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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작품/태이자 우리말 사전 시리즈

내 일은 지금도 한창이다

오늘 아침 불교방송에서 성철 스님 육성 법문을 방송하는데,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니 한문에 토씨만 달아서 매우 빠른 속도로 말씀하시고, 그 토씨를 포함한 우리말 몇 단어는 경상도 억양에 경상도 사투리까지 나온다. 횃불 들고 달리는 군대의 전령 같다.

한문을 배운 나까지는 알아들을 수 있고, 우리말 공부 대신 한문만 배운 승려들이야 대충 그 뜻을 알아듣겠지만 50대 일반인들만 해도 하품이 나올 것이고, 그 이하는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중국어 방송쯤으로 들려 귓바퀴에 바람으로만 맴돌 것이다.

난 우리 불교가 아직도 한자한문의 숲에 스스로 갇혀 붓다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말로는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겠노라고 매일 맹세하지만, 막상 그들은 중생의 언어조차 모른다.

이런 점에서 세계의 석학, 과학자 들과 집단토론을 하는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 존자야말로 이 시대의 등불이라고 생각한다.

성철 스님은 한문으로 평생 불경을 배운 승려들 말고는 그의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인이 드물 정도로 고약한 중국어를 써 중생제도를 스스로 포기하신 듯하다. 그의 제자인 원택 스님 등이 한문투 글을 다듬고 바꾸어 여러 권의 책을 내어 그나마 불자들의 목마른 가슴에 지혜를 뿌려 주었지만, 그의 본래면목은 그냥 중국 선사다.

어제 네팔에 오래 머물면서 티벳 불교 서적을 번역해온 한 스님의 책을 여러 권 보시받아 와서 잠자기 전 읽어보니 슬픔이 밀려온다.

1994년인가, 이스라엘로 건너가 오랜 시간 수메르어를 전공하다 오신 분의 책을 내가 다듬어 낸 일이 있는데, 이 분 언어가 197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는 신문들이 한자를 새카맣게 써놓고 괄호 안에 한글 발음을 달던 시절이다.

어제 내가 읽은 책들 역시 그러했다. 다만 2020년에 출간한 책답게 한자 표기는 주석에만 있고, 본문에는 그저 한자어 발음만 있다. 매미가 벗어놓고 간 허물 같아서, 매미는 보이지 않고 허물만 남은 듯하다. 그러니 소통이 될 리 없다. 편지를 보내어 2021년 한국인이 쓰는 언어가 무엇인지 알려드려야 할 것같다. 아니면 그 훌륭한 번역을 내가 손질해드리는 보시라도 해야 할 것같다.

내가 만든 <~ 우리말 한자어 사전>은 두 번에 걸친 큰 증보(더하고 고치는)를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지금 두번째 증보판의 5배 정도의 어휘를 찾아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우리 한자어 사전'을 만들었다. 아직은 나만 보는 거지만 때가 되면 출판을 하든 앱에 담든 하여 내놓을 것이다.

내게는 출판하지 않고 나만 보는 책이 20여 종 50권은 있다. 사람들은 실록에서 한 줄 짜리 글귀를 보고도 책 한 권에 미니시리즈 드라마 10회 분은 거뜬히 만든다지만, 나는 내가 10권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100권의 자료를 읽기 전에는 책을 쓰지 않는다.

잠 자기 전 책을 덮으면서 한숨 쉬었다가 오늘 아침에야 그 느낌을 적는다. 할 일은 너무 많고 해는 늘 쏜살같이 달리는도다.

 

2019.2.18

 

우리 한자어 사전 증보판을 만드는데, 증보에만 다섯 달이 되었는데 아직 끝을 내지 못했다. 하도 답답해서 쉬는 중에 몇 자 적는다.

내가 만드는 사전은 한문 전공자들이나 쓰는 고상한 어휘가 아니라 카페에서, 거리에서 흔히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다.

10년 전에 낸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을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우리말은 한자어 투성이다. 그러다보니 한문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그 뜻을 거의 모른 채 마구잡이로 대충 쓴다. 그러니 말하는 이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듣는 이는 반만 알아 듣는다. 1994년부터 이런 한자 어휘를 모아 거의 20년만에 초판을 냈는데, 갈 길이 아득하다. 이번에 증보판을 내고도 아마 바로 증보판 준비를 해야 할 것같다. 한번 증보하는데 10년은 걸린다.

소설가로서 이런 말을 하기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우리말은 아직 문학어나 과학어가 되기에는 기초가 대단히 부족하다. 의학이나 과학 서적을 읽어보면 뜻 모르는 한자어가 너무 많아서 실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고, 법원에서 판사들끼리 돌려 보는 문서를 들여다보면 우리말 같지 않고, 거의 일본어 문서를 발음만 우리말로 적어놓은 것같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느낌이 오지 않으면 20년 전, 30년 전의 베스트셀러를 하나 구해 읽어보기 바란다. 아니면 그 시절의 대학 교재라도 구해 읽어보라. 아마 일본어 서적 번역본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말 사전, 영한 사전, 중한 사전 등 대부분의 사전이 일본어 사전을 번역한 것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좀 세게 말하면 일제시대 먹물들이 그따위 짓이나 한 것이다.

알고 나니 글 쓰기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소설을 다시 찍을 때마다 반드시 고치고 다듬기 때문에 일본 한자어가 드물고, 한자어보다는 우리말이 더 많다. 어떤 이는 왜 한자가 없냐고 묻는 이가 있는데, 나는 자주 한국인이라서 그렇다.

딸이 대학 다닐 때, 일제 한자어 투성이의 교재를 읽지 못해 더듬거리던 걸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대학 교재를 쓴 교수도 무슨 말인지 모른 채 스승이나 선배의 글을 베끼고 베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