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살아 있는 거대한 영웅
고은(시인)
누구에게나 열 살, 열두 살 때가 있는 것이다. 철수에게도 조지에게도 그때가 있었다.
그러나 몽골의 황야에 열두 살짜리 한 소년이란 그 자체가 세계사의 축도(縮圖)였을 때 그런 열두 살은 새삼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에 앞서 소년 알렉산더에 의해 유럽의 일부, 아프리카의 일부, 페르시아, 그리고 서남 아시아가 엎드린 사실은 차라리 고대 세계사의 어이없는 무력(無力)이기도 했다.
그런 사실조차도 작은 사건으로 만들어버린 13세기의 한 열두 살 소년의 실존적 등장이야말로 마음껏 세상을 뇌성벽력으로 채우고도 남음이 있다.
고대 중국의 한족이 온갖 저주를 담아 지칭하던 흉노의 그곳 초원에서 바로 그 소년은 엉겁결에 호수에 뛰어들어 아버지와 아버지가 영도하는 부족 대부분이 죽어간 참혹한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그가 장차 유라시아 대륙을 무한대로 내달리는 영웅 중의 영웅 칭기즈칸일 줄이야!
그런 영웅을 11세기에서 20세기의 지난 1천 년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는 다음 1천 년의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칭기즈칸, 그는 지난 1천 년의 실체이고 앞으로의 1천 년에도 지워질 수 없는 거울 속의 초상이다.
나는 1970년대 긴급조치 9호 따위에 적용된 감옥에서 콘스탄틴 M. 도슨의 『몽골제국사』를 읽는 동안 그 1평 미만의 독방으로 하여금 내 마음속의 세계를 어느덧 칭기즈칸의 세계에 겹치게 되었다.
몽골과 중국 대륙, 그리고 중앙 아시아·백러시아·폴란드에 이르는 영역이나 실크로드의 대사막들이야말로 나에게 공간을 상상시켰던 것이다. 그 꿈꾸는 대륙 공간이야말로 내 정신의 숙영지였던 것이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제한된 삶의 조건을 넘나드는 상상 세계에는 반드시 비일상적인 축제로서의 공간을 꿈꾼다. 그런 꿈속으로 당당하게 들어서는 대상이 바로 수많은 칭기즈칸일 것이다.
그럴진대 칭기즈칸은 한 생애의 영웅이 아니다. 아직껏 우리 모두에게 살아 있는 거대한 역사의 고향으로서의 영웅이다.
소설가 이재운은 마치 적의(敵意)라도 품은 것 같은 그의 집념 10년 가까운 기간을 바쳐 『천년영웅 칭기즈칸』 전 8권을 탈고했다.
여기서 ‘천년’이라는 관형사 냄새가 진한 제목이 골라진 것은 아마도 1995년 12월 《워싱턴 포스트》가 20세기 종막 5년을 앞두고 지난 1천 년을 돌아보았을 때 세계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인간 칭기즈칸을 떠올린 사실을 반영하는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는 이것을 고려 무신란 초기에 그 도입부를 두어 세계사의 지축을 울리는 말 발굽 소리를 한반도의 중심과 연결시키는 그 자존심의 묘미를 보이고 있다.
작가에게만 주어지는 행복 가운데는 작중 인물이 사실에 기초하든 허구의 산물이든 작가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보는 일이다.
일련의 전기나 평전을 문학 안에 아우르는 넓은 의미와는 또 다른 소설 속의 실제 인물에 작가가 이입되는 모순은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이재운은 이 대작을 쓰는 오랜 고행의 연속 가운데서도 그 자신이 칭기즈칸이 되어보는 문학적 이입(移入)을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정황은 이 소설의 군데군데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이라는 체제임에도 그 체제 밖으로 튀어나오는 사실들에의 피할 수 없는 실감 때문에 이 소설의 속도와 전개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것을 쓰는 동안의 엄청난 수고는 그렇다 치고 이것을 쓰기 위한 공부와 취재까지를 생각할 때 작가는 거의 초인적이다.
이 야망의 실현으로서의 소설은 역사를 역사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문학을 영웅과 영웅의 무대로서의 세계 없이 하나의 단순 주제에만 충성을 다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내가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나보다 먼저 이 소설로서의 영웅을 추천할 사람들이 시대의 여러 도성과 산야에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이재운은 큰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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