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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死卽生 生卽死의 올바른 해석

이순신 제독이 울돌목(鳴梁 ; 우는 골짜기)에서 일본 수군과 전선 열한 척으로 맞서기 전 휘하의 수군에게 이른 '전투에 나서는 이들에게 내리는 가르침'인 임전훈(臨戰訓)이 있다.

 

- 死卽生 生卽死

 

안타깝게도 한문으로만 전해져 우리말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기록이 없다.

훈민정음을 발명한 게 1446년인데 151년이나 지난 뒤에도 이순신은 여전히 한문으로 일기를 적었다.

그렇다면 死卽生 生卽死은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오늘날 이 임전훈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고 있다.

 

-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아마 이런 해석을 가장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다른 번역도 보자.

 

- 중앙일보2009.03.27
 [우리말 바루기] 생즉사 사즉생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 나무위키 / 오자병법 제3편 치병(治兵)편

"必死則生 幸生則死"을 간략히 한 표현으로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 영화 명량의 이순신 대사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 성경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 차길진 법사가 인용한 누군가의 글

“궁지에 처했을 때,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등 돌릴 때, 더 이상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 순간이 바로 조수(潮水 ; 바닷물)가 바뀌는 시간과 장소다.”

 

이 글이 死卽生 生卽死을 가장 멋지게 설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론하여 나는 死卽生 生卽死를 이렇게 새긴다.

 

- (전투를 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면 기어이 죽을 것이요,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아마도 이순신 제독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울돌목 전투에 앞서 수군에게 던진 이 임전훈은 말 그대로 나타났다.

조선 수군 13척이 일본 수군 300여 척을 무찔렀다.

우리 측 전사자는 약 10명 내외다. 약 800명~900명이 참전한 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투'에서 임전훈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래는 내가 쓴 <소설 이순신>의 명량 부분이다.

 

- 명량(鳴梁).

명량이란 전라좌수영 소속도 아니고 빙돌아 우수영, 그것도 어란포, 해남을 돌아서도 진도와 마주보고 있는 바다의 골짜기, 해협(海峽)이다. 길이는 1.5킬로미터, 폭은 5백여 미터, 그러나 해안을 빼고 실제로 다닐 수 있는 길은 불과 4백미터. 그나마도 울돌목에 이르러 폭은 더 좁아져 3백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양 언덕에 암초가 많아 항진 가능 거리는 120미터로 병목처럼 쑥 줄어든다. 썰물이 되면 그 암초가 마치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같다 하여 명량의 량()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해협이 좁다보니 밀물이 몰려들 때에는 시속 30킬로미터의 급한 물살로 변해 마치 해룡(海龍)이 우는 듯하다 하여 명() 자가 붙은 것이다.

이 달 9월의 만월(滿月) 시각은 이틀전인 14일 오후 744, 16일의 조수는 오전오후 7시경에 남해안에서 서해안 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밀물) 오전오후 10시에 절정을 이룬다. 그 반대로 오전오후 1시경에는 서해안에서 남해안 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썰물) 오전오후 4시에 가장 빨라진다. 이순신은 이 사실을 알아내고 결전 장소를 울돌목으로 잡고, 그 시각까지 외워두었다.

이순신은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군사로부터 좌군 일부가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한강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이란 첩보를 얻었다. 이순신으로서 취할 전략은 단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시각에 싸운다.”

싸움터는 명량, 울돌목이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와주었다.

그렇다면 이순신이 정한 시각에 싸워야 한다. 물길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정한 시각이 되었다.

바로 이순신이 노리던 시각이다.

울돌목이 웁니다!”

수군들이 소리쳤다. 명량이 울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어서 초요기를 올려라!”

 

울돌목의 회오리 물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