙인 글자일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전에는 무시무시한 말인 幸을 매우 좋은 뜻으로만 번역한다.
문세영 조선어사전에는 행복을 '경사스러운 일, 좋은 일, 팔자가 좋은 것'이라고 풀이한다. 총독부 사전을 갖다가 자기 마음대로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다. 문세영이 행복을 '다행한 운수'라고 쓴 것은 일본어 사전을 베낀 흔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본에서는 행복을 단지 幸이라고만 하고, 그것을 多幸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다 보니 幸이, 도둑놈 강도 등 범죄인을 다 잡혀가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한자한문에 관한 한 지식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거의 공부할 기회조차 없다. 조선의 양반이면 누구나 아는 한자한문 지식을 일본인들은 거의 갖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행복이라는 말을 만든, 한문에 밝은 일본학자들만 알고 있던 것이라 일반인들을 감쪽같이 알지 못한 것이다.
이희승 사전에는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감이 없는 상태'라고 나온다. 나름대로 덧붙인 것인데, '복된 좋은 운수'라든가 관련 한자는 문세영 사전을 그대로 베꼈다. 여기서 느닷없이 幸祐가 나온다. 우리말에 없는 말이다. 돕는다는 祐를 덧붙여 일본식 행복의 뜻을 강조하였다.
국립국어원 표준우리말큰사전에는 이희승 사전에 하나 더 붙인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로 나온다. 그리고 이희승이 추가한 幸祐가 그대로 나온다. 당연히 일본한자어요, 일본식 해설이다. 幸祐를 구글에서 치면 일본 문서만 나오고, 중국이나 조선 문서는 안나온다. 그것도 모르고 국립국어원조차 이를 베낀다.
한글과컴퓨터 역시 이를 그대로 따른다.
그러면 내 사전 <태이자 우리말 사전>은 행복을 어떻게 표시할까?
나는 한자어 본래의 뜻을 찾아 가장 바른 뜻을 찾아낸다. 그래야 서로 다른 한자들이 모여 단어로 만들어졌을 때 무슨 뜻이 되는지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행(幸) ; (나쁜 죄인을 잡아 수갑을 채우니) 마음이 놓이다.
복(福) ; (제사에 쓴 뒤 푸짐하고 맛있는) 고기와 음식을 나눠받다.
뜻 1 ; 마음이 편하고 먹을거리가 넉넉하여 기분이 좋다.
뜻 2 ; 나쁜 일이 사라져 마음이 편하고 먹을거리가 넉넉하여 기분이 좋다. 죽을 위기에서 살아남고, 고기와 음식을 넉넉히 나눠 받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blog.daum.net/biocode/6439>
내 <태이자 우리말 사전>에는 앞에 보인 어떤 사전에도 없는 진짜 내용이 튀어나온다.
내 사전대로 쓰라는 뜻은 아니다. 알고 쓰자는 것이다.
내 사전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만 행복이란 말을 쓸 때는 幸福의 뜻을 바르게 알고 써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한자어가 대략 수천 개는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대충대충 건성으로 쓸 뿐이다.
모르고 써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인생이 해 뜨기 전처럼 흐릿하고, 해진 뒤처럼 어둑할 뿐이다. 글이 다소 거칠어지고 말이 고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굳이 안배워도 사는데 그리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식인, 교양인으로 살자면 아마도 공부를 해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알고 있는 말을 그만 모를 때 얼마나 당황하게 될지는 말할 것도 없다.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어사전이다. 1926년 판이다. 초판본은 일반에 배포하지 않아 없고, 이게 최초로 공개된 사전이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총독부 사전보다 어휘 수가 굉장히 많고, 내용이 알찬 편이다. 하지만 밀물처럼 들어온 일본한자어에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일본한자어를 일본 식으로 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어사전은 위의 두 사전을 적당히 베끼거나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도 마찬가지다.
그러거나 나는 내 길을 가련다.
그저 우리말을 쓰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1994년, 소설을 쓰면서 내가 쓰는 말의 정확한 뜻을 내가 알고 싶어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알고 싶어 사전을 만드는 것뿐이다. 내가 모르는 말로 글을 쓰면 독자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 그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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